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름 사이로 태양이 뜨자... 마을이 웃었다

[빛그림] 사흘 눈 폭풍 속 시골 마을의 풍경

등록 2018.01.15 10:23수정 2018.01.15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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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속에 묻힌 마을 ⓒ 이민희


대설경보가 내려지고 사흘 밤낮을 쉴 새 없이 몰아치던 눈 폭풍이 지나갔다. 내가 사는 곳(전남 영광)은 서해안 가까이 있어 눈이 많은 편이긴 하지만 이번 눈은 정말 위력적이었다. 제설차량이 지나가기 무섭게 눈은 다시 빠른 속도로 쌓이고 도로에 얼어붙었다. 차들이 미끄러져 논두렁에 처박히는 사고가 속출했다. 20cm 이상의 눈이 짧은 기간에 쌓인데다 기온마저 곤두박질치니 마을 곳곳이 고립됐다.


매일 보호가 필요한 어르신들을 모셔와 케어하는 '주간보호센터'가 사흘 넘게 운영이 중단됐다. 일주일에 두 번씩 먹거리와 생필품을 싣고 마을 구석구석 들어가는 '이동장터'도 열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골 마을 많은 어르신들이 고립된다. 특히 치매나 노인성 질환을 두세 개씩 안고 있는 홀몸 어르신들에게는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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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동안의 눈폭풍이 지나가고 고드름 사이로 태양이 떴다 ⓒ 이민희


어르신 댁 보일러와 수도는 괜찮은지, 한파에 무탈하게 잠을 주무셨는지, 식사는 거르지 않았는지, 약은 제때 잘 챙겨드셨는지, 안부를 묻고 확인해야 할 사항들이 많은데 속절없이 내리는 눈을 보면 주간보호센터 식구들은 애가 탄다. 긴장과 걱정 속에 어르신 댁에 모두 안부 전화를 드린 뒤에야 한숨 돌렸다. 생사확인이 되었으니 이젠 방문할 차례다. 따뜻한 밥과 국, 반찬을 준비해 마을 속으로 들어간다. 눈이 워낙 많이 내려 대부분은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워 놓고 걸어 들어가야 한다. 차로 가면 후딱 지나갈 길도 눈 속을 걸으니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속에서도 절대 보일러를 켜지 않는 어르신. 장화를 신고 무릎까지 찬 눈밭을 가로질러 옛날식 화장실에 다녀야 하는 어르신. 치매로 인해 끼니를 챙겨야 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한 채 어두운 방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 순백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전쟁 같은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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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설 작업이 안 된 마을길을 처음으로 가로질러 어르신을 찾아가는 길 ⓒ 이민희


대문 밖에서부터 큰 소리로 어르신을 부르며 들어가니 방문을 열고 함박웃음으로 맞아주신다. 어르신들의 거칠고 차가운 손을 꽉 잡아본다. 눈이 정말 징하게 왔다면서, 꼼짝을 못하고 방안에만 있었다면서, 찾아와줘서 고맙다며 끌어안는다. 가지고 간 뜨끈한 국물과 밥으로 간단한 식사를 차려드리고 어르신의 집 안팎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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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시골집 풍경 ⓒ 이민희


사흘 만에 고드름 사이로 햇살이 비췄다. 교통통제로 막혔던 도로가 뚫렸다. 마을회관도 활기를 찾았다. 우체부들은 눈 때문에 들어가지 못했던 마을에 우편배달을 재개했다. 동네 점방에도 다시 배달 주문 전화가 울렸다. 마을이 다시 제자리를 찾고 있다. 혹독한 겨울을 통과하면 어김없이 봄이 올 것이다. 큰 사고 없이 잘 이겨냈다. 참 다행이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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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눈, 파란 하늘. 그림 같은 풍경들 ⓒ 이민희


#폭설 #한파 #대설경보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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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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