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안 초안 받고 인사말하는 문재인 대통령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이 국회 합의가 없을 경우 개헌 발의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야당은 일제히 반발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용 정치 이벤트로 개헌을 이용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주장하며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에서 "대통령은 즉각 일방통행, 관제 개헌, 사회주의 개헌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며 "자문특위 안은 그동안 대통령과 여당이 그토록 비판해 오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바로잡는 것과는 동떨어진 개헌안"이라고 성토했다.
김철근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극복을 위한 권력구조 개편이 빠진 '개헌 자문안'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력구조와 관련해 한국당은 국회에서 선출된 총리가 조각을 완성해 내치를 담당하는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하고 있고, 바른미래당 역시 대통령 권력을 대폭 축소하는 분권형 개헌을 선호하고 있다.
반면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의 반대 이유는 조금 다르다. 최경환 평화당 대변인은 논평에서 "개헌안은 국회에서 발의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 원칙에 맞다"며 "대통령이 개입해 개헌을 추진할 경우 개헌 논의 자체가 불발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역시 이날 오전 의원총회에서 "대통령 개헌안 발의권은 헌법상 권한은 맞지만 현재 국회 구도에서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된다면 최악의 경우 개헌안 국민투표를 부의조차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대통령 개헌안 발의로 개헌 논의가 정치공방에 함몰될 수 있고, 의석 구도상 국회 통과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성도 떨어진다는 주장이다.
정리해 보면 야당의 반대는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이견과 개헌안 발의에 따른 정치적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의원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권력구조 개편을 통해 정치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심산인 반면 민평당과 정의당은 대통령 개헌안이 몰고올 정치적 파장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1년 전과 입장 완전히 달라진 보수야당 이와 관련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보수야당의 행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그들은 지금과는 정반대의 논리로 당시 문재인 후보를 향해 집중 공세를 펼쳤기 때문이다.
"당장 지지율이 높게 나온다고 해서 대선 전 개헌에 반대하는 대선주자는 개헌에 저항하는 수구세력이다"(2017년 2월 24일, 정우택 당시 한국당 원내대표), "문재인 후보는 본인의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집착해 정치개혁의 중요한 분기점에 고추가루를 뿌리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2017년 2월 24일, 이기재 당시 바른정당 대변인).
당시는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 국면으로 대선승리 가능성이 희박해진 보수야당이 개헌을 고리로 한 '반문연대' 결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던 시점이었다. 그들은 개헌의 당위를 역설하는 한편 '문 후보만 개헌에 반대한다'는 논리를 폈다. 이에 반해 문 후보는 조기대선을 앞둔 정략적 개헌에 반대하며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를 주장했다.
당시 보수야당의 개헌 의지는 '확고부동'한 것으로 보였다. 급기야 2017년 3월 15일 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3당은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을 5월 9일 조기대선에서 국민투표에 부치자고 한목소리를 냈다. 대선이 불과 두 달도 채 안 남은 시점에서 이뤄진 합의였다.
그러나 3당의 개헌 합의는 보수언론조차 비판할 정도로 졸속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조선일보>는 3월 16일 '대선 전 국회 개헌안 제시, 2018년 투표가 현실적이다'라는 사설에서 "대다수 주요 대선 후보는 대선 후 개헌 논의를 본격화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함께 국민투표를 실시하자는 입장이다. 보다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며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가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대통령들은 권력을 온전히 휘두르는 데 개헌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다음 대통령 당선인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개헌을 무산시키기 위해 갖은 뒷공작을 벌일 가능성도 크다"며 "개헌을 너무 서두르다 보면 국가와 국민 아닌 다른 목적이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된다. 바람직하지 않다. 이래서는 다음 대통령의 개헌 방해 공작을 이겨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역시 16일자 '반드시 해야 할 개헌, 그러나 야합은 안 된다'라는 사설에서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데다 대선 주자들이 반대하고 나서 합의대로 실현될지는 의문이다"라며 "이런 무리한 추진은 정치권이 정략적 '권력 나눠먹기'에만 몰두한다는 인식만 낳을 수 있다"고 비판했다. 공론화의 과정이 빠진 성급한 개헌 합의가 정치적 '야합'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조기대선 정국 당시 개헌을 위해 맹렬히 속도를 끌어 올리던 보수야당은 이후 태도가 돌변했다.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약속이나 한듯이 수동적으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는 취임 이후 10일 만에 열린 여야 5당 원내대표 회담자리에서 개헌 문제를 언급하는 등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헌의 필요성을 적극적으로 역설해온 문 대통령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행보다.
국회는 이미 작년 1년 동안 개헌특위를 가동시켰다. 그러나 권력구조 개편 등에서 여야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면서 파행을 거듭했을 뿐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작년 말 국회가 구성해 올 6월까지 활동할 예정인 '헌법 개정 및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역시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볼 때 기대난망이다.
문 대통령이 헌법자문특위의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1년이 넘도록 개헌을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진척이 없다. 더 나아가서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대통령의 개헌 준비마저도 비난하고 있다"고 털어놓은 배경일 터다.
앞서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권력의 속성을 감안하면 차기 대통령이 개헌 방해 공작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한 바 있지만, 이후 전개되고 있는 상황은 이같은 전망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보수야당의 반대로 개헌 논의가 공회전을 거듭하자 문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 발의를 시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야당은 이마저도 정치공세의 빌미로 삼으려는 모양이다. 대선 전에는 개헌을 안 한다고 시비를 걸더니 이제는 개헌을 한다고 어깃장을 부리고 있다. '지방선거-개헌 국민투표' 공약이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홍준표 한국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가 내세운 공통 공약이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불과 1년 전 개헌을 안 하면 난리가 날 것처럼 물고늘어지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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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개헌안' 둘러싼 진풍경... 지난 대선 약속 잊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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