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벌레가 자주 출현하는 세탁실
김현중
익충인 돈벌레의 활약 덕분일까.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바퀴벌레는 한 마리도 보지 못했다. 혐오스러웠던 돈벌레가 조금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돈벌레를 외모로만 판단했던 나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외모 지상주의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십수 년 전에 시작된 '얼짱, 몸짱' 열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인 미디어, SNS를 통해 전 연령대로 끝없이 확산 중이다.
아름다움을 선호하고 추구하는 것은 인지상정. 그러나 외모 지상주의는 상업적 패러다임이다. 개성을 무시하고 외모 정형화를 부추긴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의 외모와 격차가 클수록 패배감에 젖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혐오의 시대를 살고 있다. 여성과 남성, 진보와 보수, 약자와 강자 등 분노를 넘어 서로를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임계점을 넘은 미투 운동은 시대 정신이 되었다.
외모에 대한 혐오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장애, 인종, 개취(개인 취향) 등에 따른 혐오로 '다름'의 가치가 '틀림'의 판단으로 전락해버렸다. 나 역시 언제든지 누군가에게 혐오스러운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생후 100일 된 아들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며 생각한다. 아들이 성장하여 세상으로 나아갈 때는 외면이 아닌 내면, 획일성이 아닌 개성, 틀림이 아닌 다름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아직도 돈벌레가 자주 마중 나오는 세탁실이나 보일러실을 갈 때면 아내와 나는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레 문을 연다. 반갑고 고마운 마음으로 돈벌레와 인사를 나누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