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의 영화 <봉천9동> 촬영현장푸른영상과 희망일터 유찬호 신부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발달장애인들의 영화만들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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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미디어교육을 할 때에는 늘 에너지를 나눠받았습니다. 제가 미디어교육 현장에서 만났던 발달장애인들은 하나같이 건강하고 구김없으며 사람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분들이었습니다. 정신장애인, 그 중에서 조현병 환자들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던 저는 약간 두려웠습니다. 주류 미디어에서 조현병 환자들은 주로 범죄나 죽음이라는 단어와 함께 등장합니다. 인천 연수구 8살 초등학생 사건의 용의자도 처음엔 조현병 환자라고 알려졌지요. 하지만 저의 두려움은 다른 쪽에 있었습니다.
10여 년 전, 어떤 분이 푸른영상으로 자신이 만든 다큐멘터리를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로드쇼>라는 제목의 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은 조현병 환자였습니다. 시를 쓰는 주인공은 아주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도 상처를 받는 여리디 여린 분이었고 그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폭력적인 것은 정신장애인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세상에 잘 적응하며 살고 있는 저는 그런 세상의 일부로서 희망일터의 조현병 직원들에게 상처를 줄까봐 두려웠습니다.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제게 한 동료 감독이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조심하는 건 좋은데 걱정은 하지 마. 나도 약 먹고 있어. 우리랑 뭐 많이 다르겠니?"
'영화와 수다'가 마무리가 될 즈음, 3월 말에 발달장애인 영화동아리에서 만든 극영화와 그 메이킹을 함께 보던 날 참여자 중에 한 분인 주자님(실명이 밝혀지는 걸 원치않으십니다)이 이렇게 물어오셨습니다.
"감독님은 그림을 어디까지 그리고 계신가요?"
제가 영화를 틀어드리면 열심히 보시고 조용조용 의견을 말씀하시던 분 중에 한 분이셨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영화감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말을 듣고 주자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희끼리 자체적으로 회의를 했었습니다. 만약에 감독님이 우리에게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요. 저희들은 모두 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 번 힘주어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교육을 하는 것은 그럴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입니다."
이제 와서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그 대화는 제 안의 벽 하나를 무너뜨렸습니다. '교육자와 참여자는 평등하다'는 말을 늘 해왔지만 제 마음 안에 어쩔 수 없이 미세한 위계가 있다는 것을 저는 그 때 알았습니다. 묵묵히 조용히 제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제가 건네는 질문에 부드럽게 응대하면서도 그 분들은 저를, 저의 말을, 저의 미세한 행동을, 놓치지 않고 꼼꼼히 관찰해왔던 것같습니다. 그 대화를 시작으로 저는 편안해졌습니다. 진심을 가지고 신중하게 행동하는 한 제가 일방적으로 상처를 주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 저는 그렇게 그 분들과 교류를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