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교재를 읽어보시는 할머니할머니가 일본어교재를 찬찬히 뜯어보시며 읽어보시고 계시다.
송혜림
"아, 요, 츠, 키, 쥬..." "와, 할머니. 이거 다 읽으실 줄 알아요?""알지, 히라가나, 가타카나 다 읽을 줄 알지. 잊을 리가 있나."
"할머니, 이건 어떻게 읽게?""요로시쿠 오네가이시마스." (잘 부탁드립니다.)교재 내용을 막힘없이 읽어 내려가시는 할머니를 보며 감탄을 터트리자, 할머니가 수줍은 소녀처럼 홍홍 웃음을 지으신다. 히나가라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손으로 짚으시며, 오랜 추억 속으로 시간여행을 떠난 할머니는 생각이 많아지신 듯했다.
'다 기억나제... 다 기억나.'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하시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유난히 우울했다. 아흔 살의 할머니, 남의 언어인 일본어를 80년이라는 긴긴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하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소학교 내내 일본어를 배웠어. 교장 선생님은 물론 선생님들도 일본인이었지. 수업시간이든, 쉬는시간이든 온통 일본어를 썼지. 한 번이라도 조선어(우리말)를 썼다간 혼쭐나고 청소를 시켰지. 남자들은 배울 만큼 다 배웠는디, 그땐 여자들은 '여자가 뭔 배움이냐' 하면서 일본어 가르치는 소학교도 졸업 못혔어. 그때 여자는 겨우 세 명만 졸업혔지. 나는 6학년 때까지 운이 좋아 다녔는디, 그때야 조선어를 배웠어. 나는 일본어를 정말 잘혔어. 공부를 잘 혔고, 무용도 열심히 혔지. 그래서 일본인 교장이 나를 엄청 이뻐혔지. 그 집에 자식이 없었거든. 그래서 나를 자기 집에 데려오곤 했어. 끼니를 못 챙겨 먹으문 거서 밥을 묵었고, 아침엔 그 집에서 자고 학교로 등교도 혔어. 교장 마누래가 나에게 일본식 옷도 많이 해 입혔어. 다른 아들은 사쿠라 열매(벚꽃 열매) 못 따게 혔는데, 나는 양껏 딸 수 있었어. 친딸처럼 이쁨 받았제. 그런디 어느 날 학교에서 무용극을 혔는디, 내가 꽤 잘혔거든. 앞에 일본인들이 앉아 있었는데, 자식 없는 경찰부장이랑 교장이 나를 양녀로 들일라 했어. 우리 아부지가 죽기 살기로 안 된다고 버텼제. 나가 그때 억지로 양녀로 끌려갔으문, 나는 지금 일본인이었을 거여."모범생이던 할머니는 유난히 고운 얼굴과 타고난 재능을 지녀, 자식 없는 일본인들이 자신의 양녀로 들이려 안간힘을 쓴 모양이다. 셈도 잘하셨던 똑똑이 할머니는, 동네 또래 아이들이 가게에서 돈 계산을 할 때 늘 주산을 도맡으셨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배경과 극심한 여성차별 속에서도, 할머니는 배움에 열정적이었던 흔치 않는 여학생이었다. 분명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있었을 열여섯 꿈 많은 소녀였으리라.
할머니 안에는 여전히 열여섯 소녀가 살고 있다"열여섯에 학교를 졸업혔지. 그런디 그때 금산 쩍 살던 어매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어. 집안에 돈 없는 사정상 어매가 나를 촌으로 시집을 보내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제." "그런 게 어딨어. 할머니는 그때 혼인하고 싶었어요?""좋고 말고가 어딨어. 그땐 선택하고 말고가 없었지, 그냥 당연한 거였제. 그렇게 얼굴도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남자한테 시집을 가부렸어. 좋아하던 책만 딸랑 챙기들고서. 나는 여태꺼정 집안일을 해 본 적이 없었거든. 그런 아무것도 모르는 쪼매난 애가 촌에 뚝 하고 떨어진 거여. 논매고 밭매고 잡초 뜯고, 다 첨이었제. 그꺼정 좋아하던 무용도 다신 할 수 없었어. 매일 밤 울었제. 엄청 울었제. 내가 하도 울어싸니, 마을 사람들이 내가 친정으로 쫓겨날지 안갈지 내기도 했다니께. 근디 버텼어. 내가 말여, 할아부지가 한자를 못 읽으문 나가 일본어를 써 갖고 발음도 알려줬어. 시어미랑 시아비랑 같이 밤낮으로 나가 일도 혔어. 이래, 팔십 년을 산 거여 나가. 어릴 땐 공부도 잘혔고, 이뻤고, 무용도 잘혔는디. 어릴 적 그렇게 사랑받았는디, 이래 '반푼이'가 되어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