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영광
- 현재(13일)까지 개헌에 대한 흐름을 어떻게 보고 계세요?"개헌은 촛불 시민의 명령이었습니다. 지난 2016년 겨울 촛불집회에서 나온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이게 나라냐,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촛불 시민들은 구시대의 나라를 청산하기 위해 대통령을 탄핵했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은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어요. 국정농단의 구체제를 쫗아내고 새로운 정부를 만들었어요. 우리는 분명한 승리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상에서 우리는 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상태를 바꿔내거나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물론 국회에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결실도 이뤄내지 못했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헌법 개정 역시 국회가 주도해야 함에도 국회는 직무유기로 일관했지요. 오히려 국민 일각에서 개헌안을 만들어 국회를 압박하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개헌 논의 상황에서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안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방안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유감스러운 사태입니다. 대통령의 개헌안조차도 국민이 주도해 의견을 내고, 그것을 수렴한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라기보다 어떻게 보면 엘리트주의처럼 혹은 통치자의 관점에서 '어린 백성들'에게 무언가를 던져 주는 식으로 진행됐어요.
개헌의 주인공은 국민이어야 함에도 국민은 배제된 채 국회의원 또는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주도해 개헌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적어도 우리 시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개헌 논의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합니다."
'1987년 개헌'처럼 될까봐 걱정하는 이유- 1987년 개헌과 비교해보면 어떤가요?"걱정되는 게... 현재의 국면이 1987년 그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에요. 1987년은 6월 항쟁을 통해 과거 군사정권을 쫓아내는 데에는 성공한 해이지만, 다양한 대중들이 정치의 장에 나서 자기들의 몫을 헌법에 반영시키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인 역량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 해이기도 합니다.
1987년 민주항쟁이 일어난 뒤 연이은 헌법 개정의 과정은 국민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이뤄졌습니다. 신군부의 대표 격인 4명, DJ·YS로 대표되는 자유주의 진영의 대표 4명, 이렇게 8명의 국회의원이 소위 '8인회'를 구성해 거의 밀실에서 헌법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6월 항쟁에 나섰던 사람들을 능동적인 시민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은 전혀 없게 됐죠. 나아가 그 이후 7월부터 9월까지 계속됐던 농민의 투쟁이나 노동자의 투쟁 같은 것이 헌법 개정 과정에 전혀 반영되지 못했어요. 한마디로 국민들이 헌법 개정이라는 정치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획득하지 못한 채 (개헌이) 이뤄져서 국민과 유리된 헌법이 돼버렸습니다.
그 폐단이 바로 그게 지난 촛불집회 때 단적으로 드러났죠. 연인원 200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음에도 정작 대통령을 탄핵시킨 건 국회의 탄핵소추였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이었어요. 국민의 의사가 그대로 정치 과정에 반영되기보다는, 다른 기관을 통해 그들의 선의를 거쳐야지만 국민의 의사가 국가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아주 답답한 체제가 돼 있었던 거죠. 바로 그 답답함이 지난 촛불 집회 때 '나는 나를 대표한다'라거나,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로 이어진 것이지요.
사실 지난 체제가 안고 있었던 이런 문제들이 그대로 이번 촛불 집회 이후 개헌 과정에 투영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왜냐면 헌법 개정은 국민이 그 주체가 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의사를 적극적으로 수렴하는 절차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국민은 아무런 말을 하고 있지 않은 데 정치권 또는 일부 헌법 학자들이 헌법 개정 과정을 주도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어요. 국회에서 만든 헌법개정자문위원회도 그렇고, 대통령이 만든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소속의 헌법개정TFT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대표성도 갖지 못하는 헌법전문가들이 들어가 헌법개정안을 만들어 내고, 그걸 정치인들이 자의적으로 선별해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방식으로 개헌이 된다면 그건 국민의 헌법이 아니라 그들의 헌법이 돼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될 가능성이 큰 거죠."
- 지난 대선 당시 각 당 후보들이 이번 지방선거에 개헌 투표를 하자고 공약했어요. 그러나 이제 선거는 3개월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정당은 아직도 당의 이해득실을 따지기 바빠 보이는데, 6월 개헌이 가능할까요? "사실 헌법개정안을 대통령이 직접 발의하든, 국회의원을 통해 우회해 발의하든 국회에서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국민투표에 부처지게 됩니다. 그런데 헌법 개정에 소극적인 자유한국당 의원이 3분의 1 이상의 의석을 가지고 있어서 한국당이 당론으로 반대를 하는 한 헌법 개정은 불가능하다고 봐야겠죠.
여기에 넘어야 할 고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설령 한국당이 개헌에 합의한다 하더라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난 국민투표법을 개정해야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도 가능하게 됩니다. 이것 또한 자유한국당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개헌을 위한 두 가지의 고갯길에 한국당이 진지를 펼치고 있는 셈이지요. 그래서 어쩌면 현재의 개헌 국면은 어떤 개헌인가와 더불어 자유한국당이라는 장애물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의 문제가 동시에 해결돼야 하는 상황입니다.
분명한 것은 한국당 또한 정치판에서 움직이는 정치인들로 구성된 정당인 만큼, 국민들의 압박에 굳이 저항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유권자들이 한국당에 대해 헌법 개정에 참여할 것을 강력하게 압박한다면, 그 소속의원들이 함부로 저항하진 못할 것입니다. 지방선거의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개헌 참여 여부를 바탕으로, 투표로 심판할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헌 가는 길, 고비고비 한국당이... 패거리 정치 전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