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정가 8,500원 양장본 | 212쪽 | 128*188mm (B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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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커버 특별판으로 옷을 새로 입은 이 책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독일의 최대 일간지 중 하나인 <빌트>지와 소설가 하인리히 뵐의 갈등에서 탄생한 역작이다. 객관적인 검증 없이 무엇이든 일단 과격 운동권 조직의 소행으로 몰아가는 <빌트>지의 보도 행태를 뵐이 비판하자, <빌트>지는 수십 일이 넘는 기간 동안 집요하고 치졸한 방식으로 보복한다.
이 과정에서 하인리히 뵐은 '테러리스트들의 공범', '무정부주의자'로 몰렸다. 이를 믿은 몇몇 성난 군중들이 몰려와 욕설을 내뱉고 위협을 가하는 통에, 뵐은 한동안 집밖에 갇혀 지내며 큰 곤욕을 치러야 했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기사로 소설을 쓰는 추태에 맞선, 한 소설가의 진실한 반격인 셈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은
자유로이 꾸며낸 것이다.
저널리즘의 실제 묘사 중에 <빌트>지와의
유사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의도한 바도, 우연의 산물도 아닌,
그저 불가피한 일일 뿐이다.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꼼꼼하고 성실한 젊은 가정부가 있었다. 괴텐이라는 남자와 불같은 사랑에 빠졌는데, 하필이면 그는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남자는 도주했고, 그녀는 경찰의 심문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차이퉁>지는 사건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그녀의 이혼 경력, 재산 상태, 성생활 등을 부각시켜 보도한다.
블룸이 연루되어 심문받은 내용, 그녀가 수행했을 만한 역할에 관해 철저히 객관적인 형식으로 보도한 다른 신문들을 문서실에서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 그녀가 블룸에게 가져다준 오려 낸 신문 기사 열다섯 장은 카타리나를 전혀 위로하지 못했고, 그녀는 그저 이렇게 묻기만 했다고 한다. "대체 누가 이걸 읽겠어요? 내가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차이퉁>을 읽거든요!" (p.78)
<차이퉁>은 현란한 기술로 사실을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왜곡한다. 책은 편견 자극하기, 문맥과 뉘앙스 변경, 선정적 헤드라인, '빨갱이' 타령, 위장취재, 가능성과 사실을 뒤섞는 의혹제기 등, 괴벨스의 선전요법에서나 볼 법한 언론의 왜곡 보도의 행태를 효과적으로 묘사한다. 우리도 대한민국에 살면서 많이 본 것들이다. 그 결과 카타리나 블룸의 명예와 인권은 짓밟혔고, 그녀는 자신과의 인터뷰를 빌미로 성폭행을 시도하려던 기자를 총으로 쏴 죽인다.
기자들의 잃어버린 명예?이제 시민들은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가 되어 직접 기사를 생산한다. 외신을 직접 번역해 전달하기도 한다. SNS를 통해 꽤 순도 높은 글을 올리고 공유한다. 이제 언론이 시민에 앞세울 것은 정직한 보도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 언론에 윤리라는 게 남아있었던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반문해본다. '기레기'라는 오명은 이제 언론계가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불명예스러운 낱말이 되었다. 사실에 대한 기초적인 점검도 없이, 다른 언론사가 쓴 비판 없이 재생산한 아류기사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 남의 기사를 조금 고쳐 다시 올리는 기자들에게 '인권'이라는 가치를 고려할 윤리의식은 남아는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 언론은 'Long Gas Line'조차 똑바로 해석하지 못해, 외신의 보도를 정반대로 전달한 기억이 있다. 이것은 정치적 선호가 아니라 윤리적 기본의 문제다.
가장 최근부터 다시 살펴보자.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자 원내대표로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김성태의 단식과 세월호 참사의 피해 유가족 유민 아빠의 단식을 같은 층위로 놓고 보도할 수 있는가? 세월호 참사의 은폐된 진실을 제쳐두고 유민아빠의 사생활을 뒤지며, 예은 아빠의 진보정당 당적을 문제 삼아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