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일에 데모하는 호주 원주민

[호주 시골 생활 이야기]

등록 2018.01.26 21:40수정 2018.01.26 21:4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호주에는 자원봉사 활동이 활발하다. 동네 자원봉사자들의 이른 아침부터 참가한 사람들에게 간단한 아침을 제공하고 있다. ⓒ 이강진


1월 26일은 '호주의 날'(Australia Day)이다. 1788년 호주에 상륙한 아서 필립(Arthur Phillip)이 영국 국기를 게양한 날을 국경일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국경일이라고 모두 반기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호주 원주민의 반대는 심하다.


텔레비전에서는 멜본(Melbourn)과 시드니에서 호주의 날 반대시위를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다. '호주의 날'을 원주민들은 '침략의 날'이라며 항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호주의 날'을 다른 날로 바꾸어야 한다는 여론도 높다. 원주민을 비롯해 호주 사람 모두가 즐기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반대가 있지만, 호주의 날에는 호주의 수도 캔버라(Canberra)를 비롯해 수많은 도시에서 기념행사가 열린다. 공통적인 행사로는 호주 시민권 수여식일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 호주에 정착한 사람들이 호주 시민권을 취득하며 선서하는 날이기도 하다. 시민권 수여식에는 표를 의식한 정치인이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오늘은 전국적으로 1000여 명에 달하는 사람에게 호주를 빛낸 '호주인 상'이 주어진다. 

작은 바닷가 마을 우리 동네에도 기념식이 열린다. 며칠 전에 호주의 날 아침에 간단한 바비큐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쪽지를 받았다. 이곳에서 매년 열리는 행사지만 아직 참석한 적이 없다. 처음으로 아침도 해결하며 바다 구경도 할 생각으로 행사장으로 향한다. 자동차로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행사장이 있다. 이날은 시골답지 않게 행사장 근처에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바다 수영장 옆에서 열리는 행사장에 도착했다. 라이온즈 클럽(Lions Club) 자원 봉사자들이 열심히 소시지를 굽고 있다. 이제는 익숙한 호주 스타일의 바비큐, 빵에 소시지와 양파를 얹은 다음에 토마토소스를 뿌린 빵 한 조각을 들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다. 물론, 무료로 제공되는 커피도 한 잔 마신다.

동네 모임에 나가면 지금은 아는 사람도 종종 만난다.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주위에 동양 사람은 우리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행사장 사진사가 빵을 먹고 있는 나에게 카메라 초점을 맞춘다. 사진사와 눈인사를 나눈다. 아마도 내 사진이 지역 뉴스에 나올는지 모르겠다. 주위를 보니 서너 명의 기자들도 서성거리며 취재하고 있다.


사회자의 안내를 받은 지역 정치인이 축사를 한다. 주 국회의원이다. 정치인이 축사에서 통상적으로 하는 말로 자신을 홍보한다. 자신의 부모 혹은 친척도 외국에서 온 이민자라는 내용이다. 축사에 이어 동네에서 오래 산 할아버지가 마이크를 잡고 동네 역사를 이야기한다.

동네의 자랑스러운 호주인 상 수상자가 추천되어 상을 받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국기 게양식이 진행된다. 자원 봉사자로 이루어진 소방대원들이 호주 국기를 천천히 올린다. 시드니에서 놀러 왔다는 초등학생 둘이 나와 선창한다. 선창에 맞추어 참석한 사람들도 호주 국가를 부른다.

행사를 하는 바로 옆 수영장에는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해변에도 산책하는 사람, 파도 타는 사람으로 붐빈다. 이날이 공휴일이면서 금요일이기 때문에 연휴를 맞아 시드니에서 온 사람도 많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본다. 방송에서 호주의 날 기념식을 보도하고 있다. 국영 방송에서는 원주민 대표 몇 사람이 출연해 '호주의 날'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호주를 점령한 사람에게는 '축제의 날'이지만 원주민에게는 '저주의 날'이라는 날 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오래전부터 있어온 이야기다.

백인에게 수많은 선조가 학살당한 원주민 처지에서 보면 울분을 토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편 입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삶을 실천할 수 있다면 크고 작은 수많은 세상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미 통일된 한국에서 살고 있을 수도 있다.

실천하기 힘들겠지만, 올해는 '역지사지'라는 말을 곱씹으며 살고 싶다.

a

공휴일을 맞아 수영장에서 지내는 가족들. 먼 발치에서 호주의 날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 이강진


#호주 #NSW #HALLIDAYS POINT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사 탄핵' 막은 헌법재판소 결정, 분노 넘어 환멸
  2. 2 서울 사는 '베이비부머', 노후엔 여기로 간답니다
  3. 3 택배 상자에 제비집? 이런 건 처음 봤습니다
  4. 4 나이 들면 어디서 살까... 60, 70대가 이구동성으로 외친 것
  5. 5 윤 대통령 최저 지지율... 조중동도 돌아서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