대학·중용을 그렇게 읽었는데 아이만큼도 몰랐다

[대학·중용으로 보는 아빠의 가족 공부]

등록 2017.12.20 10:30수정 2017.12.2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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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말 오후 사무실에서 잠시 집에 들렀습니다. 첫째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습니다. "민준아 왜?" 하고 말을 걸었습니다. 네 살배기였던 아이는 힘겹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아빠랑 놀고 싶은데, 아빠는 나가 버려." -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머리말


가끔 민준이(현재 9세)에게 물어봅니다. 아빠에게 했던 말을 기억하냐고? 생각이 안 난다고 말합니다. 이미 그 순간에 자신의 모든 감정과 욕구를 집중해서 짜낸 이야기의 흔적이 남아 있을 리가 없습니다.

때로는 세상을 바꾸고 싶어서, 때로는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서 인문고전을 열심히 읽었지만 머리로만 한 공부가 제대로 될 리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말을 깊이 되새기고 났더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더라고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죠.

예전엔 이웃사촌이었지만 지금은 떨어져서 지내는 동서가 생각납니다. 동서네 집에 갈 때마다 하나씩은 꼭 배웠죠. 얼마 전에 놀라 갔을 때는 아들과 베이블레이드를 열심히 하고 있는 걸 봤어요. 동네에서 열렸던 대회에도 같이 참여했다며. 베이블레이드를 아이와 같이 한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민준이의 말을 들었을 즈음에 동서도 비슷한 얘기를 했죠. 가정적인 남자인 동서는 "형님은 치국평천하를 하세요. 저는 수신제가를 할게요." 이 말도 저를 일깨워주었던 깊은 말입니다. 동서도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들은 사람만 기억나는 모양입니다. 인생의 물줄기를 바꾸는 큰 말은 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듣고 붙잡은 사람의 것이 아닐까요?

이 글을 빌려 제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데 큰 힘이 된 말을 해준 동서 이명훈씨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대학과 중용은 한몸입니다

대학과 중용은 같이 언급되는 책입니다. 두 권 모두 <예기禮記>라는 경전에 수록된 '편명'이었다가 중국 송나라의 주희(주자)가 사서四書를 정할 때 <논어>, <맹자>와 함께 '진급'하였죠. 같은 부모의 자식이기에 '대학중용'이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내용 역시 공통점이 많습니다. <대학>은 학문의 입문편이기에 <중용>에서 하는 이야기의 축약본처럼 정리된 부분도 있고, 실천적 지혜의 관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대학>은 인간과 사회관계를 <중용>은 세계와 우주의 질서를 많이 이야기합니다.

음양이론이 블랙홀처럼 존재하는 동양철학에서는 두 가지 중에서 하나는 암컷을 담당하고, 하나는 수컷을 담당합니다. 그리스신의 왕인 제우스의 번개에 절단되기 전까지는 한몸이었던 '인간남녀'가 음양이론을 적절하게 비유합니다.

이론과 실제가 한몸이며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만 번지르르한 지식인이나, 요즘 성추행 파문이 끊이지 않는 문인은 동양철학에서는 '향원鄕原'이라고 부르죠. 공자는 이들을 "덕의 적"(논어)이라고 단호하게 선언했죠. 이론은 '내성內聖', 실제는 '외왕外王'으로 한몸의 두 가지 면입니다. <대학>과 <중용>이 그렇죠.

이런 복잡한 이야기를 제쳐두고 핵심 중의 핵심은 '진정성'입니다. '정성'이라고도 할 수 있는 '성誠'이 <대학>과 <중용>에 담겨 있죠. 특히 <중용>은 이 개념을 설명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습니다. <대학>에서는 "정성이 마음 깊이 담겨 있다면 밖에서도 훤히 보인다"고 하였고, <중용>에는 "정성이야말로 존재의 A~Z이니 정성이 없다면 존재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정성'을 제 경우에 적용하면 저는 정성을 다해서 '치국평천하'를 했기 때문에 '경고 신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적당히 했다면 그조차도 없었겠죠. "그것이 최선입니까?"라는 유행어처럼 아이에게 보인 행동이 과연 진지하고 정성스런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야말로 '최종수비수' 같은 질문입니다.

부모의 진심을 해치는 '관념'을 조심하세요

<대학>과 <중용>의 정신에 의하면 용서받지 못할 부모의 유형을 알 수 있습니다. 설익은 관념에 의존해 아이를 키우는 부모입니다. 이런 부모, 이런 배우자는 가족과 보냈던 많은 시간들이 일거에 부정당할 수도 있습니다.

무서운 일이죠. 왜 부정당하나요? 지혜롭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눈치가 없기 때문도 아닙니다. 옳든 그르든 자신의 진심이 담겨 있다면 반드시 관계 회복의 기회는 옵니다.

자신의 관념에 빠지고, 자기 감정에 허우적거리다 보면 아이와 배우자가 보내는 숱한 신호들을 지나쳐 버립니다. 저는 수년간 헛발질을 했지만 가족의 신호를 듣기 위해 집중했습니다. 아이의 한마디는 무시하면 그만이죠. 저는 물에 빠진 사람처럼 지푸라기를 부여잡는 심정으로 아이의 경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였기에 '막차'를 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부모를 만나며 경험적으로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어떤 유형의 부모에게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죠.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부모에게는 말하지 않습니다.

절실한 마음으로 활로를 찾지 않는 부모에게 괜히 조언을 하지 않습니다. 그릇된 관념을 진리처럼 착각하고 아이가 어떻게 반응하든 '확신범'처럼 굳건한 분들에게는 말도 꺼내지 않습니다. 이 분들에게는 제 말이 거의 필요 없죠. 긁어 부스럼일 뿐입니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고, 스스로의 문제를 이해하고 싶고 해소하고 싶은 분들은 눈빛이 다릅니다. 저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심정으로 이런 부모님들을 찾고 있습니다. <대학>과 <중용>은 제 시간을 많이 절약해 주었습니다.

정말 만나고 길게 대화를 해야 할 부모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죠. 진정성이 몸에서 떠나지 않으려면 스스로에게 너무 관대하면 안 됩니다. 부모 자신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조건에 부합하는 부모님은 생각보다 많지 않더군요. 당신은 어떠신가요?
덧붙이는 글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글라이더)를 출간하고 나서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지면과 다른 이유 때문에 책에서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에 맞게 연재하려 합니다. 인문고전의 눈을 얻어다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님들이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인문 육아 #아이 공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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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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