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한 남성일수록 여성을 더 혐오한다

감정 키워드로 현대 사회 돌아보는 <감정 있습니까?>

등록 2018.01.02 11:07수정 2018.01.02 11:07
0
원고료로 응원
a

감정 있습니까 표지 ⓒ 은행나무


흔히 감정은 사적인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감정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고, 시대마다 감정이 드러나는 구조가 다르기도 하며, 특정 시기 특정 집단에서만 보이는 감정도 있다. 예를 들어, 연애 감정은 개인의 자유가 확립된 근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널리 퍼졌고, 최근 우리 사회에서 전과 다른 강도로 혐오 감정이 집단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래서다. 사람들의 감정을 들여다보면, 사회의 시대상을 읽어낼 수 있다. <감정 있습니까?>는 오늘날 문제가 되는 감정 키워드로 현대 사회를 진단한다.


저자는 여럿이다. 소설가 김운하, 미학자 김주현, 법학자 서윤호, 철학자 윤지영, 문학평론가 임지연 등 다양한 전공의 인문학자들이다. 이들은 연애 감정, 혐오, 분노, 시기심, 수치심, 공포, 애도(우울) 등의 감정과 감정 코칭, 감정 방어, 감정 노동 등의 키워드를 통해 오늘날 감정이 놓인 지점과 감정의 작동 방식 등을 살펴본다.

도시의 무표정‧무관심! 가정에서는 다정하게?

오늘날 사회에서는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할 장소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무표정과 무관심으로 응하는 장소가 나뉜다. 버스, 지하철, 병원, 은행, 관공소를 비롯해 사람들의 이동이 많은 대로변 등의 공간에서는 상호 무관심과 무감각이 자리 잡는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남들이 뭐하는지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이 책에서 '대도시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남기' 장을 쓴 최은주는 이에 대해 '방어 감정'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관리된 우리의 모습은 주로 무표정하고 무관심하다. (…) 대도시에서 살아가려면 어떠한 외부의 위험과 모순에 대해서 태연할 수 있는 방어 표면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고 감동받지도 않는 최소한의 반응을 익혀왔고, 그렇게 해서 생겨난 방어 능력은 점차 두터운 습관으로, 그리고 축도된 감정으로 대체되었다."(67쪽)


그렇지만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외롭고 쓸쓸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어딘가 감정을 분출할 출구를 찾게 된다. 출구의 대표적인 곳이 바로 가정이다. 가정은 눈빛을 교환하고 손을 내밀며 다독이는 등 감정을 표현하고 소통하는 따뜻한 장소로 요청된다. 또한 감정 노동도 생겨나게 된다. 최은주는 이렇게 설명한다.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가족에 대한 기대나 업종에서의 감정 노동의 부담이 커졌다. 따라서 '가족만은 이래야 한다'라는 식으로 가족은 이상화되었으며, 서비스 업종만큼은 소비자의 감정을 최대한 만족시키도록 요구되었다."(72~73쪽)

'대도시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남기' 장에서는 현대 사회에서 감정이 어떻게 코드화되는지 알 수 있어서 흥미롭다.

감정은 대량 생산되고, 지배의 수단이 된다?!

최하영이 쓴 '감정도 코칭이 되나요?' 장도 생각을 깨우는 점이 많다. 현대 사회에서는 감정마저 기계화되고 합리화되며 대량 생산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을 '감정의 맥도날드화'라고 부른다고 소개한다. 감정 조작이 최첨단의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대표적인 장소로 쇼핑몰을 예로 든다.

"쇼핑몰의 브랜드들은 시즌마다 바뀌는 원도우 디스플레이를 통해 자연을 재현하고, 혼란을 보여 주고, 저항과 해방마저도 매끄럽게 포장하여 수백, 수천 개의 매장에 똑같이 전시한다."(53쪽)

감정이 규격화되어 대량 생산된다면, 진짜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게다가 감정이라는 것을 들여다볼수록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사회 구조가 개인의 감정에 강한 영향을 주며 사람들의 감정 작동을 관리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도 생긴다. 0

법학자 서윤호가 쓴 '도대체 뭐가 무서워' 장도 그런 질문을 품게 한다. 서윤호는 공포 감정이 권력과 자본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다고 지적한다. 특히 오늘날 '신자유주의 공포정치'가 작동하고 있다고 한다.

'공포정치'란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정치적 자원으로 이용해 순응하도록 유도하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공포정치가 사회의 공적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 마음에 널리 퍼진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 연금에 대한 공포, 음식과 관련한 공포, 환경에 대한 공포 등이 담론과 정치를 지배한다. 그래서 서윤호는 공포가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등극했다며, 현실을 지배하는 공포의 강력한 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공포는 이제 사람들의 삶을 짓누르는 하나의 감정을 넘어 개인들의 사회적 삶을 지배하는 윤리의 토대이자 사회를 또 다른 모습으로 바꿔버리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207~208쪽)

나아가 그는 "공포가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 모두에 있어서 미래에 대한 기획과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점차 차단한다"고 지적하며, "과연 이러한 공포는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가?" 하고 문제를 제기한다(206~207쪽).

연애 감정, 혐오, 우울 등 돌아볼 수 있어

이 외에도 이 책에서는 다양한 감정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글들을 만날 수 있다. 소설가 김운하는 '낭만적 사랑 따위는 없어' 장에서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낭만적 사랑이 만들어진 역사를 소개한다. 이어 사랑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 바로 낭만적 사랑에 대한 환상이라고 지적한다.

영문학자 김종갑은 '혐오하라, 그러면 구원을 받으리니'에서 요즘 뜨거운 문제가 되고 있는 여성 혐오 감정을 살펴본다. 가부장적 질서가 흔들리는 요즘, 남성은 여성을 혐오함으로써 남성이 되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김종갑은 여성 혐오는 개인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고 분석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통찰력 있는 결론을 제시한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지 못하는 남성일수록 여성을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 마찬가지로 불행한 남성일수록 여성을 더욱 혐오하게 된다. (…) 왜 여성을 혐오하는가? 자기 자신을 혐오하기 때문이다."(135~136쪽)

미학자 김주현은 '우울과 애도, 그 빈자리 너머'에서 미국의 사진작가 낸 골딘의 사례를 들여다보며, 애도 또는 우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상실로 인한 우울을 치료하는 것은 성공적인 애도로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김주현은 "결코 완수될 수 없는 애도, 실패하는 애도가 그나마 성공적"(259쪽)이라며 '끝없는 애도의 과정'을 제안한다. 이는 슬픔과 우울을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우울을 '간직'한 채로 그것을 삶의 창조적 에너지로 잇는 것이라 관심을 끈다. 김주현은 슬픔과 우울의 긍정성을 발견한다.

"우리는 슬픔을 겪으며 자신과 타자를 재정립한다. 타자를 타자로 남겨둘 때 그 어긋남과 불통은 세계와 자신의 한계를 직면하게 만들고, 더불어 살기 위해 불완전성과 불편함과 감내하게 된다. 슬픔으로부터 삶에 대한 충심이 나온다."(260쪽)

우리는 대체로 슬픔과 우울을 대면하기보다 피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주현은 오히려 그것을 대면하고 간직할 것을 제안한다.

감정의 재발견으로 질문을 품게 하는 책

사람은 이성을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감정을 따라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도 한다. 게다가 감정은 이용당하기 쉽다. 우리가 감정을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이 책은 감정은 이성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자질이며 능력이라고 한다(24쪽). 이는 왜 감정을 성찰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지 알려주는 또다른 이유다.

인상적이고 다채로운 글들을 모아놓은 이 책은 감정을 재발견하게 하고 여러 질문을 품게 만든다. 그리고 감정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알아보게끔 자극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 사회를 들여다보는 감정의 사회학 입문서로서 꽤 좋은 역할을 하는 책이다.

감정 있습니까? - 연애 감정부터 혐오까지, 격정적인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10가지 감정 지형

몸문화연구소 지음,
은행나무, 2017


#감정 구조 #감정의 규격화 #감정의 재발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