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장모님이 주신 잊지 못할 선물

미역을 직접 채취하여 말린 장모님, 알고 보니...

등록 2018.05.07 13:24수정 2018.05.0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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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리 대게로 부두 ⓒ 김환희


언제부턴가 일상생활의 모든 소통이 휴대폰으로 이뤄지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집 전화가 없는 가정도 부지기수다. 설령, 있다고 해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 요즘 추세인 것 같다. 우리 집 전화기 또한 무용지물이 된 지도 꽤 오래다.


그럼에도, 전화기를 없애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경북 울진군 후포리에 살고 계시는 장모님 때문이다. 몇 년 전의 일이다. 휴대전화를 사주고 난 뒤, 간단한 사용법을 가르쳐 줬음에도 장모님은 불편하다며 집 전화를 고집하셨다. 가끔 집 전화벨이 울려 받아보면, 10번 중 10번이 장모님 전화일 정도로 우리 집 전화는 장모님 전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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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리 바다전경 ⓒ 김환희


장모님은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우직하시다. 오히려 그것이 자식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때가 있다. 자식이 모시려고 해도 장인이 묻힌 이곳 바다를 떠날 수 없다며 고집을 부리신다. 그리고 웬만해서 자식에게 전화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일 년에 한두 번 꼭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장모님은 전화하시곤 한다. 사실 장모님이 전화 거는 일자는 정해져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지켜지는 것은 있었다. 그건 바로 전화하는 시간(새벽 6시)과 첫 멘트였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그것이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5일 새벽 6시. 평소 거의 울리지 않던 집 전화벨이 울렸다. 아니나 다를까 장모님으로부터 걸러온 전화였다.

"김 서방, 이른 아침 깨워서 미안하네. 별일 없지? 애들은 잘 크고?"
"장모님께서도 건강하시죠?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가끔 통화하지만, 장모님의 목소리는 사위가 아닌 마치 친자식을 대하듯 늘 다정다감했다. 그리고 일교차가 심하니 건강관리 잘하라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장모님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계속하여 똑같은 말만 반복하셨다.

순간, 옆에 있던 아내가 그것을 알아차린 듯 들고 있던 수화기를 요구했다. 시간 나면 찾아뵙겠다는 말을 장모님께 한 뒤, 아내에게 수화기를 건넸다. 그러자 아내는 내 눈치를 살피며 장모님과 조용히 통화했다. 오랜만에 연락된 모녀간 대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잠시나마 자리를 피해 주는 것이 나을 듯싶어 거실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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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 한장 한장 장모님의 정성이 묻어있다. ⓒ 김환희


잠시 뒤, 장모님과 통화를 끝낸 아내가 거실로 나왔다. 그런데 아내의 표정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혹시, 장모님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여보, 장모님에게 무슨 일이 있어요?"
"요즘 사람들, 미역국 잘 안 먹죠? 큰일이네!"

아내의 뜬금없는 미역국 이야기에 궁금해서 물었다.

"큰일이라니? 뭐가요? 무슨 일이에요?"
"미역을 팔아야 하는데…, 어디에?"

그제야 아내는 조금 전 장모님과 전화로 나눈 대화 내용을 이야기했다. 이야기인즉슨, 지난 몇 개월 동안, 장모님이 바닷가에서 직접 채취하여 말린 미역 200장을 팔 곳이 없는지를 물었다고 하였다. 이제야 장모님이 사위인 내게 그 이야기를 못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미역을 파는 것도 문제지만 그 많은 미역을 만들기 위해 애쓴 장모님의 노고가 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심 보내주는 용돈이 너무 적은 것으로 생각하고 이번 어버이날에는 용돈을 더 보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실 지금까지 장모님은 자식에게 용돈 한 번 요구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자식이 준 용돈을 모아 손자와 손녀를 위해 쓰는 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나 돈이 궁했으면 미역을 말려 팔려고 하셨을까 하는 생각에 사위로서 죄송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이 많은 미역을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되었는지 나에게 미역 팔 때가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주문했다. 아내의 말에, 팔다가 못 팔면 내가 모두 사 판 거로 해 미역 값을 보내주면 된다고 큰소리쳤다. 그러자 아내는 화들짝 놀라며 다가오는 어버이날 용돈을 포함해 그 어떤 선물도 보낼 줄 필요가 없고 오직 미역만 팔아주면 된다는 장모님의 말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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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를 위해 별도로 말렸다는 장모님 미역 ⓒ 김환희


아내는 미역을 다 판매한 뒤 내게 알려주라는 장모님의 말을 미리 알려주었다. 그리고 미역을 판매한 돈으로 사위 양복 한 벌 사주라는 장모님의 말을 전했다. 순간, 매번 후포리 처가댁을 방문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사위에게 옷 한 벌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내 손을 꼭 잡아 주셨던 장모님의 모습이 떠올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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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병에 좋다는 미역귀를 장모님은 위를 위해 별도로 말려 보냄 ⓒ 김환희


현금을 주면 받지 않을 거라는 내 성격을 알고, 장모님은 지난겨울 몸소 채취하여 말린 미역을 팔아 사위에게 옷을 사주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말을 잘 알고 있지만 다가오는 어버이날 장모님으로부터 이렇게 큰 선물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장모님, 사랑합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어버이날 #장모사랑 #후포리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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