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 보존을 위해 만난 한국과 일본 시민들

제13차 한일습지포럼 참가자들의 가나자와 습지 방문기

등록 2018.05.19 16:27수정 2018.05.1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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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사이카와 강 사이카와 강 유역을 둘러보며 개발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든 한일습지포럼 참가자들

사이카와 강 사이카와 강 유역을 둘러보며 개발 계획에 대한 설명을 듣든 한일습지포럼 참가자들 ⓒ 조은미


a 사이카와 강 상류의 다쓰미 댐  백 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홍수를 대비하여 지어진 다쓰미 댐

사이카와 강 상류의 다쓰미 댐 백 년에 한 번 올까말까한 홍수를 대비하여 지어진 다쓰미 댐 ⓒ 정한철


a 숲길에서 만난 도둑게 "놓아주세요" 숲길에서 만난 도둑게

숲길에서 만난 도둑게 "놓아주세요" 숲길에서 만난 도둑게 ⓒ 정한철


초록 숲길 가장자리에 뭔가 빠르게 움직인다. "도둑게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강에 사는 게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일본인 박사가 게를 손바닥에 올린다. 그 옆에 지나던 말똥게도 같이 끌려온다. 몸집이 작은 게들이 부지런히 발을 움직이며 놓아달라고 한다. 가던 길에 놓아주고, 이번엔 길가에 핀 꽃창포에 마음을 빼앗긴다. 철새 탐조대 안으로 들어가니 온통 푸른 숲 속 연못 위에서 붉은해오라기가 날아오른다.

지난 18일에 강과 숲과 바다가 만나는 곳, 일본 가나자와시 사이카와강에 사람들이 보였다. 이들은 13차 한일습지포럼 참가자들이다. 강과 갯벌, 연안 바다와 같은 습지 보전을 위해 한국과 일본의 민간단체와 개인들이 20년 넘게 함께 교류하고 협력해왔다. 함께 한일습지포럼을 개최한 것도 벌써 13차. 부산, 서산, 춘천과 같은 한국의 도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와 같은 일본의 도시에서 열리던 포럼이 이번에는 가나자와 지역 활동가들의 초청으로 가나자와시에서 열렸다. 한국에서는 '습지와 새들의 친구' 김경철 국장이, 일본에서는 전직 물리교사였다가 이후 평생을 습지 보전에 힘써온 일본 람사르 네트워크 가시와기 미노루씨가 양국 대표단을 이끌어오고 있다.

료하쿠 산지에서 발원하는 사이카와 강은 그리 크지 않은 강으로 일부 하천 정비와 개발이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숲으로 연결된 한쪽은 개발의 손길을 벗어나 있었다. 그렇기에 다양한 철새와 수생동식물들이 종다양성을 유지하며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지역의 야조회원들(철새 탐조 동호회)은 2015년에 강에 대한 공사 계획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새 보기를 좋아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회원들은 공사 측과 지역 현 관리들에게 연락했고 관련하여 질의와 요청을 시작했다. 공사 예정지에 대한 생물 조사는 했는지 문의했고, 큰 이슈에 전혀 경험이 없던 주민들을 조직해 위원회를 만들었다.

지자체는 개발 계획 관련 정보를 감추기에 급급했고, 지역 대학이나 언론이 결합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 반대와 강 보전을 위한 운동의 동력은 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조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지역 시민들은 사이카와 유역에 사는 생물권 조사를 계속해오고 있으며, 이 곳에 135종의 철새와 5종의 해양성곤충 희귀종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강 옆에 있는 숲 속 연못에 날아오르는 새를 보며, 찬탄을 거듭하게 된다. 이곳 탐조대에는 많은 학생들과 시민들이 와서 새를 보고 간다. 강안을 전부 콘크리트로 바른 후 숲을 밀어버린다면 이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운 연못은 사라지고, 새는 떠나갈 것이다.

이후 한일습지포럼 참가자들은 강 상류에 위치한 다쓰미댐을 방문했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수조절용으로 지어진 이 댐은,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홍수를 막기 위하여 지었다고 한다. 거대 토목 공사가 번영이고 발전이라는 신념으로 터무니 없는 공사를 강행하는 것은 한국만이 아닌 모양이다. 댐이 지어진 강 상류에서 붉은 해오라기를 2002년부터 조사해온 야조회원들이 있었다. 이들은 밤중에 들리는 새소리를 기록하고 댐 건설과 같은 요인으로 인한 개체수 감소를 확인해왔다. 이미 다 개발되어 파괴된 곳의 생태를 기록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은 중요하다.

가호쿠가타 간척지로 가는 길에 논이 펼쳐진 들판을 둘러보았다. 우렁이가 논바닥을 기어다니는 논에는 중부리도요와 백로들이 노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습지로써의 논의 역할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1963년부터 간척이 시작되어 1985년에 완공된 가호쿠가타 간척지는 274㎢의 면적을 차지한다. 평균 깊이는 2m 정도이고 해수 유통이 없이 막혔다. 당연히 수질이 상당히 나쁘다. 현재 COD 수준이 6 정도로 수질이 나쁘지만, 당장 큰 피해를 보는 이해당사자가 없으니 누구도 수질 개선에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물은 흐르면 좋아진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 하지만 지자체도, 간척지에서 살거나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하굿둑 개방을 요구하지 않는다. 별다른 대책 없이 그냥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 같다.


환경 파괴와 개발에 일견 무력한 시민사회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현실과 대비하여 생각하게 된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낙동강은 많은 시민들의 식수원이자 생활 터전이다. 낙동강 수질은 우리 국민들에겐 절실한 생명과 건강의 문제이다. 그렇기에 보를 열고 둑을 열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곳 가나자와의 의식 있는 시민들과 단체들이 하는 보호 운동은 큰 동력이 없다. 다만 소수여도 꾸준하고 끈질기다. 일본인들도 오고 싶어하는 꽤 알려진 호젓한 관광지인 가나자와의 주민들에겐 대규모 개발 이슈와 갈등이 없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습지와 습지에 깃든 동식물을 지키고 싶은 이들이 이제 한국인들에게 묻는다. 자연스러운 물의 흐름을 지키고, 붉은 해오라기가, 말똥게가 다같이 살 수 있는 강와 연안을 지키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지.


4대강 재자연화를 위해 힘쓰고, 갯벌 매립을 반대하고, 해수 유통을 위해 힘써온 한국의 시민단체와 시민들은 일본의 친구들에게 대답해주어야 한다. 또한 일본 NGO들의 경험을 통해, 우리 강과 습지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힌트를 얻어야 할 것이다.
#한일습지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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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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