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자전거 여행> 1권 표지.
문학동네
여행, 내게 있어 여행은 두 가지다. 내가 들어가는 여행과 내게 들어오는 여행. 나는 전자를 휴가라 하고, 후자는 진짜 여행이라 부르고 싶다. 해가 갈수록 그저 편하게 쉴 수 있는 휴가를 찾게 되지만 문득문득 '진짜 여행'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낯선 곳에서의 이질감을 떠올리며 출발하던 그 순간부터 설레는 진짜 여행.
작가 김훈은 진짜 여행가다.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눈에 비친 세상과 세상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에게 여행은 자신에게 들어오는 세상을 온전히 받아주기 위함이다.
그는 자신을 버리고 주변을 끈질기게 관찰한다. <칼의 노래>를 비롯한 그의 글에서 보아온 섬세한 문장은 이 같은 세밀한 관찰과 이를 가능하게 하는 인내심에서 비롯된 듯하다.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라니...<자전거 여행>은 각 여행지에서의 단상들을 모은 산문집이다.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까지 약 1년에 걸쳐 자전거(풍륜)을 타고 전국을 누빈 이야기를 담은 1권과 2004년 경기 일대를 달리며 만들어진 2권으로 이뤄져 있다. 2014년에는 이를 주제에 맞게 재편성해 재출간됐다.
첫 번째 이야기, '꽃 피는 해안선'은 압권이다. 여수 돌산도 향일암 앞바다에 핀 동백을 시작으로 매화, 산수유, 목련의 피고 지는 모습을 구절구절 보여준다. 글이 읽혀지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 피어난다. 해마다 봄마다 꽃을 보며 느꼈던 마음 그대로이다. 마음이 글로 존재하니 그저 신기하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p.15).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중략)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오리를 치켜 올린다. (중략)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p.17).
작가가 바라본 세상은 자연에 그치지 않는다. 꽃 피는 봄을 바라보며 '위태롭고 무질서한, 대책이 없는 생의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도 함께 이야기한다. 지금이 바로 그 봄이니 책을 읽으며 봄에 흠뻑 빠져보는 것도 좋겠다.
두 번째 이야기도 놀랍다. 그의 관찰은 보이는 것의 기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과학, 원리까지 이어진다. 이것은 공부다. 관찰에서 일어나는 의문을 풀기 위해 마음을 열고 공부하는 것이리라. 언 땅이 녹아 생긴 물기들이 어떻게 봄의 흙을 헐겁게 만드는지에 대한 부분은 과학적 원리와 작가의 문장력이 더해져 생긴 아름다움이라 하겠다.
책은 이러한 29개의 이야기를 자연, 숲, 강, 사람, 바다의 흐름 순으로 보여준다. 개개의 삶이 다르듯 공감의 부분도 다르리라. 자신의 경험이 글을 상상하게 만들고, 그것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니 이것은 작가의 힘인지 독자의 힘인지 알 수 없다. 허나 누구든 이 책을 읽으면 분명코 공감하는 부분이 있으리라 단언한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다르다
물질의 풍요로, 교통의 발달로 여행은 흔한 단어가 되었다. 나 역시 이번 달에는 대전을 다녀왔고, 지난달에는 목포를 다녀왔고, 지지난 달에는 제주도를 다녀왔다. 여행지에 순식간에 도착해 먹고, 자고, 볼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당일도 가능하다.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은 다르다.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밟아가는 그 길이 여행이다. 자신의 짐을 메고 씩씩대며 오르막을 올라가는 그 순간까지도 여행인 것이다. 그렇게 수고로움이 더해진 여행은 쉽게 지나가지도, 쉽게 잊히지도 않으리라.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다 지나오고 나도, 지나온 길들은 아직도 거기에 그렇게 뻗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길은 처음부터 다시 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p.14)
설레는 3월,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아니라면 이 책을 읽고 진정한 여행을 꿈꾸길 바란다. 나 역시 모든 길은 언제나 새로워 처음부터 다시 가야 할 새로운 길이라 말하는 작가를 보며 진짜 여행을 꿈꿔본다.
자전거여행 1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문학동네, 2014
자전거여행 2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문학동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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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의 문장을 보다가... '지금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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