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길
김종건
길가에 바로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나도 차를 운전하며 갔다면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으리라. (51쪽)
좌우로 논밭 시골 풍경을 보며 길을 걷는 기분은 방금까지 빗속에서 걸으며 지루하고 무료했던 느낌과는 전혀 다른 신선함이었다. (63쪽)
쉰 줄을 훌쩍 넘긴 아저씨 한 분이 서른 해를 몸담은 일터를 그만두고서 홀로 1000킬로미터를 걷는 마실길을 누볐다고 합니다. 이러고 나서 석 달 동안 바지런히 도서관을 오가며 글을 쓰고 사진을 추슬렀으며, 책까지 내놓았습니다. <50대 청년, 대한민국을 걷다>(김종건, 책미래, 2018)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1000킬로미터 길을 스물나흘에 걸쳐서 걸은 이야기를 갈무리합니다.
사람들은 길에서 쉰 줄 아저씨한테 으레 물었다고 해요. "뭣 하러 힘들게 그 먼 길을 걸어요?" 쉰 줄이어도 '젊은이'라고 여기는 아저씨는 숱하게 듣는 물음에 딱히 대꾸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대꾸를 안 했다고 할 만합니다. 걷는 사람한테 "왜 걷느냐?"고 묻는 말이란, 사는 사람한테 "왜 사냐고?"고 묻는 말하고 같아요.
우리는 굳이 이런 말을 묻지 않습니다. 밥을 먹는 이한테 "왜 먹느냐?"고 묻는 일이란 없어요. 자는 사람한테 "왜 자느냐?"고 묻지 않아요.
그런데 곰곰이 헤아려 볼 만한 물음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늘 숨을 쉬면서 목숨을 잇는데 "숨을 왜 쉴까? 숨이란 뭘까? 무엇을 숨으로 쉬면서 사는가?" 하고 물을 만해요. 왜 배가 고프고, 왜 잠이 오며, 왜 일을 하고, 왜 일을 쉬면서 놀이를 하는가 물을 만합니다. 왜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보금자리를 일구고, 왜 살림을 지으며, 왜 마음에 꿈이라는 씨앗을 품고 살아가는가 같은 대목을 스스로 묻고 이웃이나 동무하고 이야기를 해 볼 만하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