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구속중이었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5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이 부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이희훈
역시 재벌공화국다운 판결이었다. 그동안 재벌권력에게 지나치게 관대했던 재벌공화국의 법원이 그 이름에 걸맞은 판결을 내놓았다. 서울고법 형사13부(정형식 부장판사)는 5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하면서 석방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17년 2월 17일 구속된 이래 353일 만에 자유의 몸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당연한 결과로 이 부회장과 공범으로 기소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게도 각각 징역 4년을 선고한 1심을 깨고 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면서 석방됐다.
1심에서는 298억 2천만 원의 뇌물에 대하여 89억의 뇌물만, 298억 2천만 원의 횡령에 대하여는 80억 9천만 원의 횡령을, 78억 9천만 원의 재산국외도피에 대하여는 37억 3천만 원을, 77억 9천만 원의 범죄수익은닉에 대하여는 64억 6천만 원을 유죄로 인정하면서 징역 5년을 선고했었다. 이미 1심에서도 상당 부분 무죄를 인정받으면서 특검의 칼을 무디게 만들었었다.
항소심선고를 앞두고 언론들이 모두 들고 일어섰다. 묵시적 청탁이 있었는지의 여부, 이른바 0차 독대가 있었는지, 말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공모공동정범을 인정할 수 있는지, 삼성그룹의 최종 책임자가 이재용 부회장인지의 여부가 주요 쟁점일 거라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곁들이는 방식으로 기사를 쏟아냈었다.
항소심은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과 재산국외도피 부분을 무죄로 보면서 최순실의 딸 정유라씨에 대한 승마 지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뇌물로 인정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재용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최씨는 뇌물 수령으로 나아갔다는 이유로 두 사람의 공모를 인정하면서 코어스포츠에 건넨 용역대금 36억 원과 최씨 측에 마필과 차량을 무상으로 이용하게 한 '사용 이익'만을 뇌물로 인정했다. 삼성이 마필 소유권을 최씨 측에게 넘긴 것으로 인정할 수 없는 만큼 마필 구매 대금 등은 뇌물로 볼 수 없다 이유다.
항소심 재판부는 뇌물공여와 함께 적용됐던 특경법상 재산국외도피 혐의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코어스포츠에 용역비로 보낸 36억 원은 뇌물로 준 돈일 뿐 이 부회장이 차후 사용하기 위해 국내 재산을 해외로 빼돌린 게 아니라는 점을 무죄 이유로 들었다.
재판부는 승계작업을 위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는 이유로 "삼성의 승계 작업이라는 포괄적 현안이 존재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재센터 후원금을 유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1심은 이 사건의 본질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며 정경유착의 전형이라고 지적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와 달리 판단한 것이다. 결코 적은 금액은 아니지만, 특검이 기소한 뇌물 298억 원과 비교하면 공소사실 상당 부분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이 사건은 특검이 규정한 사건의 본질과 거리가 있다고 보여진다. 정치권력과 뒷거래, 국민 혈세인 공적자금 투입과 같은 전형적 정경유착 등을 이 사건에서 찾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서 재판부는 "이 사건은 대한민국의 최고 정치권력자인 박 전 대통령이 삼성 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하고,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씨가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한 것"이라고 이 사건의 핵심을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으로서는 정유라 승마 지원이 뇌물에 해당한다는 인식을 하면서도 두 사람의 요구를 쉽게 거절하지 못해 수동적으로 뇌물공여로 나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처럼 요구형 뇌물 사건의 경우엔 공무원에 대한 비난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국정농단의 주범은 헌법상 부여받은 책무를 방치하고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타인에게 나눠준 박 전 대통령과 그 위세를 등에 업고 사익을 추구한 최씨로 봐야 한다면서 이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1심이 유죄로 인정한 횡령액을 전부 변제한 것 등을 양형이유로 설명했다.
판결은 국민들의 법 감정을 떠나 홀로 존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