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청소노동자가 최저임금을 외치자 벌어진 일들

[두 도시 이야기 - 시애틀 ③] 워싱턴대 청소노동자 살바도르 카스티요의 증언

등록 2018.03.25 11:40수정 2018.03.2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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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을 두고 사회적인 논란이 거셉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의 최소한 인간다운 삶을 지켜주는 버팀목"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보수진영과 재계는 최저임금 인상이 중소영세기업과 소상공인, 나아가 한국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면서 반발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가 여기 두 도시 이야기를 내놓습니다. 미국 대도시 가운데 가장 먼저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를 도입한 시애틀. 이제 갓 7530원이 된 한국의 서울. 최저임금 인상은 이들 두 도시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들의 삶은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또 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여기 두 도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말]
 3월 2일 오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교 보건대학 건물에서 살바도르 카스티요씨가 청소를 하고 있다.
3월 2일 오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교 보건대학 건물에서 살바도르 카스티요씨가 청소를 하고 있다.선대식

아메리칸 드림은 없었다. 1965년 멕시코 10살 소년 살바도르 카스티요(Salvador Castillo)가 미국 땅을 밟았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70년대까지는 미국 역사상 소득 불평등이 가장 적은 시대였지만, 멕시코 이민자에게는 그 혜택이 충분히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는 예순을 넘긴 카스티요는 지난달 24일과 지난 1일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대학교에서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자신이 걸어온 길을 털어놓았다.

"1970년대 캘리포니아 프레즈노 지역의 딸기 농장에서 일할 때는 시간당 1달러를 받고 일했다. 쉬는 시간도 제대로 없었다."


미국 공정노동기준법(FLSA)에 따라 농장의 최저임금은 1966년에 시간당 1달러였고, 이후 단계적으로 인상돼 1976년에는 2달러로 올랐다. 카스티요는 최저임금도 못받고 일한 셈이다. 그는 트럭운전, 건물관리, 전기시설 수리 등 전 미국을 돌아다니며 최저임금 일을 했다. 먹고 살기 위해 주 7일 매일 16~18시간씩 일했다.

그는 1983년 시애틀에 정착했고, 10년 뒤인 1993년 워싱턴대(이하 대학)에서 청소 일을 얻었다. 미국에 온 지 28년 만에 안정된 일자리를 얻었지만, 차별과 무시가 일상이었다. 대학 관리자들은 교수와 학생 앞에서 영어가 서툰 이민자 출신 청소노동자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벙어리"라고 모욕하기 일쑤였다.

카스티요가 관리자에게 이를 따졌더니, 불법 체류자가 아니냐는 위협이 돌아왔다. 그는 다음날 미국 여권을 보여주면서 "나는 미국 시민권자다, 나는 당신의 꼭두각시가 아니다"라고 맞받았다. 그는 기자에게 3년 전 대학 쪽의 차별과 무시에 항의하기 위한 집회를 하고 인터뷰한 내용이 담긴 신문을 내밀었다. 신문에서 그의 말을 찾았다.

"이 나라는 자유로운 나라다. 우리는 노동자이지 대학교의 재산이나 노예가 아니다. 우리는 감옥이나 강제수용소에 있는 것도 아니다."



카스티요는 1996년부터 '로컬 1488'이라는 이름의 노조를 만드는 일에 나섰다. 현재 로컬 1488은 대학 청소노동자를 비롯해 시애틀 노동자 3000여 명을 조합원으로 둔 거대 노조로 성장했다. 그는 7년 동안 노조 부위원장을 지냈고, 지금도 가장 열정적인 조합원이다.



정의를 외치기 시작하다


카스티요를 비롯한 청소노동자들이 맞닥뜨린 문제는 모욕이나 차별 말고도 많았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대학은 청소노동자를 대거 잘랐다. 경제 위기가 지나간 뒤 빈자리를 채우지 않았다. 1993년 370명이었던 청소노동자는 현재 200명으로 줄었다. 반면 대학은 수천억 원을 들여 새로운 건물들이 계속 세웠다.

청소노동자의 업무 강도는 크게 늘었고, 담당 구역이 아닌 곳을 청소하기 일쑤였다. 각종 화학물질로 가득 찬 공간을 청소하다 다친 이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청소노동자들이 분통을 터트린 것은 저임금과 불평등이었다. 2015년 1월 시애틀 지역신문 <인터내셔널 이그제미너(International Examiner)>에 따르면, 2009~2014년 대학 관리자들의 임금은 14.8~20%에 오른 반면, 청소노동자들의 임금은 1.2~3% 오르는 데 그쳤다.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는데 여전히 최저임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청소노동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 그들은 "정의"를 외치기 시작했다. '청소노동자를 위한 정의'가 적힌 포스터가 학교 곳곳에 나붙었다. 집회도 열렸다.

정의와 최저임금이 만났을 때

마침 미국에서는 최저임금 15달러 운동이 확산됐다. 미국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임금은 2009년 7.25달러로 오른 뒤에는 꿈쩍하지 않았다. 주나 도시 차원에서 최저임금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2013년에는 시애틀 광역권의 작은 도시인 시택에서 주민투표로 최저임금 15달러를 도입했다. 미국 최초의 일이었다.

이후 시애틀에서도 최저임금을 둘러싼 논의가 시작됐고, 청소노동자들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힘을 보탰다. 대학 관리자 사무실에 들어가서 춤을 추며 "최저임금 15달러" 구호를 외쳤다.

결국 2014년 6월 시애틀 시의회는 최저임금을 단계적으로 15달러로 인상한다는 계획을 담은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해 최저임금은 9.32달러였다. 조례안은 501명 이상을 고용하고 직원들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사업장은 2018년까지 최저임금을 15달러로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에 따라 대학 청소노동자 임금도 지난해 16달러로 인상됐다.

청소노동자들의 삶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카스티요는 동료 청소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미국에서는 투잡, 쓰리잡을 하는 사람이 많다. 청소 일을 끝내고 다운타운에 가서 일하는 식이다.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쓰리잡을 하던 사람이 투잡만 하게 된 경우가 있다. 가파르게 오른 월세를 내지 못해서 길에 나앉은 사람이 다시 집을 얻어 월세를 내게 되기도 했다."


카스티요는 "예전에 하지 못했던 파티를 지금은 할 수 있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다"면서 "예전에 월세를 내면 남는 돈이 없었는데,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아직 자유는 없다"

 지난 2월 23일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의 켈리 공원에서 촬영한 시애틀 도심 사진.
지난 2월 23일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의 켈리 공원에서 촬영한 시애틀 도심 사진.선대식

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시애틀 최저임금조차 생활임금을 밑돈다. 시간당 15달러를 받는 노동자가 매주 40시간씩 1년(52주)을 일할 경우, 3만3120달러(약 3330만 원)를 받는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의 미국 생활임금 계산기(Living Wage Calculator)에 따르면, 시애틀 광역권 4인 가구(부모와 2명의 자녀)의 세전 생활임금은 7만3416달러(7837만 원)다. 최저임금을 받는 부모가 맞벌이를 하더라도, 버는 돈은 생활임금에 턱없이 부족하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삶은 분명 과거보다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투잡과 쓰리잡을 구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이미 많은 노동자들이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시애틀의 변두리나 위성도시로 이주했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진 만큼 삶의 질은 떨어졌다. 대학 교내신문 <더 데일리>는 청소노동자를 다룬 2월 26일치 기사에서 "월세가 계속 오르면서, 청소노동자들은 15달러를 벌어도 5달러를 버는 것처럼 느낀다"라고 보도했다.

카스티요의 동료 노동자는 퇴근 후 20분가량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요청에 다른 일을 하러 가야 한다며 거절했다. 그는 20분의 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게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걸려있는 시간이다."


그는 "나처럼 혼자 사는 사람은 최저임금을 받고 그럭저럭 지낼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이 있는 사람은 여전히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친구와 자유의 여신상에 대해 얘기하면서 '우리에겐 자유가 없다'라고 웃은 적이 있다. '투잡', '쓰리잡' 하느라 매일 밤 자는 아이 얼굴만 본다면 어떻겠나. 이건 삶도 아니고, 자유도 없는 것이다."


카스티요씨는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는 상황에서 최저임금만으로는 노동자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전기요금을 비롯한 각종 공공요금이 오르고 있다. 월세도 많이 오르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물가를 잡아야 한다. 최저임금이 15달러를 달성했다고 해서 싸움이 끝난 게 아니다. 이제 다음 과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최저임금 기획 - 두 도시 이야기]
[서울 ③] "교수들도 이 돈 받고 살아보라고 해" 청소노동자의 하소연


    후원      
    총괄 김종철 취재 선대식, 신나리, 신지수(시애틀) 신상호, 박정훈(서울), 권우성, 남소연(사진) 데이터 기획 이종호 디자인 고정미 개발 박준규


덧붙이는 글 기사에서 언급된 시애틀 최저임금은 사업장의 규모나 건강보험 제공 여부 등에 따라 나눈 4가지 유형 가운데, 전 세계 501인 이상 고용사업장,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노동자 기준입니다.
#두 도시 이야기 #시애틀 #팩트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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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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