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진은 2000년 6월 14일 북 백화원 영빈관에서 남북정상간 합의문에 서명하기에 앞서 두손을 맞잡아 들고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북은 그 뒤에도 같은 입장을 유지했다. 김일성 주석이 1994년 4월 재미언론인 문명자씨와한 인터뷰에서 "북남이 무력을 10만으로 축소한 후 자체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 때까지 미군의 주둔을 용인할 수 있다"라고 했고, 1996년 4월 미국 조지아 대학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 참석한 리종혁 노동당 부부장이 "북미 양측이 평화조약을 모색하는 동안 미군이 한반도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라면서 "우리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미군주둔 자체가 아니라 군사훈련과 같은 구체적인 행동"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정일도 아버지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2000년 6월 1차 정상회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동북아시아의 역학 관계로 보아, 조선 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라며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가 대통령께 비밀 사항을 정식으로 말씀드리겠다"라면서 1992년에 김용순 비서가 미국 캔터 차관에게 한 발언을 확인했고, 이로써 8년만에 정부의 소수만이 알고 있던 북한의 '주한미군 주둔 인정'의사 전달사실이 공개됐다. 그는 6월 15일 오찬장에서 다음날 클린턴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내용을 전해주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게 돼 있었던 황원탁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에게도 클린턴 미국 대통령에게 '어제 말한 것을 전해달라'고 고 부탁하는 적극성을 보였다고도 한다.
김정일은 직접 미국 지도부에도 이같은 뜻을 전달했다. 2002년 10월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을 만나 "냉전 이후 우리 생각은 변했다"라면서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관련 기사: 2003년 9월 17일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회고록).그러나 북한은 내부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는 계속해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왔고, 2016년 7월 6일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며 비핵화의 전제조건을 밝힌 '공화국 정부 대변인 성명'에서도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했다.
이처럼 '겉과 속이 다른' 모습에 대해 김 위원장은 2000년 6월 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의 관련 질문에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주기 바랍니다"라고 답한 바 있다(임동원 회고록 <피스메이커> 93쪽).
손자인 김정은은 어떨까. <한겨레>는 지난 13일 치 기사 "북, 비핵화 대가 5개안 미국에 제시했다"에서 김정은-트럼프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근 이뤄진 북미 간 실무접촉 내용을 전하면서 "북한은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체제 안전이 보장되면 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공식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1992년 이래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북한 최고지도부가 밝혀온 입장과 같은 것인 데다, 다른 5개항도 전반적인 상황과 부합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이기동 부원장이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은 이미 김일성 주석 시절에 정리됐다"라면서 "적이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위험하지만, 친구라면 그렇지 않다, 북한은 미국과 관계가 정상화되고, 국교수립이 되면, 주한미군을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같은 '역사'를 종합한 발언인 셈이다.
3대 세습 수령 모두 인정... 김정일은 왜 "냉전 이후 우리 생각 변했다"고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