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국정농단에서 발 빼는 외교부, 정말 책임없나

외교부 “코리아에이드 사업은 수동적으로 주어진 일만 한 것”

등록 2017.12.28 09:39수정 2017.12.28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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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과 27일, 최순실이 개입한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코리아에이드(Korea-Aid)'의 책임 문제를 둘러싼 외교부와 감사원의 조사결과가 잇따라 발표됐다. 코리아에이드 사업 주관부서인 외교부는 추진과정에서의 일부 역할은 인정하면서도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며 책임에서는 한 발 빼는 모양새다.

코리아에이드는 케냐, 우간다, 에티오피아 3개국에서 보건·음식·문화 분야 이동식 차량을 운영하는 ODA 사업으로, 지난해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을 계기로 출범했다. 그러나 최순실 소유의 미르재단이 사업을 주도하면서 사익을 챙기고,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지원하는 ODA를 한식과 K-POP 홍보에 이용해 큰 비판을 받았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현재는 외교부 산하의 코이카가 '모자보건 아웃리치'로 명칭과 사업 내용을 변경해 추진하고 있다.

지난 10월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지난해 외교부가 문서를 조작해 미르재단의 코리아에이드 개입 사실을 은폐했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외교부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9월 두 차례에 걸쳐 코리아에이드(당시 'K-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범정부 TF 회의록 중 하나인 '제5차 K-프로젝트 T/F회의(사전답사단 결과 보고)' 문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2017년 9월 제출한 문서에는 답사단 구성 항목에 외교부와 보건부, 농림부, 문체부 등의 관계부처와 유관기관으로 코이카, KOFIH, 미르재단, Inter PG 등이 명시되어 있는데 반해 2016년 10월 제출한 문서에는 이 항목이 통째로 빠져있었다. 당시는 최순실 국정농단의 시초가 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의혹이 한창 불거졌던 시기로, 외교부가 이를 감추기 위해 누락했다고 충분히 의심할 만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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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국회에 제출한 ‘제5차 K-프로젝트 T/F 회의’ 문서. 왼쪽이 2016년 10월, 오른쪽이 2017년 9월 제출한 문서다. 답사단 구성 항목 중 미르재단 등 일부가 삭제되었다. ⓒ 이인영 국회의원실


이에 국회가 진상규명을 위한 재조사를 요구하면서 외교부는 지난 11월 한 달간 코리아에이드 TF를 구성해 조사를 진행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에서 코리아에이드 관련 내용은 답변의 통일성을 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지침을 내렸고, 이 지침에 따라 국회 문서 제출과정에서 미르재단 관계자가 회의에 참석했다는 내용이 삭제된 것을 확인했다면서 자료 편집은 인정했다. 그러나 "외교부가 사업 세부내용과 관련 일부 수정의견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주로 수동적으로 주어진 일만 담당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6일 브리핑을 통해 "당시 외교부는 미르재단의 실체를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나, 동 사업 추진과정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데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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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외교부 브리핑에서 코리아에이드 TF 결과를 설명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 외교부


한편, 감사원은 코이카가 지난해 코리아에이드 사업추진계획서를 제출하고 공개하는 과정에서 외교부가 미르재단의 개입 기록을 누락·삭제하도록 부당지시 했다는 공익감사청구에 따라 감사결과를 27일 발표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코이카의 모 단장이 국회에 자료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사업 재편내용에 맞춰 수정하면서 미르재단 관련 내용이 삭제되었다. 감사원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을 위한 정보공개법의 취지에 맞지 않게 편집된 자료가 국회에 제출되고 정보공개됐다"고 지적하면서도 외교부에 대해서는 "코이카에게 부당 지시했다고 볼 만한 근거가 없어 직권남용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는 모든 책임이 전 정부와 코리아에이드 시행기관인 코이카에 집중되면서 기획 단계에서 논의에 직접 참여하고, 추진 과정에서도 코이카의 상위부처로 사업을 주관했던 외교부만 책임에서 쏙 빠지게 됐다. 설사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다고 해도 외교부는 담당부처로서 미르재단 참여를 비롯한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고, 이를 '수동적으로' 추진했다는 점만으로도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외교부는 변명을 늘어놓기보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코리아에이드'와 같은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언제고 다시 되풀이될 수 있다.
#코리아에이드 #ODA #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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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대안 피다(구 ODA Watch)는 시민들과 함께 '개발'을 넘어 '발전'을 고민하고, 국내의 부조리하고 불평등한 개발을 '감시'하며 '대안'을 찾아가는 시민사회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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