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관을 그만두고 나이 50에 화가생활을 시작했던 앙리 루소의 자화상. 1903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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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리네르의 소개로 '피카소 사단'에 들어가게 된 루소는 자신이 전에 그렸던 <여인의 초상화(Portrait de femme)>란 작품을 처음으로 팔게 되었다. 잡화상에 팔린 그림 값은 단돈 5프랑. 하지만 이제 화가가 되었다는 자부심에 루소는 뛸 듯이 기뻐했다.
이를 축하해주기 위해 피카소는 당사자인 루소를 비롯해 아폴리네르와 마리 로랑생 커플, 막스 자코브와 조르주 브라크, 앙드레 살몽, 모리스 레날 등의 문인과 장 메쳉저, 후안 그리스 등의 화가, 그리고 화상 다니엘 헨리 칸바일러, 거트루드 스타인 남매 등을 자기 방으로 초대했다. 방 벽엔 루소의 그림이 걸리고 그 밑에 '루소 만세'라는 글씨가 쓰여졌다.
일행은 와인을 마시고 춤을 추었으며, 얼큰해진 아폴리네르는 루소를 대(大)화가로 추켜세우는 시를 읊었다. 예술을 논하고 술을 마시며 왁자지껄 떠드는 '피카소 사단'의 중심엔 늘 피카소가 있었다. 만일 피카소가 파리에 오지 않았다면 파리가 예술의 수도가 될 수 있었을까?
쉽진 않았을 거라고 아빠는 추측하신다. 그만큼 피카소의 활약은 두드러졌고 주변에 끼친 영향력 또한 막대했다는 것이다. 부리부리한 눈에 체구가 단단한 피카소에겐 사람을 끌어들이는 묘한 흡인력 같은 게 있었다. 그 때문에 주변에는 아폴리네르 커플을 비롯한 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모여들었다.
몽마르트르를 떠나는 피카소
그 중에서도 특기할 만한 인물로는 로랑생의 그림을 처음 구입해준 미국의 여류작가 겸 그림 수집가 거트루드 스타인을 들 수 있다. 뒤에 하버드대학에 편입된 래드클리프대학을 거쳐 존스홉킨스 의대에 진학했던 그녀는 중도에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남동생과 함께 파리로 건너왔다. 그리고 수많은 문인 및 화가들과 교유하면서 글도 쓰고 평도 하고 미술품을 수집했다. 아빠는 그녀를 이렇게 평하셨다.
"스타인은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을 주도하게 될 천재 화가 피카소의 재능을 가장 먼저 알아보고 그의 여러 작품들을 8백 프랑 어치나 사들였던 인물이다. 이때 작품 당 몇 십 프랑을 주고 산 피카소 그림이 훗날 몇 천 만 달러를 호가하는 고가품이 될 정도로 뛰어난 안목을 갖고 있었던 거지."
그날 피카소는 자신의 작품이 팔린 것을 자축하기 위해 '피카소 사단'을 이끌고 라팽아질로 향했다. 호기롭게 들어간 그 술집은 지금도 솔르로(Rue des Saules) 22번지에 있는데, 2층 건물 벽에는 배를 내민 토끼가 술병을 흔들며 냄비에서 뛰쳐나오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캐리캐처 화가 앙드레 질이 1875년에 그린 그림이다. 원래는 자기 이름을 따서 술병을 든 채 '질에게로 오는 토끼(Lapin à Gill)'라는 상호였는데, 그 후 발음이 같은 '민첩한 토끼(Lapin Agile)'로 바뀌어져버렸다.
초록색을 칠한 싸리담장을 끼고 돌아가자 말라비틀어진 고목나무 밑으로 출입문이 보였다. 집 자체는 허름해도 스토리가 있는 관광 포인트라 입장료를 내야 한다. 아빠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니 20세기 초엽 풍의 검붉은 실내장식에 옛날을 보여주는 사진 액자들이 죽 걸려 있었다. 입장료에 포함된 기본 음료가 한잔씩 나왔다.
"아까 그 토끼가 들고 있던 술일까요?"
"토끼가 들고 있던 술은 당시 예술가들의 혀를 사로잡았다는 압생트(Absinthe)일 게다. 고흐가 마시고 자기 귀를 잘랐다는 독주인데 환각성분이 있어 지금은 판매 금지야."
"모이는 데는 이곳뿐이었어요?"
"더 있었겠지. 물랭루주도 있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변해. 그림을 팔아 경제적 여유가 생긴 피카소도 몽마르트르를 떠나거든."
"어디로요?"
"세느 강 남쪽의 몽파르나스(Montparnasse)로. 피카소 그림을 8백 프랑 어치 샀다는 거트루드 스타인 말이다. 그 여자가 살던 동네가 바로 몽파르나스야. 수많은 화가들의 그림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어 사상 최초의 현대미술관이었다는 평을 받은 스타인 집이 바로 그곳에 있어."
"그럼 다음 행선지는 몽파르나스네요?"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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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첫 입체주의 작품, 그 모델의 주인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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