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아로 향하는 길목에 어떤 바도 없었다. 너무 일찍 나섰는지 몇 개 본 바는 문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오아시스 같은 무인 자판기가 있는 쉼터에서 발을 쉴 수 있었다.
차노휘
피니스테레에서 6km 정도 걸어왔을 때였다. 맞은편에서 4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 순례자가 걸어왔다. 사람 구경하기 힘든 곳이어서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힘찬 인사를 건넸다. 그는 자꾸 묵시아, 묵시아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걸어가는 방향을 가리키며 묵시아는 저쪽이라고 당신이 가는 길은 피니스테레라고 말했다. 휴대폰 맵을 보여주며 현재 위치를 확인시켜 주었다.
그 남자는 좀 전에 만난 사람이 길을 잘못 가르쳐줬다면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지 굉장히 짜증을 냈다. 피니스테레에서 5시에 출발했다고 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지나가는 마을과 마을을 연결해서 구글맵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자칫 잘못하면 표지석도 찾지 못하고 양쪽 화살표 때문에 헷갈릴 수 있다고.
여섯시 이십분에 출발해도 캄캄했는데 다섯 시는 얼마나 더 했을까. 다행히 나는 까미노맵을 이용했다(까미노맵으로 절반 정도 길을 찾아 걸었을 때에야 묵시아로 가는 확실한 표지석을 발견했다).
남자는 나를 따라오면서도 의심을 풀지 못했다. 새까만 동양 여자 말과 현지인의 말 중 어느 쪽을 더 신뢰해야하는지 의문스러워하는 듯했다. 2분인가 함께 걸었을까. 사거리가 나왔고 자동차 두 대가 달려왔다. 남자는 무리하게 앞차를 정차시키더니 묵시아, 묵시아라고 또 외쳤다(영어를 잘 하지 못했다).
나는 그와 함께 운전석 남자의 말을 들어볼까 하다가 그냥 내 길을 갔다. 먼저 간다고 손을 흔들어 줬다.
온전한 내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