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
유성호
소수당은 선거를 통해 원내에 진출했으나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도적으로 배제됐다. 다수당은 교섭단체를 구성함으로 인해 선거에서 부여받은 대표성보다 국회 안에서 훨씬 더 높게 대표된다. 선거제도로 왜곡된 유권자의 선호는 교섭단체 제도로 한 층 더 불평등해진다.
교섭단체가 되지 못한 정당은 발언권도 제한된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소속정당 또는 교섭단체를 대표해 행하는 연설로 40분까지 발언할 수 있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매년 첫 번째 임시회와 정기회에서 각각 한 번씩, 전·후반기 원 구성을 위한 임시회, 의장이 각 교섭단체대표의원과 합의를 하는 경우에는 추가로 한 번씩 실시할 수 있다.
비교섭단체 대표는 똑같이 정당을 대표함에도 연설은 못한다. '발언'만 가능하다. 교섭단체 대표연설은 모든 국무위원을 출석시키고 시간도 40분인데 비해 비교섭단체 대표 '발언'은 모든 국무위원이 출석하지 않고, 시간도 15분으로 제한돼 있다. 교섭단체 구성 여부에 따라 정당의 정책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가 달라지는 것이다.
교섭단체는 정책연구위원도 별도로 둘 수 있다. 1급 내지 4급 상당의 67인이 교섭단체 소속의원의 입법 활동을 보좌한다. 이들은 상임위원회마다 별도로 배정돼 있어 입법, 예산심사는 물론 국정감사와 현안 등에 대해 당의 입장에서 의원들의 의정활동을 돕는다.
상임위원회 회의장에 자리도 따로 있는데 볼 때마다 부러웠다. 내가 속한 의원실이 항상 일이 많았던 것은 다른 당에는 있는 정책 전문 인력이 우리에게는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교섭단체에게만 배정될 인력이 아니다. 정당에 소속된 정책연구위원이 더 많아진다면 정당의 정책 전문성도 높아질 것이다. 교섭단체 구성 여부와 상관없이 의석수를 기준으로 배정하는 것이 공평하다. 나아가 원내 진출 정당에게 기본 인원을 배정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교섭단체에게만 주어지는 중요한 권한 중 하나는 '정보위원회'다. 국가정보원 소관에 속하는 사항을 다루는 정보위원회는 '교섭단체 소속 의원'만 위원이 될 수 있다. 정보위원회는 원칙적으로 비공개로 진행하고, 의원과 보좌관들은 직무수행 상 알게 된 국가기밀에 속하는 사항을 공개하거나 타인에게 누설하여서는 안 된다고 국회법 상 엄격하게 규정돼 있기에 그동안 비교섭단체는 어떠한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다. 그야말로 있으나 없는 존재였다.
'민주주의 암흑기' 때 정해진 기준이 현재까지이와 같은 교섭단체의 권한은 누가, 언제, 어떻게 정한 것일까?
국회법 상 교섭단체는 '20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과 '다른 교섭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20인 이상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교섭단체 구성 요건 '20인 이상의 국회의원'이라는 기준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제헌의회에서는 교섭단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다수당의 횡포와 파당적 운영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제헌의회 4회기에 신설된 20인 구성요건은 1963년 6대 국회에 이르러 오히려 10인으로 완화됐다. 다시 20인 이상으로 늘어난 것은 유신 직후인 1973년 2월, '국회법' 전부개정을 통해서다. 국정감사를 없애고, 국회의원 1/3을 대통령 추천으로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하도록 하며, 대통령에게 긴급조치권, 국회 해산권, 법관 임면권을 부여하여 삼권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보장했던 '민주주의의 암흑기'에 정해진 기준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제도가 변하였지만 교섭단체 기준만은 마치 절대 바뀔 수 없는 고정불변의 제도처럼 운영돼 왔다.
소수당도 다수당과 똑같이 정당의 정치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의석이 적은 정당일지라도 그에 따른 책임과 역할이 있다. 시민들이 선거를 통해 부여한 권한이 교섭단체 구성 여부에 따라 차별될 수 없다. 게다가 교섭단체 구성 요건은 나라마다 다르다. 1석을 기준으로 하는 나라도 있고, 의석의 5%를 하한선으로 하는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의 의석수 대비 교섭단체 구성 기준(6.7%)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교섭단체 요건을 대폭 완화하여 목적대로 국회를 원활하게 운영하는 단체로만 기능하게 해야 한다. 다양한 정당의 활동이 의회 내에서 공평하게 보장되어야 정치에서 다원주의적 가치가 실현될 수 있고, 이럴 때에 사회 구성원 모두가 온전한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섭단체가 '만능 열쇠'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