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충열
고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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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대 후 보충대에서 매트리스와 모포를 각각 2장씩만 준 후 3명이 함께 자라고 했다는 책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세계경제 10대 대국이고 해외원조를 해 주는 부유한 우리나라에서 왜 이처럼 이해하기 힘든 처우를 했다고 보나?충열 : "병사를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입대 장병 대다수가 이러한 점을 불편하게 생각하면서도,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본다. 이런 잘못된 폐단이 악습을 이어오게 만든다고 본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폐쇄적인 군의 문제를 민간에 개방하여 병사 출신의 민간 감찰관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우리나라에서 한해 평균 130여 명의 군인이 복무중 사망하며(2013년 당시) 그중 평균 2/3 정도가 자살로 처리되고 있다. 그리고 자살로 처리된 군인의 죽음을 두고 그 가족이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후 군의문사로 이어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상만 : "거칠게 보면 의문사는 밝혀지지 않은 죽음이다. 특히 유족 입장에서는 군 헌병대 수사에 대해 불신감이 깊다. 아마도 대한민국 국민 중 헌병대 수사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간 잘못된 군 수사의 원죄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4년 사망한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이다.
군은 사건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까지도 허 일병이 자살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어느 국민도 좌우 가슴에 각각 한발씩, 그래도 죽지 않자 자신의 이마에 한발 더 쏴서 자살했다는 국방부 주장을 믿지 않는다. 나는 헌병대 수사보다 민관 합동의 외부 수사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하면 군의문사를 주장하는 불신이 많이 해소될 것이라고 믿는다."
"군에 오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참 많이 봤다"- 군대생활을 하면서 "모병제 도입의 절실함을 느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충열 : "군에 오면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을 많이 봤다.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신체적으로도 군대 생활이 맞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특히 피부질환자들의 경우는 위장크림도 바르지 못하더라.
젊은 층의 숫자가 줄어드니 이런 사람들까지 억지로 끌고 오면서 생기는 문제라고 본다. 마구잡이식 징병으로 무슨 전쟁을 수행할까 싶다. 그러니 모병제를 통해 우수한 인적자원을 선발할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책에 쓴 그 문제의 사병 같은 이들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한다."
- 지난 2월 말까지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 위원으로, 그리고 현재는 국방장관으로부터 위촉받아 <국방개혁 자문위원회> 연구위원으로 일하면서 우리 군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 잡고 개혁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러한 활동을 통해 느낀 점이 있다면?상만 : "군의 적폐를 청산한다는 일은 정권교체의 힘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2017년 9월에 <국방부 적폐청산위> 활동을 시작하면서 이후 많은 군 관계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들 역시 우리 군의 문제점을 바꾸고자 진심을 다한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아쉬운 것은 발상의 전환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활동 초기의 일이었다. 뭘 바꾸자고 제안하면 전부 안 되는 사유만 찾아와 나의 제안을 반대하곤 했다. 하지만 나 역시 안 된다며 가져온 그 사유 하나 하나를 적극 반박하며 개념을 바꾸자고 설득했다. 그 후부터 실무자의 태도가 달라지더라. 이런 부분이 희망이었다. 더 좋아지리라 믿는 이유다."
- 책에서 "국군의 날만 되면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상만 : "이 책은 모두 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현역으로 군을 다녀온 아들이 자기가 생활하며 느낀 에피소드를 담았고 2장은 그런 아들을 군에 보낸 후 느낀 아버지의 심정과 지금까지 만나온 군의문사 피해 유족의 사연을 담았다. 그중에 한 에피소드에 담긴 사건인데 사연은 이렇다.
아들을 군에 보낸 후 처음 맞이한 국군의 날, 아들에게 뭔가 이벤트를 선물하고 싶었던 내가 오히려 뜻하지 않게 피해를 입힌 사연을 적은 것이다. 여기서 다 밝히면 책을 사 보지 않을 것 같아 이만큼만 여기서 공개하는 것을 이해해 달라. 책에서 그 재미있고 슬픈 사연을 꼭 읽어주시기 바란다."
"'오히려 일을 만드는 명령'을 많이 봤다"- 책에서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사는 것처럼' 생각하는 병사가 있어야 건강한 군대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충열 : "탁자 위에서 지도를 보는 사람과 실제 야전에서 싸우는 사람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와 같다. 지시를 내리는 간부와 그것을 이행하는 병사의 입장은 차이가 있다. 간부가 불합리한 명령, 비효율적인 명령을 내린다면 현장에서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군대에서 '오히려 일을 만드는 명령'을 많이 봤다. 그런데 병사는 '까라면 까야' 한다. 결국 인력은 인력대로 쓰면서, 일은 진전이 전혀 없다.
당시 사단에서도 '생각하는 병사가 되어야 한다'고 운운했는데, 정작 간부들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을 오히려 만드는' 모 부사관은 병사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니가 뭔데?"라는 식으로 나왔다. 이래서는 군에 발전이 없다고 본다.
2차 대전 당시에 히틀러도 다 이긴 전쟁을 본인 독단으로 망친 것이 여러 번이다. 맥아더도 한국전쟁 당시에 승기를 잡았음에도 본인 독단대로 공세를 지시하여 오히려 패퇴했고 결국 불명예스럽게 군을 나가야 했다. 물론 두 지휘관이 벌여서 생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병사들에게 쏟아졌다."
- 군에 간 아들을 만나려면 '국보법 처벌 서약하라'는 군대의 요구사항과 관련한 일화가 기억에 많이 남았다. 상만 : "부대 개방 행사를 한다며 연락이 왔다. 사실 아버지로서 아들이 어떤 곳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기대를 안고 부대를 찾아갔는데 도착하자마자 군 부대에서 내미는 한 장의 각서가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너무도 참담한 심정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각서는 내가 아들을 만나 이러이러한 잘못을 하면 처벌을 받겠다는 각서였다. 나는 아들을 군에 보낸 부모에게 군이 해주는 예우가 이런 것인가 싶었고 강력히 항의했다.
아들을 만나러 온 부모가 그 아들을 만나기 전 스스로 처벌받는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면 나는 이대로 그냥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결국 군이 나에게 사과했고 그동안 다른 부모에게 받은 각서도 돌려주게 되었다. 그 사연을 담은 이야기인데 이후 국방부에 이런 각서가 정당한 것인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뒷이야기는 또 책에서 살펴보시면 좋겠다."
- 책에서 군대에서 "내가 군인이 아닌 교도소의 재소자가 된 느낌이었다"고 했는데 예를 들어 설명하면?충열 : "모든 병사들을 잠재적인 탈영자로 본다는 점이다. 휴가나 외출, 외박시에 부대 내에 꼭 연락을 취해야만 한다. 그것도 하루에 3번이나. 휴가나 외출, 외박을 어디로 가건 군법에만 저촉되지 않고 복귀만 제때 하면 그만 아닌가? 이런 감시를 하는 이유를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반면에 간부들은 굉장히 자유롭다. 병사들은 취침시간에 화장실을 가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간부들은 자신의 숙소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보고 컴퓨터도 한다. 또한 부대 밖으로 운동도 나갈 수 있는 등 자유롭게 산다. 그렇다고 나는 간부들의 처우를 병사급으로 낮춰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병사들도 간부들처럼 '최소한 인간처럼' 대우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왜 우리가 교도소의 재소자처럼 감시를 받고 살아야 하는가."
"위수지 폐지는 시대적 추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