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직원의 지속적인 성희롱 문제를 제기한 충남도 기간제 여직원 A씨는 충남도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가 '성희롱이 아니다'는 결론을 낸 당시를 떠올리며 "조직이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A씨는 12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충남도청에서 일하며 B씨로부터 있었던 지속적인 성희롱과 진정을 제기한 이후 최근까지 겪어온 고충에 대해 털어놨다.
A씨는 지난해 말, 충남도청 같은 팀 내 상급 남성 공무원인 B씨가 회식 자리에서 '키스해 주면 연봉을 올려 주려고 했으나 키스를 안 해 줘서 연봉을 깎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상습적으로 성희롱했다며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충남도성희롱심의위원회는 "피해자가 행위자의 말을 오해해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며 성희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특별감사에 나선 충남도감사위원회는 최근 B씨에 대해 모두 9건의 성희롱 사실이 인정된다며 도 인사위원회에 중징계를 요청했다.
A씨는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로부터 '성희롱이 아니다'는 결론을 전해 들었을 때 가장 힘들었다"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고 환청을 들은 건가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제 얘기를 믿어주지 않는 조직이 너무 무서웠다"고 밝혔다.
그는 도감사위원회가 성희롱으로 인정한 9건에 대해 "(내용 공개는 하지 않지만) 성희롱 발언의 농도가 매우 심하다"며 "그때마다 문제 제기를 했지만, 진정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매일 얼굴을 보며 일해야 하는 상급 직원이기에 감수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발언('키스해 주면 연봉을 올려 주려고 했으나 키스를 안 해 줘서 연봉을 깎을 것')은 "지위를 이용한 갑질 성희롱이어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동안 모든 과정을 혼자 판단하고 감내해야 했다"며 "미리 이런 시스템인 걸 알았다면 서류를 내러 갔을 때 포기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향후 개선책에 대해서는 "진정을 제기했을 때 곧바로 성폭력 외부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성희롱고충처리위원회에서도 감사위원회처럼 진정 내용에 대한 사실 확인 조사 작업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충남도공무원노동조합에 도움 요청했지만 외면했다는 논란에 대해서는 "사건 초기 노조 사무총장을 만나 피해 내용을 전하며 '노조 추천 권한이 있는 3명의 심의위원을 추천할 때 공정한 사람들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이를 노조 측이 개인에게 요청한 것이고, 노조 간부의 당시 얘기도 '개인 의견'이었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는 말로 불만을 토로했다.
아래는 이날 A씨와 나눈 주요 인터뷰 요지다.
- 약 한 달 반 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 가장 힘들었던 일은?
"여기까지 오는 과정 자체가 모두 힘들었다. 하지만 그중 충남도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로 부터 '성희롱이 아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가장 힘들었다."
-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가 '성희롱이 아니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했나?
"아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행위자 본인이 명백히 사과까지 한데다가 성희롱 정황이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 성희롱고충심의위원회로부터 '성희롱이 아니다'는 결과를 전해 들었을 때 심경은?
"우선 온몸에서 힘이 빠져 나갔다. 환청을 들은 건가 싶었다. 제 얘기를 믿어주지 않는 조직이 너무 무서웠다. 이전에 일하던 조직보다는 공무원 조직이 더 깨끗하고 공정하게 가동된다고 생각해 왔는데 순간 믿음이 산산이 깨져 버린 거다. 다 짜고 한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내가 모르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한동안 동료들도 무서웠다. 주변에서 당시 제 얼굴을 본 분의 얘기로는 '얼굴이 사색이 됐다'고 하더라."
- 반면 도감사위원회에서는 성희롱이 인정된다며 도 인사위원회에 중징계를 요청했는데?
"사실 사건 초기 행위자에게 공개 사과를 받는 거로 끝내고 싶었다. 같은 공간, 같은 팀에서 일하는 상급 직원이라 더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경각심을 갖게 하자는 정도의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물증은 없지만, 증인을 회유하는 등의 과정에서 보여준 일이 굉장히 악하게 느껴졌다. 이때문에 지금은 징계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도감사위원회에서는 행위자인 B씨에 대해 9건의 성희롱을 인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감사위원회에 제기한 9건의 내용은?
"이에 대해서는 말씀드리지 않겠다. 양해해 달라.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지속해서 있었던 일로, 성희롱 발언의 농도가 매우 심하다. 그때마다 그냥 참은 게 아니라 '불쾌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다만 진정을 제기하지 않은 것은 20대 때도 음담패설 하는 선배에게 강력하게 항의했었는데 이 일로 관계가 어색해졌다. 그런 경험이 있어 매일 얼굴을 보며 일해야 하는 상급 직원이기에 감수해야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키스해 주면 연봉을 올려 주려고 했으나 키스를 안 해 줘서 연봉을 깎을 것'이라는 말은 지위를 이용한 갑질 성희롱이어서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 일을 겪으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느낀 점이 있다면?
"진정을 제기하기 위해 도 여성가족정책관으로 혼자 가는 일 자체가 너무 힘들었다. 누가 동행만이라도 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희롱고충상담을 했지만 결국 입증은 피해자 본인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모든 과정을 혼자 판단하고 감내해야 했다.
상담자들은 제가 진술한 내용을 심의위원회에 그대로 넘겼을 뿐 사실 확인 작업조차 하지 않았다. 어떤 자료가 부족하다거나 보안이 필요하다는 조언조차 하지 않았다. 뒤늦게 운 좋게 성희롱 관련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대처할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무식해서 용감했다고 생각한다. 미리 이런 시스템인 걸 알았다면 서류를 내려갔을 때 포기했을 것 같다.
개선점을 말하자면 우선 초기 단계 성희롱 진정을 상담하는 도청 내 상담원들의 전문 능력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 또 성희롱 진정을 제기했을 때 곧바로 성폭력 외부 전문가의 조력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또 성희롱고충처리위원회도 감사위원회처럼 진정 내용에 대한 사실확인 조사 작업을 해야 한다고 본다."
- 힘이 됐던 일은?
"도청 직원들의 내부 통신망을 통한 격려와 응원이다. 또 외부 전문가의 도움도 큰 힘이 됐다. 이런 분들이 있어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B씨와 같은 행위자가 있었지만 이런 분들은 조직내에서 소수라고 생각한다."
- 행위자인 B공무원의 성희롱 내용이 전해졌을 때 도청 내에서도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혹 이후 '미투(Me Too)' 사례가 있나?
"그런 사례는 없다. 다만 한 직원이 B공무원이 자신을 껴안으려 했던 사례를 감사위원회에 진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 사건 초기 노조에 도움을 청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있는데?
"정확히 지난달 3일 노조 사무총장에게 직접 연락해 만났다. 노조에 요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관련 규정에는 충남도성희롱심의위원회에 노조위원장이 추천하는 3명이 심의위원으로 참여하게 돼 있었다. 노조 간부를 만나 제가 겪은 피해 내용을 전하며 '노조가 3명의 심의위원을 추천할 때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람들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한 답변은 그 날도 이후에도 듣지 못했다. 노조가 제 요청을 노조가 아닌 개인에게 요청한 것이고, 노조 간부의 당시 얘기도 '개인 의견'이었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다행히 충남도가 내부 규정이 정부 지침과 어긋난 것을 뒤늦게 알고 노조위원장 추천 규정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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