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아빠학교협동조합 김태영 이사, 신호승 이사장, 손병기 이사.
권우성
신호승(53)씨는 지금은 20대인 딸 때문에 '대화 활동가'가 됐다. 공동체 내 갈등을 대화를 통해 전환하는 법을 강의하고 활동가를 육성하는 일을 한다. 신씨가 기억하는 딸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는 아이와 이야기만 하면 싸웠다. 도무지 대화가 안 됐다.
아이의 질문에 신씨는 관념적인 답변을 했고, 아이는 아빠한테 물어보면 더 어려워진다고 짜증을 냈다. 반면 엄마와 아이는 '짝짜꿍'이 맞았다. 집안에서 혼자만 소외당하는 기분이었다.
"애랑 자꾸 싸우니까 화를 내게 되고, 제가 화를 내면 애는 울고. 서로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거죠. 평생에 딸 하나 키우는데 애하고 이렇게 대화를 해야 하나, 관계를 맺어야 하나, 다른 방법은 없나 방법을 고민하던 차에 비폭력 대화를 알게 됐어요. 지금은 굉장히 사이가 좋아졌어요. 딸하고 대화가 너무 많아서 탈이죠. 이렇게 되는 데 10년 걸리더라고요(웃음)."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인 손병기(54)씨 역시 아들과의 관계가 힘들었다. 평생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인생이었다. 아이가 4살 때부터 5년간 회사 지방근무로 가족과 떨어져 살았다. 손씨는 아이가 아빠를 가장 필요로 했던 시기에 아이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며 자책했다. 중고등학교 6년간은 아이가 대안학교 생활을 하느라 또 다시 떨어져 살았다.
밖에서는 친구들과 장난도 많이 치고 말도 많다는 아들은 집에 오면 말이 없고 무거웠다. 그런 아들에게 다정다감하고 살가운 아빠가 돼보려 뒤늦게 교육을 받고 책도 읽으며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저도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다 보니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가슴으로 잘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효과가 없는 거예요." 아이가 아빠를 필요로 할 때는 회사 일 때문에 바빴고, 이제 아빠가 여유가 생기자 아이가 바빠졌다. 손씨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이 시대 아빠들의 자화상이라고 표현했다. 아들은 최근 군대에 입대했다.
출판사 대표인 김태영(52)씨는 현재 중3인 딸과 비교적 잘 지내는 편이다. 다른 아버지들처럼 가끔씩 '욱'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꼭 딸과 포옹을 나누는 등 스킨십을 자주 하며 유대감을 다지려고 한다.
김태영씨의 고민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고 적극적으로 학교 활동에 참여하다 보니 점점 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아이가 대안학교를 졸업한 이후에는 어떻게 하지, 나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까, 아빠이기 이전에 '나'라는 정체성을 찾고 싶었다.
아빠는 왜 이런 존재가 됐을까'아빠'라는 역할에 대한 각기 다른 고민을 가진 아빠들이 '아빠학교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만났다. 시작은 신호승씨의 아이디어였다. 역시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냈던 신씨는 대안교육부모연대에서 교육위원장 일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