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스 할머니 그림
수오서재
요일마다 더 힘을 들여서 해야 하는 일을 밝히는 대목을 읽다가 빙그레 웃습니다. 날마다 똑같이 하는 일이 있었을 테고, 요일에 맞추어 온힘을 쏟아야 하는 일이 있었을 텐데, 집이 마치 학교와 같았다고 할까요. 집에서 밥(빵)을 짓는 살림이란 삶을 이루는 바탕을 배우는 셈입니다. 집에서 요일마다 달리 짓는 살림이란 삶을 한결 아름다이 가꾸는 길을 배우는 셈입니다.
오늘날에도 여느 초·중·고등학교에서 요일마다 '텃밭짓기·옷짓기·집짓기·살림짓기·아이돌보기'를 배워 본다면, 이러면서 날마다 '밥짓기'를 스스로 해 볼 수 있다면 매우 멋지리라 느껴요. 이 모두는 학생 때뿐 아니라 어른이 되어도 날마다 누구나 늘 마주하는 살림이거든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샘에서 물을 길어와야 했지만 길어올 물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꾀를 부리지 않으면 열한 시가 되기 전에 눈처럼 하얗게 빨아서 널은 빨래가 바람에 팔락거렸지요." (223쪽)
"사람들은 내게 이미 늦었다고 말하곤 했어요. 하지만 지금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무엇인가를 진정으로 꿈꾸는 사람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때이거든요. 시작하기에 딱 좋은 때 말이에요." (256쪽)
일흔이 넘어 그림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백 살이 넘도록 살면, 서른 해 즈음 그림살림을 가꾸는 셈입니다. 그림 살림을 쉰 해나 일흔 해쯤 걸어야 대단하지 않습니다. 서른 해쯤만(?) 걸어도 훌륭해요. 스무 해나 열 해만(?) 걸어도 아름답고요.
꿈꾸는 사람한테는 늦을 때란 없이 언제나 처음 하기에 딱 좋은 때만 있다지요. 이와 맞물려 생각한다면, 젊기에 더 이른 때라고만 할 수 없습니다. 더 어리거나 더 젊기에 모든 일을 다 해 볼 만한 나이라고는 여기기 어려워요. 아직 겪거나 누린 삶이 없다면 '그림을 그리는 살림'이라 하더라도 무엇을 그림으로 담아야 할는지 모를 수 있거든요.
일흔 해라는 나날을 조용히 집살림을 짓는 길을 걸었기에, 이 일흔 해치 살림길을 그림으로 1600점이 넘는 이야기꽃으로 피울 수 있었지 싶습니다. 글살림이나 사진살림이나 노래살림에서도 이와 같을 만해요. 늦깎이란 없어요. 열다섯 살이나 스무 살쯤이어야 뛰어드는 새길이 아니라, 서른이든 마흔이든 쉰이든 예순이든, 또는 일흔이든 여든이든 아흔이든, 그리고 백이든 이백이든, 꿈을 품고서 이 꿈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면 될 노릇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