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 무엇이 딸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 2018년 2월 12일

등록 2018.02.12 11:07수정 2018.02.1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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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연


아버지는 너희들을 보며 "내 딸들은 무엇이 있어야 행복을 느낄까? 그 무엇이라는 게 돈일까? 내가 생각지 못한 정신적인 그 어떤 가치일까?" 하고 종종 생각할 때가 있다.


10여 년 전 아버지와 여러 가지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사람의 임종이 임박해 문병을 갔었지. 그분은 내 손을 꼭 쥐며 그동안 미안했다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다 자기가 잘못한 일이었다며 화해를 청했어. 그렇게 둘이서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화해를 했고 며칠 후 그 사람의 숨은 멎고 말았지. 그를 보며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한 말이 떠오르더구나.

'삶의 끝에 서면 당신은 자신이 한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을 하는 동안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것이다. 당신은 행복했는가, 다정했는가, 자상했는가? 타인을 보살피고 동정하고 이해했는가? 너그럽게 잘 베풀었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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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는 날 만나자.
(몇 해 전 너와 함께 만들었던 추억이다)

나는 내일모레 결혼을 앞둔 딸 둘을 가진 아버지다. 어느 눈 내리던 겨울, 작은딸과 엎드려 새우깡을 우적우적 씹으며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뭘 해도 자신만만했든 아름다웠든 젊은 날의 약속이 생각났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청춘의 현란한 감성이 널뛰기하던 젊은 날, "첫눈 오는 날 만나자."는 약속 한 두 번 안 해본 사람 있던가? 그녀와 함께 열차 안에서 기타를 뚱땅거리며 청평으로 떠났던 청량리역으로 작은딸을 꼬여서 함께 나갔다.

첫눈인지 두 번째 눈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다음에 결혼해서 애들 다 키워놓고 첫눈 내리는 날 만나자는 약속을 지키러 나왔다는 게 중요했다. 딸아이와 발을 동동 굴러가며 역광장 포장마차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데 내 하는 짓이 딸의 눈에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다.

"아빠 누구 만나러 나온 것 맞아?"
"그럼."
"사람 기다리는 그런 사람 같지 않은데? 왜 그렇게 느긋해?"
"글쎄 좀 더 기다려보자."
"아이 추워! 커피 한 잔……."

"누구 만나기로 했는데? 아빠 지금 창밖에 한 번도 안 내다봤거든?"
"사실은 첫눈 내리는 날 만나기로 한 사람이 있거든……."

"와! 우리 아빠. 어디 사는 누군데? 옛날 애인? 미치겠다 정말."
"강원도 원주 사는 아가씬데 아니지, 지금은 아가씨가 아니겠구나. 히히"
"……."

"아빠."
"응."

"일기예보 보니까 지금 원주에는 눈이 안 온답니다. 아이고, 철딱서니 없는 우리 아빠. 이거 뭐 천연기념물도 아니고 나이 60이 다 돼서 첫눈 내리는 날 만나기로 한 옛 애인을 만나러 나왔어! 어쩜 좋아. 눈물 나오려고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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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시와 아름다움과 낭만과 사랑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여야 한다는 것을'

아버지 책상 위의 커다란 받침에 쓰여있는 한양대학교 정재찬 시인의 글귀다. 사람이 어찌 밥만 먹고 살 수 있으랴? 두 번 세 번 읽어가며 그 뜻을 잘 음미해 보아라. 시인의 고뇌를 표현한 시 하나 소개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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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쥐의 말씀

- 오봉옥

저 죄 많은 두발짐승은 시인이란다. 끼끼, 시를 쓴답시고 지금 동강을 간단다. 절집을 찾는단다.

저들이 느릿느릿 게걸음 질 치는 건 꽃길에 취해서가 아니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건 속죄의 옷자락이 무거워서란다.

저들에겐 고통을 키우는 유전자가 있단다. 너희는 아득한 구멍 속에서 캄캄한 희열을 느끼지만, 저들은 환한 길을 가면서도 터널 같은 외로움을

느낀단다. 이 어미의 눈엔 저들의 내장까지도 보인단다. 저들이 가고 있는 길, 밑도 끝도 없이 꿈을 꾸며 가야 할 길, 가서는 다시 돌아올 그 길이 다 보인단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두발짐승으로 태어났을꼬. 몇 생이나 닦아야 우리 같은 존재가 될꼬.

천년의 시작 '노랑' 42쪽 (줄 바꿈은 시집 원본 그대로 한 것이니 나중에 시집을 찿아 읽어보거라.)

#모이 #딸에게쓰는편지 #아빠 어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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