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의 연대기> 중 한 장면
상상마당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장애여성공감은 2003년도에 발간한 잡지 <공감>에서 '축복도 저주도 아닌 나의 월경'이란 제목으로 장애여성의 월경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5년 전, 장애여성은 어떻게 월경을 했을까.
어쩌면 지금 누군가의 머릿속엔 "장애가 있는 몸으로 그걸 어떻게 처리했을까?"하는 생각이 스쳤을지도 모르겠다. 2003년은 활동보조가 제도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따라서 장애여성의 신변보조는 주로 가족이 담당해야 했다. 가족들에게 장애여성의 월경은 말 그대로 '처리해야 하는' 골치 아픈 문제였고, 귀찮고, 쓸데없고, 새삼스러운 것이었다.
또한 장애여성의 장애가 중증일수록, 앞으로 재생산을 할 것이라고 기대되지 않는 몸에 가까울수록 가족과 주변인의 부정적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은 본인이 아닌 타인의 '기대' 또는 '허용'에 달려 있는 것이었고, 지역사회가 아닌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여성의 재생산권과 선택권은 보장되기 더욱 어려웠다.
15년이 지난 지금은 활동보조가 제도화 되면서 신변보조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좀 더 늘어났지만, 보조를 하는 대상이 가족에서 활동보조인으로 바뀌었을 뿐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어려움과 복잡한 감정들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저 '몸'의 문제로만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이야기 생리대 파동 이후, 대안용품을 찾은 여성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는 '신세계'가 아닐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면생리대로, 탐폰으로, 생리컵으로 갈아탈 수 없는 많은 장애여성들은 그 '맛'을 볼 수 없었다. 탐폰이나 생리컵 같이 질 내에 삽입하는 생리용품의 경우, 장애여성이 혼자 사용하거나 활동보조인에게 요청하기에는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잦은 세탁이 필요한 면생리대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하자면 이는 단순히 장애여성을 보조하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눈치 때문만은 아니다. 타인에게 자신의 몸을 드러내야 하는 장애여성의 긴장감, 나를 잘 알고 있다는 이유로 수시로 '금'을 넘나드는 상대방, 그리고 그로부터 최소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반복해야 하는 부단한 눈치게임, 수치심과 불쾌감처럼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장애여성은 원치 않는 순간에도 상대방에게 자신을 드러내야 할 때가 있지만, 상대방은 그만큼 스스로를 드러낼 필요가 없다. 이러한 균일하지 않은 정보의 양은 자연스럽게 두 사람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보조 받지 않을 것'을 선택하는 것 역시 장애여성의 결정의 결과 중 하나인 것이다.
또한 장애여성의 월경경험을 단지 '몸'의 문제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발달장애여성을 비롯한 다양한 장애여성의 경험을 단순하고 납작하게 만들어 버린다. 모든 장애여성들의 월경경험은 단일하지 않으며, 그가 놓인 사회적 상황과 다양한 정체성에 따라 달라지지만 장애여성의 이런 복잡한 맥락과 경험들은 거의 공론화되지 않는다.
매우 드물긴 하지만 때때로 장애여성의 월경에 대해 언급될 때가 있다. 필자, 글이 실린 지면과 시기, 논조는 모두 다르지만 장애여성이 월경을 할 때 겪는 어려움, 주변 사람들의 태도, 대안용품이 부재한 현실은 여전하기에 그 내용들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한 가지 또 바뀌지 않는 것이 있으니 '장애여성의 월경경험을 알게 된 이들의 반응'이다.
대부분은 '장애여성은 이런 어려움을 겪는지 몰랐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장애여성은 대개 어딜 가도 낯선 존재 취급을 받기에 '몰랐다'는 말이 익숙하기는 하지만 그 사이사이에 숨은 '죄송하다'는 말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했다. 대체 무엇이 죄송하다는 것일까. '미안한 마음'은 장애여성이 논의의 주체가 되는 데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측은지심은 장애여성을 논의와 투쟁의 현장으로 불러들이는 대신 계속 변방에 머물게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