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을 꿈꾸는 예술인들

희망일터의 파견예술인 ①

등록 2017.12.26 14:17수정 2017.12.2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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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일터 전경 강화도 화도면 덕포리 넓은 들판 한 가운데에 있는 희망일터의 건물을 보면 직업재활시설이라는 이름 말고는 다른 도정공장들과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희망일터 전경강화도 화도면 덕포리 넓은 들판 한 가운데에 있는 희망일터의 건물을 보면 직업재활시설이라는 이름 말고는 다른 도정공장들과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류미례

2016년 봄, 인천시 강화군 덕포리에 정신장애인 직업재활시설 희망일터가 문을 열었습니다. 희망일터의 유찬호 신부는 제가 일하는 푸른영상에 정신장애인 미디어교육을 부탁해왔습니다. 제가 일하는 푸른영상에서는 2006년 발달장애인 미디어교육의 시작부터 2012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의 영화동아리 활동까지 전 과정을 함께 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의 파트너가 바로 유찬호 신부였습니다. 미디어 소외계층과 함께 하는 것은 푸른영상의 오랜 사명이었기에 푸른영상은 강화의 희망일터에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의 영상활동을 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의 지원을 받아 제작교육은 4월부터 시작하기로 했지만 참여자들을 알아야했기에 본 교육이 시작하기 2개월 전부터 저는 '영화와 수다' 프로그램을 맡아서 진행했습니다. 2개월 동안 인권영화, 상업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같이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부분 조현병이 있는 희망일터의 직원들은 아주 조용하고 부드러우셨어요.


발달장애인의 영화 <봉천9동> 촬영현장 푸른영상과 희망일터 유찬호 신부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발달장애인들의 영화만들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영화 <봉천9동> 촬영현장푸른영상과 희망일터 유찬호 신부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발달장애인들의 영화만들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경험이 있습니다네이버영화

발달장애인 미디어교육을 할 때에는 늘 에너지를 나눠받았습니다. 제가 미디어교육 현장에서 만났던 발달장애인들은 하나같이 건강하고 구김없으며 사람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분들이었습니다. 정신장애인, 그 중에서 조현병 환자들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던 저는 약간 두려웠습니다. 주류 미디어에서 조현병 환자들은 주로 범죄나 죽음이라는 단어와 함께 등장합니다. 인천 연수구 8살 초등학생 사건의 용의자도 처음엔 조현병 환자라고 알려졌지요. 하지만 저의 두려움은 다른 쪽에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 어떤 분이 푸른영상으로 자신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로드쇼>라는 제목의 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조현병 환자였습니다. 시를 쓰는 주인공은 아주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도 상처를 받는 여리디 여린 분이었고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폭력적인 것은 정신장애인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세상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는 저는 그런 세상의 일부로서 희망일터의 조현병 직원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웠습니다.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제게 한 동료 감독이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조심하는 건 좋은데 걱정은 하지 마. 나도 약 먹고 있어. 우리랑 뭐 많이 다르겠니?"

'영화와 수다'가 마무리가 될 즈음, 3월 말에 발달장애인 영화동아리에서 만든 극영화와 그 메이킹을 함께 보던 날 참여자 중에 한 분인 주자님(실명이 밝혀지는 걸 원치않으십니다)이 이렇게 물어오셨습니다.

"감독님은 그림을 어디까지 그리고 계신가요?"


제가 영화를 틀어드리면 열심히 보시고 조용조용 의견을 말씀하시던 분 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영화감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말을 듣고 주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희끼리 자체적으로 회의를 했었습니다. 만약에 감독님이 우리에게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요. 저희들은 모두 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힘주어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교육을 하는 것은 그럴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입니다."

이제 와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대화는 제 안의 벽 하나를 무너뜨렸습니다. '교육자와 참여자는 평등하다'는 말을 늘 해왔지만 제 마음 안에 어쩔 수 없이 미세한 위계가 있다는 것을 저는 그 때 알았습니다. 묵묵히 조용히 제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제가 건네는 질문에 부드럽게 응대하면서도 그 분들은 저를, 저의 말을, 저의 미세한 행동을, 놓치지 않고 꼼꼼히 관찰해왔던 것같습니다. 그 대화를 시작으로 저는 편안해졌습니다. 진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한 제가 일방적으로 상처를 주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 저는 그렇게 그 분들과 교류를 시작했습니다.  

함께하는 영상만들기 촬영 현장 내 안에 나도 모르는 차별의 막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그 막은 열심히 움직이고 부딪치며 반성해가는 동안 얇아지고 걷혀질 거라고 믿기에 또 갑니다.
함께하는 영상만들기 촬영 현장내 안에 나도 모르는 차별의 막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면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그 막은 열심히 움직이고 부딪치며 반성해가는 동안 얇아지고 걷혀질 거라고 믿기에 또 갑니다. 류미례

영상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예술인파견지원사업 공고가 떴습니다. 이제 막 생긴 시설이라 희망일터의 일거리는 많지 않았고 조현병 당사자들이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내는 것보다는 뭐든 하는 게 나을 것같아서 희망일터의 박정호 사무국장에게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소개해드렸습니다. 선정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희망일터에 지원하는 예술인이 없었습니다.

이해를 위해서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의 진행과정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먼저 퍼실리테이터를 모집합니다. 퍼실리테이터라는 단어가 좀 낯설지요? 예술인들을 원하는 기업과, 예술활동을 원하는 예술인들을 서로 만나게 하고 일이 잘 진행되게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지원자들의 서류를 검토하고 면접을 진행하는 동안 예술인 파견을 희망하는 기업/기관을 모집합니다. 그리고 기업/기관의 규모를 가늠할 즈음 파견예술인들을 모집합니다. 파견예술인들의 서류심사와 면접이 진행되는 동안 퍼실리테이터와 기업/기관 사이의 매칭이 이루어집니다. 제가 이렇게 세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희망일터와 예술인들이 만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임의매칭 예술인들과 함께 만든 아트필름 <가려진 시간>의 한 장면 작년 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는 끝까지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기업/기관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임의로 예술인들을 파견하는 ‘임의매칭’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임의매칭 예술인들과 함께 만든 아트필름 <가려진 시간>의 한 장면작년 예술인파견지원사업에는 끝까지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기업/기관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 임의로 예술인들을 파견하는 ‘임의매칭’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류미례

2016년에도 파견예술인으로 활동했던 저는 '임의매칭'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임의매칭은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임의로 퍼실리테이터를 기업에 배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기업/기관의 수와 퍼실리테이터의 수가 같기에 지금 희망일터에 지원하는 퍼실리테이터가 없다 하더라도 3차 매칭이 끝난 후에는 파견지가 정해지지 않은 퍼실리테이터가 있을 것이고 그들 중 한 명은 희망일터에 배치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4월 20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날은 파견예술인을 지원한 제가 서류심사를 통과한 후 면접을 보던 날이었습니다. 면접은 심사관 한 명이 모더레이터로 지켜보는 가운데 지원자 8명이 자유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여러 명의 예술인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지켜보던 전년도에 비해서 예술가들과 심사관이 함께 토론하는 그 시간은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2017년에는 임의매칭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세 차례에 걸친 매칭과정에서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기업/기관이나 퍼실리테이터는 그냥 그것으로 탈락이라는 겁니다!

예술인파견지원사업 )예술인의 사회적 가치 확장을 위해 다양한 예술직무영역을 개발하고 사회(기업/기관 등)와 협업을 기반한 직무를 제공함으로써 적극적 예술인 복지를 실현하고자 진행하는 사업
예술인파견지원사업)예술인의 사회적 가치 확장을 위해 다양한 예술직무영역을 개발하고 사회(기업/기관 등)와 협업을 기반한 직무를 제공함으로써 적극적 예술인 복지를 실현하고자 진행하는 사업한국예술인복지재단

면접이 끝나자마자 여기 저기 전화를 걸었습니다. 작년에도 저는 강화도에서 파견예술인으로 활동을 했었는데 제가 지원했던 기업에 저 말고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아서 결국 임의매칭된 예술인들과 함께 활동을 했던 경험이 있거든요. 처음으로 전화했던 사람은 작년 저의 퍼실리테이터였습니다. 이미 파견지가 정해졌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작년에 제게 따로 연락을 주셨던 다른 기관의 퍼실리테이터에게 전화를 해봤더니 그 분은 이번에 떨어졌다고 하셨구요. 결국 동료 예술인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강화도의 희망일터라는 기관이 있는데 의미가 깊고 보람있을 것이다"와 같은 얘기들을 하면서 아는 퍼실리테이터 없는지 수소문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마음을 많이 써주었던 건 결국 푸른영상 동료들이었습니다. 문정현 감독이 작년 파견지의 퍼실리테이터에게 연락을 했고 그렇게 황도연 퍼실리테이터(이하 황퍼실)가 희망일터에 파견되었습니다. 박 국장은 신청서에 "신뢰를 줄 수 있는 브랜드, 고품질을 극대화 할 수 있는 포장형태, 구매를 통하여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 등을 표현할 수 있는 예술적 기술"이 필요하다고 썼습니다. 황퍼실은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은 돈 내고 할 수 있는 일을 예술인들에게 맡기는 일이 절대 아니다"라며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의 의미와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바뀐 협업주제는 "공장 용도로 지어진 희망일터가 지역의 명소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정기 상영회 같은 것이 열려도 좋고 조현병 직원들 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예술워크숍같은 것을 열어서 주민들이 언제든 찾아오고 싶어하는 곳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미술이나 사진 장르의 예술인이 오기를 바라며 황 퍼실과 박 국장은 열심히 움직였습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주최한 '만남의 광장'에 하루도 빠짐없이 가서 앉아있으면서 지나가는 예술인들에게 희망일터를 알리고 또 알렸습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유치하지 못했습니다.

기업/기관과 예술인들이 서로가 서로를 알기 위해 마련되었던 '만남의 광장' 황퍼실과 박국장은 하루종일 땡볕에 앉아있었지만 단 한 명의 예술인도 유치하지 못했습니다.
기업/기관과 예술인들이 서로가 서로를 알기 위해 마련되었던 '만남의 광장'황퍼실과 박국장은 하루종일 땡볕에 앉아있었지만 단 한 명의 예술인도 유치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그러는동안 저는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원래 어떤 도서관에 갈 계획이었습니다.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을 소개한 것이 저였고 그 기관과 제가 함께 선정이 된다면 그 곳으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임의매칭이 없어진 상황에서 희망일터에 아무도 지원하지 않는다면 간신히 퍼실리테이터를 구했다 하더라도 또 무산될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도서관에 사정을 말씀드렸고 그 쪽 퍼실과 기관 담당자는 영화부문 없이 사업계획을 짰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냥 가만히 기다렸습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 그래서 단 한 명의 예술인이라도 가게 된다면 그 사람이 저이기를 바랬습니다.

그런데 일이 이상하게 꼬여가기 시작했습니다. '만남의 광장'에서의 소득 없음, 매칭을 위해 전화를 하고 설득을 했는데도 다른 데를 선택하는 예술인들, 이런 일들을 겪으며 황퍼실 또한 나름의 노력을 했습니다. 전년도에 같이 활동했던 푸른영상의 두 감독을 설득해서 희망일터로 데려온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저는 천진난만하게 희망일터에 지원을 했고 승인을 거부당했습니다. 황퍼실의 입장은 단호했습니다. "같은 기관에 같은 단체 사람 세 명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3차 매칭의 마지막 날까지 아무도 안 왔고 그 때에도 매칭이 안된 채로 신청한 상태면 그 날 승인하겠습니다."

음악가 황도연 희망일터의 예술인들의 대표격인 황퍼실은 협업(콜라보레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아티스트입니다.
음악가 황도연희망일터의 예술인들의 대표격인 황퍼실은 협업(콜라보레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아티스트입니다. 류미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다른 데로 갈까? 사실 두 차례 매칭을 거치면서 지원할 수 있는 기업/기관들은 눈에 띄게 줄었고 초조한 마음도 커져만 갔습니다. 작년 경험에 비쳐봤을 때 강화도에는 아무도 안 올 것같았습니다. 그러면 현재 황퍼실이 데려온 김보람, 문정현 감독 두 사람만 있을텐데 2명 보다는 3명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사람 모두 푸른영상의 다큐멘터리 감독이지만 우리 셋은 다 다르니까요. 문정현 감독이 큰 그림을 그리면 김보람 감독은 꼼꼼히 그 그림을 채워갑니다. 그리고 저는 제작 안에서 혹은 제작 밖에서 주로 글쓰는 일을 담당해왔습니다. 저는 자기소개서에 부지런히 저의 장점을 썼습니다. "저는 작년에도 어떤 영화의 소셜펀딩에 참여해서 성공시켰고 그것을 위해 여러 지면에 글을 썼습니다" 뭐 이런 얘기들을요. 황퍼실은 꿈쩍도 안했지요. 예술인파견지원사업은 서로 다른 장르들간의 협업이 원칙이기에 그 원칙이 우선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제가 2지망으로 지원했던 다른 기업의 승인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예술인인 제가 한 번 더 승인을 해야 매칭은 최종적으로 완료됩니다. 저는 거부를 눌렀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탈락되면 올 한 해 쉬면 되는 거니까.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을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해보자' 그리고 마지막날, 황퍼실은 승인을 눌렀습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희망일터에 배정한 예술인 할당인원은 네 명. 저는 마지막으로 매칭된 예술인이 되어서 희망일터에 파견되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찻잔 속 태풍일 뿐이겠지만 제게는 드라마틱했던 한 달이었습니다. 희망일터와 파견예술인들은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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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즉흥극장 무대에 서다 강화 희망일터의 정신장애인들과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파견예술인들의 5개월간의 기록 ⓒ 류미례


덧붙이는 글 *이 글의 원고료는 정신장애인 직업재활시설 희망일터를 좀더 편안한 공간으로 만드는 데에 전액 보내집니다. 마음을 모아주세요~!
#정신장애인 #희망일터 #예술인파견지원사업 #푸른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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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제작공동체 푸른영상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장애, 여성, 가난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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