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부활절 맞이 제주4.3 평화기행' 참가자들이 15일 오전 의귀마을 현의합장묘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오른쪽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이홍정 총무.
지유석
지난 14일과 15일 양일간 제주4.3사건 70주년에 발맞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아래 정평위)와 제주 NCC가 공동으로 '2018 부활절 맞이 제주4.3 평화기행'(아래 평화기행)을 진행했다. 70명으로 꾸려진 평화기행 참가자들은 제주4.3 평화공원, 너븐숭이 기념관, 의귀마을, 섯알오름 등을 차례로 돌아봤다.
그러나 제주 4.3 당시 서청의 행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평화기행은 요식행위에 그칠 뿐이다. 다행히 참가자들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에 개신교가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묵묵히 수용했다.
서청과 개신교, 그리고 한경직과 영락교회먼저 서청과 개신교의 연관성을 이해하려면 두 개의 키워드를 소환해야 한다. 바로 '한경직 목사'와 '영락교회'다. 서청과 한 목사, 그리고 그가 시무하던 영락교회와의 유착관계는 줄곧 논란이 있어왔다.
한 목사는 생전에 서청이 영락교회 청년들이 주축이 됐다고 한 적이 있었다. 작가 김병희가 쓴 <한경직 목사>에는 한 목사의 발언이 실려 있다. 그 발언은 이렇다.
"그때 공산당이 많아서 지방도 혼란하지 않았갔시오. 그때 '서북청년회'라고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중심되어 조직을 했시오. 그 청년들이 제주도 반란사건을 평정하기도 하고 그랬시오. 그러니까니 우리 영락교회 청년들이 미움도 많이 사게 됐지요."서청-한경직 목사-영락교회로 이어지는 유착을 입증할 자료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서청 회원이 군·경으로 진출했으며, 영락교회가 서청 회원들의 신분 세탁에 일조했다는 건 최근 연구를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역사 연구자인 강성호는 자신의 책 <한국 기독교 흑역사>에서 "최근 연구에 의하면 1965년에 영락교회 집사가 된 박용범은 제주4.3 사건 직후 서귀포 경찰서 형사로 부임한 적이 있었고, 1970년에 영락교회 집사가 된 홍형균은 제주도에 경찰로 파견돼 제주도 방언을 통역했다고 한다"라고 적었다.
영락교회의 그림자는 한국전쟁까지 이어진다. 제주4.3은 1949년에 이르러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주엔 또다시 학살의 광풍이 불어 닥쳤다. 이승만 정권은 '예비 검속'이라는 미명 하에 재차 제주도민들을 학살했다. 예비 검속은 제주시, 성산포, 모슬포에서 이뤄졌다. 이 가운데 모슬포 섯알오름에서는 250여 명의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섯알오름 학살에도 개신교의 그림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