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일 오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교 보건대학 건물에서 살바도르 카스티요씨가 청소를 하고 있다.
선대식
아메리칸 드림은 없었다. 1965년 멕시코 10살 소년 살바도르 카스티요(Salvador Castillo)가 미국 땅을 밟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70년대까지는 미국 역사상 소득 불평등이 가장 적은 시대였지만, 멕시코 이민자에게는 그 혜택이 충분히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는 예순을 넘긴 카스티요는 지난달 24일과 지난 1일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교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털어놓았다.
"1970년대 캘리포니아 프레즈노 지역의 딸기 농장에서 일할 때는 시간당 1달러를 받고 일했다. 쉬는 시간도 제대로 없었다."
미국 공정노동기준법(FLSA)에 따라 농장의 최저임금은 1966년에 시간당 1달러였고, 이후 단계적으로 인상돼 1976년에는 2달러로 올랐다. 카스티요는 최저임금도 못받고 일한 셈이다. 그는 트럭운전, 건물관리, 전기시설 수리 등 전 미국을 돌아다니며 최저임금 일을 했다. 먹고 살기 위해 주 7일 매일 16~18시간씩 일했다.
그는 1983년 시애틀에 정착했고, 10년 뒤인 1993년 워싱턴대(이하 대학)에서 청소 일을 얻었다. 미국에 온 지 28년 만에 안정된 일자리를 얻었지만, 차별과 무시가 일상이었다. 대학 관리자들은 교수와 학생 앞에서 영어가 서툰 이민자 출신 청소노동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벙어리"라고 모욕하기 일쑤였다.
카스티요가 관리자에게 이를 따졌더니, 불법 체류자가 아니냐는 위협이 돌아왔다. 그는 다음날 미국 여권을 보여주면서 "나는 미국 시민권자다, 나는 당신의 꼭두각시가 아니다"라고 맞받았다. 그는 기자에게 3년 전 대학 쪽의 차별과 무시에 항의하기 위한 집회를 하고 인터뷰한 내용이 담긴 신문을 내밀었다. 신문에서 그의 말을 찾았다.
"이 나라는 자유로운 나라다. 우리는 노동자이지 대학교의 재산이나 노예가 아니다. 우리는 감옥이나 강제수용소에 있는 것도 아니다."
카스티요는 1996년부터 '로컬 1488'이라는 이름의 노조를 만드는 일에 나섰다. 현재 로컬 1488은 대학 청소노동자를 비롯해 시애틀 노동자 3000여 명을 조합원으로 둔 거대 노조로 성장했다. 그는 7년 동안 노조 부위원장을 지냈고, 지금도 가장 열정적인 조합원이다.
정의를 외치기 시작하다
카스티요를 비롯한 청소노동자들이 맞닥뜨린 문제는 모욕이나 차별 말고도 많았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학은 청소노동자를 대거 잘랐다. 경제 위기가 지나간 뒤 빈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1993년 370명이었던 청소노동자는 현재 200명으로 줄었다. 반면 대학은 수천억 원을 들여 새로운 건물들이 계속 세웠다.
청소노동자의 업무 강도는 크게 늘었고, 담당 구역이 아닌 곳을 청소하기 일쑤였다. 각종 화학물질로 가득 찬 공간을 청소하다 다친 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청소노동자들이 분통을 터트린 것은 저임금과 불평등이었다. 2015년 1월 시애틀 지역신문 <인터내셔널 이그제미너(International Examiner)>에 따르면, 2009~2014년 대학 관리자들의 임금은 14.8~20%에 오른 반면,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은 1.2~3% 오르는 데 그쳤다.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는데 여전히 최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청소노동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그들은 "정의"를 외치기 시작했다. '청소노동자를 위한 정의'가 적힌 포스터가 학교 곳곳에 나붙었다. 집회도 열렸다.
정의와 최저임금이 만났을 때마침 미국에서는 최저임금 15달러 운동이 확산됐다. 미국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은 2009년 7.25달러로 오른 뒤에는 꿈쩍하지 않았다. 주나 도시 차원에서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2013년에는 시애틀 광역권의 작은 도시인 시택에서 주민투표로 최저임금 15달러를 도입했다. 미국 최초의 일이었다.
이후 시애틀에서도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의가 시작됐고, 청소노동자들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다. 대학 관리자 사무실에 들어가서 춤을 추며 "최저임금 15달러" 구호를 외쳤다.
결국 2014년 6월 시애틀 시의회는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15달러로 인상한다는 계획을 담은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해 최저임금은 9.32달러였다. 조례안은 501명 이상을 고용하고 직원들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사업장은 2018년까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대학 청소노동자 임금도 지난해 16달러로 인상됐다.
청소노동자들의 삶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카스티요는 동료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미국에서는 투잡, 쓰리잡을 하는 사람이 많다. 청소 일을 끝내고 다운타운에 가서 일하는 식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쓰리잡을 하던 사람이 투잡만 하게 된 경우가 있다. 가파르게 오른 월세를 내지 못해서 길에 나앉은 사람이 다시 집을 얻어 월세를 내게 되기도 했다."
카스티요는 "예전에 하지 못했던 파티를 지금은 할 수 있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면서 "예전에 월세를 내면 남는 돈이 없었는데,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직 자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