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를 처벌하기는 하지만 차별은 아니다?

[주장]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 1년, 아직도 현재 진행 중

등록 2018.06.14 17:50수정 2018.06.14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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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군인의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이 있다.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 항문성교 등 그 밖에 추행을 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여기서 동성애라는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고? 그렇다. 그것이 바로 국방부가 이 법이 동성애를 차별하는 법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러나 이 법을 위반하여 기소된 거의 모든 경우가 남성 동성 간의 음란행위를 이유로 처벌받았고, 조사 과정은 동성애자나 성소수자에 대해 차별적인 인식과 태도로 일관되었다는 점에서 명백히 남성 동성애를 차별하고 감시해내기 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여기서의 추행을 강제추행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강제추행은 다른 법에서 처벌하고 있다. 이 법의 추행은 오직 '더러운 짓'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하필 추행으로 언급되는 것은 혐오세력들이 남성 동성 섹스의 특징으로만 부각하는 항문성교이고, 법 개정이 되기 이전에는 계간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계간은 과거에 남성 동성 성관계를 닭들의 섹스라는 의미로 비하했던 용어였다. 국방부는 손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숨바꼭질을 하는데 머리만 이불에 꼭꼭 숨긴다고 해서 밖으로 튀어나오는 몸통이 안 보일 리 없다. 결국 국방부는 이 법을 가지고 일을 아주 심각하게 터뜨렸다. 육군 중앙수사단이 육군의 동성애 성향의 군인들을 마구잡이로 색출하기로 한 것이다. 이 사건이 '육군 성소수자 색출 사건'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불과 1년 전 일이다.

2017년 초, 육군 중앙수사단은 한 군인이 SNS로 자신의 동성 간 성행위 영상을 올렸던 사건을 조사하여 처벌한 일을 계기로 추가로 동성애자 군인들을 색출해내기 시작했다.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뻔한 이 사건은 피조사자들이 이 사건을 사회에 고발하면서 알려졌다. 같은 해 4월에 이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고 나서야 색출수사가 확장을 멈췄다고 하는데, 이 당시 조사 대상이 된 군인의 목록만 대략 30~40명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이 법은 3번의 위헌제청 심사의 대상이었을 정도로 쟁점이었고, 실제로는 오랫동안 집행되지 않아 사실상 사장된 법 취급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육군 중앙수사관이 갑자기 나서서 수십 명의 군인들을 색출수사에 나설 이유도 힘도 없었을 터였다. 정황적으로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장준규의 지시가 있었을 것이 확실해 보였다. 성소수자들과 시민사회에서 장준규에 해임을 요구하면서 강하게 반발하고 나오자 국방부는 육군 참모총장의 수사 지시는 없었다고 밝혔지만, 이 계획적이고 본격적인 색출수사는 누가 주도했다는 것인지에 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상부 책임자는 없는데 피해자만 있었다는 식으로 아직도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군인들은 사적인 성생활과 성적지향을 이유로 감시받고 처벌받을 수 있다는 공포를 느껴야만 했다. 색출수사는 동성애자와 성소수자 군인들을 희롱하고 겁박해서 자백을 받아내는 인권침해적 조사과정을 거쳤다.


언론사 '닷페이스'를 통해 공개된 녹취록과 피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너도 동성애자냐, 너에 대해서 몇 백 페이지의 자료가 있다 바른대로 말해라, 거짓말하지 마라, 일 복잡하게 만들지마라, 너에게 실망이다, 너랑 또 누가 동성애자냐, 누구랑 무슨 관계고 성관계를 맺었냐, 평소에 무슨 야동을 보고 무슨 체위를 좋아하냐, 섹스포지션이 무엇이냐…" 등 심지어 군형법상추행죄를 어겼는지 여부와는 전혀 상관없이 사적인 정보를 물어보며 군인들 중 누가 성소수자인지,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초점을 맞춰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중간에 '실망이다'라는 발언이 중요하다. 동성 성관계를 맺은 군인은 실망스러운 사람이고, 이성 성관계를 맺는 군인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것이다. 군내에서 성소수자를 별개의 집단으로 타자화시켜 감시하고 드러났을 시 언제든 당신을 이상하고 위험하고 범죄적인 존재로 바라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해당 사건이 알려진 뒤 몇 주 되지 않아 동성애자 A 대위가 추행죄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검찰은 추행죄의 최대형인 2년을 구형했다. 누군가에 성추행·성폭력을 가한 것도 아니었다. 영외에서 합의된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였다. 군인의 합의된 영외 이성 성관계들은 빈번히 일어나지만 이런 색출도, 수사도, 형벌도 당하지 않는다. 성소수자 인권단체들과 시민단체들은 3주 내내 국방부 앞에서 성소수자 색출을 중단하고 책임자를 조사하여 처벌하라고 요구하며 집회를 열었다. 평생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겨오던 이들이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고 커밍아웃하며 "나도 잡아가라"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집회에서 미필 게이로 소개하며, 내가 군대에 가도 게이섹스를 안할 리가 없으니 잡아가라고 선전포고를 했던 기억이 있다. 솔직히 보복이 좀 두렵지만,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군대와 국가에서 어차피 나는 자긍심을 가진 군인이 될 수 없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대선도 겹쳐서, 이때만큼 성소수자 인권단체에서 집회를 많이 열었던 때가 없었을 것이다.

5월 24일, 수많은 시민들과 국제기관들의 항의와 권고에도 A 대위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같은 날 대만에서는 동성결혼이 법제화되었다. 기쁘고 슬픈 일이 함께 있던 날이었다. A 대위를 시작으로, 추가로 더 기소되었던 군인들도 법정으로 불려가 벌을 받았다. A 대위가 판결을 받기 전 5월 9일에 조기 대선에서 사람이 먼저라던 문재인이 당선되었지만, 장준규는 짧게 남아 있던 임기를 무사히 끝마쳤고 어떤 문책도 받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당선 바로 앞두고 일어났던 대대적인 군인 성소수자 색출사건에 대해서는 그 이후에도 언급하고 있지 않다. 국방부는 현재 묵묵부답이다.

성소수자 색출 사건은 A 대위가 유죄판결을 받은 이후에 소강상태로 흘러가는 듯했다. 인천지법의 판사가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에 대하여 위헌제청해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고, 국회에는 김종대 의원을 대표로 하여 해당 법률의 폐지안이 상정되었다. 그러나 올해 2018년 2월 서울북부지방법원에서 성소수자 색출 사건으로 기소된 예비역에게 최초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군관련성소수자네트워크는 논평을 통해 "당사자 간 자발적 합의에 의한 성적 만족 행위의 경우에는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에 위해가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히며, 군형법 제92조의6을 이러한 합의된 성관계에 대한 처벌조항으로 해석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군인의 성적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헌법에 위반되는 해석이라고 명시하였다. 재판부는 군형법 제92조의6은 상대방 군인에 대해 위계·위력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 군인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만족 행위를 한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는 조항이라고 판시하며 이에 근거하여 피고인에 대한 무죄를 선고하였다"고 판결 내용을 요약했다. 이는 군관련성소수자네트워크에서 오랫동안 주장해오던 내용이기도 했기 때문에 아주 반가운 판결이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에 대해 불복하여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한 군인 여성 성소수자가 자신이 군대에서 남성 군인에게 당한 성폭행을 사회적으로 고발한 사건도 있었다. 가해자 남성 군인은 피해자가 성소수자임을 모욕하고 조롱하며 강제로 성관계를 맺었다고 한다. 국방부가 진정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여성폭력, 성소수자폭력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성 성폭력 사건은 은폐하고 적극적으로 조사할 의지를 보이고 있지 않은 와중에 성소수자들을 대거 색출하고 처벌하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다.

4월 13일 군형법제92조의6폐지 캠페인단 출범 기자회견 군형법제92조의6폐지 캠페인단이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4월 13일 군형법제92조의6폐지 캠페인단 출범 기자회견군형법제92조의6폐지 캠페인단이 출범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심기용

성소수자 색출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다. 아직 기소된 이들의 판결이 끝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와 책임자를 처벌하는 일 모두 요원한 상태다. 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초안에서 성소수자 목록을 삭제한 문재인 정부는 삭제 이유에 종교 이견이 크다고 쓰면서, 군형법 제92조의6 합헌 판결을 뜬금없이 인용하기도 했었다. 무려 지지율이 70%가 넘어가는 정부에서도 성소수자 인권은 인권의 보편성이 아니라 이해관계의 특수성에 의해 '나중' 취급을 받고 있다.

이런 시국에 성소수자 군인인 나의 친구들, 동료시민들은 입을 다물고 차별적인 환경과 제도의 감시를 피해 불안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이야기를 더 확산시키고, 굳건하게 이 악랄한 법이 폐지되도록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3월부터 군헝법제92조의6폐지를 위한 캠페인단이 꾸려진 것은 그런 배경에서였다. 전주퀴어문화축제에도 다녀오고, 기자회견을 열고, 무지개행동에서 주최한 아이다호 레인보우 길 행진대회에서도 헌법재판소 앞에서 합헌의견을 풍선에 매달아 터뜨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재판소들에서 직접 이것을 위헌적이라고 주장하고, 무죄판결이 나오는 등 시대의 흐름이 크게 변하고 있다. 이 흐름을 더 큰 파도로 만드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의 연대와 참여일 것이다. 성소수자 색출사건, 이 비극을 2년, 3년 더 이어나갈 수는 없다. 지금 당장 이 법을 폐지하는 흐름에 동참하자.

덧붙이는 글 10년째 군형법 제92조의6 추행죄 폐지와 군인 성소수자 인권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 침해 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군관련성소수자네트워크)'에서 군형법 제92조의6 폐지 캠페인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캠페인단이 성소수자 색출사건 1년을 맞이하여 준비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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