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명색이 내 용돈을 주시고 싶으셨는지 나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몰래 돈을 두고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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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아. 네 차 뒷좌석에 오만 원 놓고 왔다. 너한테 주면 네가 안 받을 것 같아서 내릴 때 몰래 놓고 왔어. 맛있는 거 사 먹어. 엄마, 잘 놀다 간다."엄마는 9살, 4살 손자들에게도 크리스마스라며 용돈 오만 원씩 각자 손에 쥐어주셨다. 사실 애들 용돈은 내 지갑으로 흘러들어온다. 그런데도 엄마는 내 용돈을 주시고 싶으셨는지 나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몰래 돈을 두고 가셨다. 직접 주면 딸이 안 받을 걸 뻔히 알아서 뒷좌석에 덩그러니 놓고 가셨다. 직장 다니며 월급 받는 큰 딸에게 무슨 용돈을 주고 싶으셨을까. 마음이 저려왔다.
엄마한테 효도한다던 딸은 어디로 갔나 지난달 친정에 갔을 때 잠옷 바지를 욕실에 두고 왔다. 엄마는 보풀이 덕지덕지 피어난 바지를 보고 안쓰러웠는지 이번에 오실 때 정장 바지 두 개를 사오셨다. 정장 바지를 잠옷 바지처럼 입고 잘 수 없는데 말이다. 그냥 막 입는 잠옷이었는데, 그 옷을 본 엄마는 마음이 편치 않았나 보다.
딸만 둘인 집안의 장녀라 매번 무뚝뚝한 큰 아들처럼 정 없게 굴고, 못된 말하고 대하기 어려운 딸처럼 굴어왔다. 어릴 때는 '이 다음에 크면 엄마에게 효도해야지' 하고 다짐해놓고는, 막상 두 아들의 엄마가 되자 '친정엄마의 삶은 같은 여자로서 보기에 답답하다, 자신의 삶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평가를 속으로 하곤 했다. "엄마한테 효도해야지"라고 다짐했던 착한 딸은 "엄마처럼은 안 살 거야"라고 말하는 못된 딸이 되었다.
얼마 전 KBS 2TV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고백부부>를 보면서 나는 목이 잠길 정도로 펑펑 울었다. 이혼한 남편과 함께 10년 전으로 거슬러 돌아간 여자 주인공(장나라)은 임종도 못 지키고 떠나 보낸 친정 엄마와 극적으로 다시 만났다. 극중 여자 주인공이 딸만 둘인 집안에서 자란 게 나와 똑같았고, 극중 친정 엄마의 모습도 우리 엄마와 닮아서 더 몰입하며 봤다. 드라마 한 편 한 편이 너무나도 와닿았다.
극중에서 막내 딸인 여자 주인공이 엄마에게 함부로 대하는 언니에게 충고하는 말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엄마가 쭉 우리 옆에 있을 것 같아? 없어. 너랑 내 인생에 손수 껍질까지 다 까서 주스 갈아 줄 사람, 아침 챙겨줄 사람. 엄마 없으면 세상 어디에도 없어. 남편이 해줄 것 같아? 자식이?"그동안은 엄마가 해주는 모든 것들을 감사하게 받지 않았다. 쓸데없는 돈 쓴다며 엄마에게 되레 잔소리한 적도 많았다. 엄마가 주는 사랑을 고스란히 예쁘게 받지 못했던 나였다. 어쩌면 엄마의 사랑을 매번 당연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감사할 줄 모르고, 고마운 줄 모르고, 엄마의 사랑이 모두 당연한 것이라 여겨 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도 자식을 키우고 있다. 지금 내가 아이들을 키우듯, 우리 엄마 역시 평생 자식을 위해 살아왔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였다.
사랑은 서로 닮아가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