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쓰는 사람은 '점심' 대신 '김치찌개'라고 쓴다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 구체적으로 쓰는 법

등록 2018.01.30 16:54수정 2018.02.2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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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과 함께 고민할 글쓰기 주제 역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글쓰기 요령과 관련한 글에는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주제이다.

"구체적으로 써라!"


이 주제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이 연재에서 오래 전에 얘기했던, 글을 왜 쓰는 걸까 하는 글쓰기 목적에 대해 다시 한 번 간단하게 짚어보고 가자.

글을 왜 쓰는가. 답은 간단하다. 누군가(독자)에게 무언가(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누군가에게 전할 것이 없다면 굳이 글로 쓸 필요가 없다. 말과 글이 같다는 설명을 이미 하였던 바, 이 논리에 따르면 말로 해도 될 것이면 말로 하면 그만이다. 더욱이 누군가에게 전할 것도 아닌 단순히 나 혼자(나도 당연한 독자임)만을 위한 것이라면 머릿속에 담아두면 그만이다.

그러나 말이 아닌 글로 써야겠다면 맘먹는다는 것은, 말하는 순간 사라지는 휘발성 강한 말보다는 오래오래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했을 터이고, 기억력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머릿속에 저장하기보다는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터이다.

그렇다면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쓴다"는 글쓰기 목적을 충족시켜야 하는 당위가 생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되, 이왕 쓰는 거 독자의 궁금증을 최소화해주는 것이 좋다. 바로 내가 일전에 설명한 '좋은 문장의 조건'을 만족시킬 필요성이 요구된다. 즉 "쉽고 빠르고 정확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글"을 써야 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오늘 주제 얘기로 들어가 보자.

"구체적으로 써라"는 명제는 이미 이 주제 문장 속에 답이 다 들어 있다. 이 문장을 달리 해석할 여지가 전혀 없다.


글을 쓰되, 구체적으로 쓰라는 것일 터인데, 그럼 어떤 것이 구체적인 것일까. 예를 들어보자.

"나는 점심을 먹었다"라는 문장이 있다고 해보자.

이 문장을 보면 글쓰기의 가장 친한 친구 여섯 명, 즉 육하원칙(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의 조건을 거의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우선 드는 궁금증은, 메뉴는 무엇이었는지, 어느 식당이었는지이다. 이밖에도 누구와 함께 먹었는지, 몇 시에 먹었는지…등등의 궁금증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 점심을 먹었다는 사실(팩트)을 보다 구체화시켜보자.

"나는 오늘 점심에 회사 직원들과 OO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다."

영혼 없는 글쓰기

 점심을 먹었다는 사실(팩트)을 보다 구체화시켜보자.
점심을 먹었다는 사실(팩트)을 보다 구체화시켜보자.wikimedia commons

그렇다. 앞에서 말한 육하원칙들을 넣어 쓰면 문장이 분명히 구체적으로 된다. 구체적으로 쓴다는 것은 두루뭉술한 표현보다는 실질적인 내용을 쓰는 것이다. '점심을' 먹었다 대신 '김치찌개'를, '회사 직원들'과 'OO식당'이라고 명시하는 것이다.

물론 이 문장에서도 "김치찌개가 맛있었는지"와 같은 궁금증이 더 생기게 마련이다. 그럼 글쓴이는 당연히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으로 쓰면 된다. 

"이 식당 주인은 김치찌개에 절대로 라면 사리를 넣지 못하게 한다. 김치 고유의 맛을 해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그래서 식당에 아예 사리용 라면을 두지 않는다는 철학을 고집스레 지킨다."

글을 구체적으로 쓴다는 것은 어찌 보면 독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작업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점심을 먹었다"는 표현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래서 글쓴이의 영혼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다.

그런데 "라면 사리를 못 넣는 김치찌개"라는 표현은 오직 글쓴이만이 할 수 있는 문장이다. 독자들은 이런 문장에 감동한다. 온갖 궁금증을 자아내는 문장에는 시큰둥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느냐며, 누군들 점심을 안 먹느냐, 뭘 먹었느냐, 그 맛이 어땠느냐가 궁금한데, 이 문장에서는 도무지 이런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고 푸념한다.

그렇다면 글쓴이는 늘 독자가 뭘 궁금해 하는지를 체크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지만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나라면 이 두루뭉술한 문장에서 궁금해 할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것이 1차적인 방법일 것이다. 물론 이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쓴 글을 공개하기에 앞서 주변 사람들에게 먼저 읽히고, 읽고 난 소감을 수렴해서 다시 수정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 좋다.

예전에 학자 출신으로 총리를 지냈던 분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분은 칼럼을 쓰면 반드시 조교에게 읽히고, 그리고 집에 가져가 아내에게 읽히고 의견을 수렴하여 수정한 다음에야 신문사에 보낸다고 했다. 지금도 그가 말한 칼럼 쓰기 방식이 생생하게 기억에 떠오른다.

"사물이나 현상이 일정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사전적 풀이를 갖고 있는 '구체적'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를 곱씹어보자. 그 의미에 충실할 때 당신의 문장은 독자의 공감을 산다는 사실. 따라서 문장력은 바로 '구체적인 표현력'에 달려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조성일의 글쓰기 충전소'에도 포스팅했습니다.
#구채적으로 써라 #글쓰기 방법 #글쓰기 요령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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