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차 낸 사람부터 노인까지 "젊은이, 난 오전 5시부터 줄을 섰어"

[스타벅스 더종로점 오픈] 심부름센터 직원까지 동원된 줄서기 진풍경

등록 2017.12.20 14:11수정 2017.12.2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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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스타벅스가 야심차게 준비한 국내 최대 규모 스타벅스 더 종로점이 오픈을 하였습니다. 오픈 하루 전날 더종로점에 전화를 걸었지만 당연히 전화는 되지 않았습니다. 대형 행사 세 개를 진행한다는 것 외에는 어떠한 것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이 줄을 설까?', '언제부터 줄을 받을까?' 모든 것은 20일에 오픈될 예정이었습니다.


스타벅스 더종로점 오픈일... "오늘을 위해 연차를 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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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안팎으로 스타벅스 행사가 동시에 진행되자 사람들이 건물 내외로 길게 줄을 늘어섰다. ⓒ 정주영


20분 거리라 쉽게 생각하고 나온 것이 함정이었습니다. 이날 500명 선착순으로 나눠준다는 그린노트는 스타벅스의 정체성인 녹색을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노트라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더 시선이 모였던 것은 엄청난 양의 줄이었습니다.

더종로점 도착 시간은 오전 9시, SNS에서 알음알음 홍보되던 이 행사가 이미 오픈과 함께 그린노트가 마감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실망하던 저를 보고 직원 옆에 한 나이 드신 분이 한 마디를 거듭니다.

"젊은이, 난 오전 5시부터 줄을 섰어."

네? 5시라고요? 손녀가 그렇게 원하는 거라고 새벽부터 뛰쳐 나왔다는 어르신의 말씀을 들으니 오늘의 오픈을 제가 너무 가볍게 생각한 듯합니다. 그리고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 승리에 가득찬 한 여성의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오늘을 위해 연차를 썼어. 집에서 아빠가 어휴... 하면서 가라고 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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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를 상징하는 녹색으로 가득한 플래너겸 노트. 한 매장에서만 단독 한정행사가 진행되었다. ⓒ 스타벅스코리아


그린노트를 놓쳤다는 것은 스타벅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큰 슬픔입니다. 옆에 똑같이 아쉬운 표정으로 줄을 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더 들어오진 않나요?"라고 묻자, 직원들은 같은 질문에 수백 번 답한 표정으로 "네 그렇다고 해요. 홍보팀에서 진행하는 거라" 대꾸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자 갑자기 퀵 서비스 기사로 보이는 분이 등장을 합니다.

퀵 서비스 기사는 대형 인파에 당황한 모습이었습니다.

"아니, 줄 없고 그냥 가져오는 거라면서요?"

기사가 가뜩 성을 낸 목소리를 내자, 전화기 건너로 목소리도 다급해 집니다. "정말 줄이 그렇게도 많은 것이냐?"라는 답을 하자, 대뜸 기사는 스타벅스 직원을 바꿉니다.

"네 고객님, 여기 줄이 정말 많아요."

기사가 특유의 손동작으로 더 많다고 얘기를 해달라고 하자, 직원도 그렇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이거든요. 과연 이 기사분이 그대로 헛탕을 치고 가실까요? 긴 줄에 서 있던 사람들의 호기심이 모아지던 순간, 퀵 서비스 기사가 대형 줄에 합류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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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행렬에 심부름 퀵서비스 기사까지 등장했다. ⓒ 정주영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저는 오늘 무엇을 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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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는 서울에서 최대 규모의 매장 오픈을 공격적으로 홍보하였다. (스타벅스 홍보 영상 중) ⓒ 스타벅스코리아


그린노트를 놓쳐서 망연자실하던 와중에 다 같이 서 있던 긴 줄은 또 다른 무언가를 놓치지 말라고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스페셜 에디션 카드 사시는 거죠? 그러면이 줄 서시면 됩니다"라는 직원의 말이 들려 옵니다.

그렇습니다. 알고 봤더니 저는 스페셜 에디션 카드를 사는 줄에 서 있던 거였습니다. 앞에 어르신들도 "응? 스페셜 카드? 그게 뭐요?" 하다가, 손녀로 추정되는 분에게 전화를 걸더니 다시 줄서기 행렬에 동참을 합니다. 이걸 왜 사야 될까요?

"혹시 이 카드 사면 뭐 더 주나요?"

부끄럽지만 직원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아니요, 그냥 카드만 사시는 거예요" 하는 답이 돌아옵니다.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든 살 수 있는 스타벅스 카드를 사려고 왜 이렇게 긴 줄을 서는 걸까요? 급하게 SNS에 검색해보니, '아... 이 카드는 금색 칠이 되어 있구나'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게 꼭 필요할까? 고민 고민을 계속 하던 와중에, 갑자기 제 차례가 다가옵니다.

"카드 두 장 하시는 거지요?"

순간 10만 원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 하는 직원을 보고 저는 꽤 당황합니다. 급한 마음에 "혹시 할부는 가능할까요?" 하고 물었지만, 직원은 바로 "상품권 개념이라 안 됩니다"라고잘라 말합니다. 잠깐이지만, 고민의 시간이 길어지자 뒤에 줄 선 사람들의 시선이 무겁게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이 줄을 포기하고 나올까요? 고민하던 저는 이미 10만 원을 결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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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이나 기다렸는데, 정작 결제는 1분만에 이루어졌다. 직원들의 손놀림이 매우 빨랐다. ⓒ 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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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올라와서 정신을 차리니 10만원 결제가 끝나 있었다. ⓒ 정주영


2층에 올라와 방금 제 계좌에서 사라진 10만 원을 보고 잠시 멍하게 앉았습니다. 바깥에는 오전 10시30분부터 더 종로점을 위한 산타클로스 행사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아, 거기에도 4만 원이나 하는 DM상품들이 1만 원에 판매한다고 합니다. 행사 취지는 녹색재단에 어려운 아이들을 후원하는 거라고 합니다. 저는 그 줄에도 마저 서 있어야 되는데... 생각하다가 그만 털썩주저 앉아 버렸습니다.

평창 패딩에 길게 줄 선 사람들을 볼 때 뭔가 한심해 보였습니다. 이미 제 방에는 근사한 패딩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했지요. 그러나 제가 좋아하는 스타벅스가 평창 패딩을 따라하려고 하자, 저도 그 한심해 보였던 긴 줄에 합류를 하고, 오늘 가계부에 결제액을 다시 올립니다.

'-10만 원.'

오늘 5시간 동안 뭐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합리적인 것 같아서 달렸던 현장에는 의미없게 아쉬운 무언가들이 남았습니다. 그린노트를 얻었다면 이런 생각을 안 했을까요? 2층으로 올라가 조용히 커피를 마시는 와중에 기자 무리들이 '한무리의 스타벅스 군중 속에 뭔가 털려 보이는 제 모습'을 클릭 수 좀 나오겠다며 찍고 있습니다.

스타벅스를 좋아하는 저는 오늘 무엇을 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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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넘게 많은 기자들이 스벅에 앉은 사람들을 촬영했다. 오늘만은 스벅은 제3의 공간이 아닌듯 하다. ⓒ 정주영


#스타벅스 #더종로점 #한정효과 #상술 #그린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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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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