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풍'이 분다고들 난리법석이지만, 여전히 취업 시장에서 여성이 설 자리는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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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찾아 끝없이 도전, 그 앞에 놓인 '여자'라는 벽고졸과 대졸 사이에 놓인 넘을 수 없는 벽을 절감한 지혜 씨는 입사 2년차 사이버 대학에 진학했다. 고졸과 대졸의 진급 체계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학사 학위를 얻고자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런데 회사는 지혜 씨의 학위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입사 당시 고졸로 들어왔기 때문에 중간에 학위를 따더라도 고졸 진급 체계를 따라야 한다는 이유였다.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지혜 씨의 생각이 더욱 확고해진 것은 회사가 기혼 여성 선배들을 대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였다.
"무역 업계는 업무의 대부분이 영업이다 보니 일단 여자를 잘 뽑지 않아요. 업무 특성상 술도 많이 먹고, 남자들끼리 끌어주는 분위기가 강하죠. 대기업이니까 전반적인 복지는 나쁘지 않았어요. 그런데 주위 10년 이상 다닌 여자 선배들을 보니 오래 다니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산후 휴가 등 여성들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들은 전혀 이해 받지 못하는 분위기였죠.
결혼을 하거나 아이가 생기면 차라리 나가달라는 압박이 있는 느낌? 매년 인사 계획을 할 때, 기혼 여성들에게 올해 그만두실 거냐고 인사과에서 전화 돌려 대놓고 물어봤다는 말들이 돌았었어요. 눈치를 주는거죠. 이런 부당함에 회사를 나오게 됐어요."
비록 회사에서는 학위를 인정 받지 못한 채 퇴사를 하게 되었지만, 지혜 씨는 학업의 끈을 놓지 않았다. 상업고등학교의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인 공간디자인에 도전했다. 평소 꾸미는 것을 좋아했기에, 잘 할 자신이 있었다. 자연스레 전공을 살려 인테리어업계, 건축업계 종사를 고려했지만 남초 업계라는 사실에 망설여졌다.
"업계에서 일하는 언니들이 하나같이 말하길 남자들이 많은 곳에서 일하는게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일도 워낙 힘들고 박봉인데다, 특히 여직원들에게는 막말도 심하다고요. 저 역시 남초 직장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서 남자들이 어떻게 자기들끼리 뭉치는지를 알잖아요. 회사 흡연실에 모여 여자 직원들 성희롱하고, 험담하고... 따로 모임을 가져 정보를 공유하기도 하고요. 확실한 물증은 없었지만 심증은 많았죠. 그러다 보니 남자들이 많은 곳에서는 버티기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자연스레 마음을 접었어요."
안타깝게도 지혜 씨의 도전은 직무 변경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남자 직원의 비율이 압도적인 업계에서 여자 직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그림이 그려졌다. 다수가 주도하는 분위기에 반기를 들 용기는 쉽사리 나지 않았다. 더욱 도전적인 업무를 맡고 싶어 새로운 문을 두드렸지만, 그 문은 지혜 씨가 들어가기도 전에 닫혀버렸다. 애초에 그녀가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정해져 있는 것만 같았다.
결국 지혜 씨는 평소 하고 싶었던 일 대신 서비스직으로 재취업을 준비했다. 그나마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승무원을 준비했던 지혜 씨는 서비스 업무를 배우고 싶어 관련 아르바이트 구직에 나섰다. 고등학교 졸업 후 5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으로 일을 쉬게 되었지만 관련 경험을 배워야 할 것 같아 마냥 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이가 문제였다.
"당시 제가 25살이었는데, 서비스업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가면 다들 저보다 어린 연령대를 원하시더라고요. 남초 직장에서 버틸 자신이 없어, 그나마 여자들이 많이 하는 일로 찾았는데 그런 일들은 전부 나이를 보는 것 같았어요.
하다못해 아르바이트도 나이를 보는데, 승무원도 나이가 중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승무원을 하려면 어학 능력이 필요할 것 같아 영어권으로 워킹홀리데이도 갔는데, 서른 전에 돌아와야 재취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다녀왔어요. 서른이 다가오면서 나이 압박이 더 심해졌던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