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상 흙인형(왼쪽)과 빌렌도르프 비너스신석기 시대 중기.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신암리 유적 제2지구에서 나옴. 높이 3.6cm. 고은강 시인은 그의 시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에서 “벗겨봐, 파닥파닥 발아하는 내 아름다운 각질을” 하고 노래한다. 그는 빌렌도르프 여인상에서 생명의 역동성을 본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선사 시대 비너스 상이 있다. 신석기 중기 기원전 3500년에서 2500년에 흙으로 빚은 상이다. 위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머리와 팔다리가 없다. 마치 토르소(torso) 같은 상이다. 이 여인상은 빌렌도르프 비너스하고는 그 첫 느낌부터 다르다. 우선 여자 몸의 특징을 잘 붙잡아 아주 사실적으로 빚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젖가슴, 잘록한 허리, 어깨보다 조금 넓은 골반과 엉덩이를 보면 현대 여성의 몸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학자들은 이 여인상을 두고 빌렌도르프 비너스와 마찬가지로 다산과 풍요를 바라면서 빚은 것으로 본다.
여성 토우는 아마도 신석기 시대 모계 씨족사회에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로 만들어졌던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가슴과 엉덩이를 과장해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오스트리아 구석기시대 빌렌도르프 비너스처럼 생식과 출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미의 재발견 첫 번째 권 <선사 유물과 유적>(이건무·조현종 글, 솔) 96쪽
나는 이런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 생김새부터 판이하게 다른데 왜 이렇게 보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글쓴이는 "특히 가슴과 엉덩이를 과장해서 표현하고" 있다고 하는데, 맨눈으로 봐도 전혀 그렇지 않다. 과장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했다고 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 골반이 넓게 보이기는 하지만 이는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특징을 잡아 빚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다.
아마도 글쓴이는 빌렌도르프 비너스의 관점으로 우리나라 신석기 여인상을 보고 있는 것 같다. 또 이런 여인상은 대개 '생식과 출산을 상징'한다는, 어떤 지식(또는 관념이나 선입관)에 기대어 보고 있다. 미술 공부를 할 때 이런 태도는 좋지 않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안 보이고, 어떤 때는 못 보게까지 한다. 그래서 위 사례와 같이 엉뚱한 얘기를 할 때가 많다. 미술 공부를 할 때는 자기 눈을 믿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눈으로 보는 만큼, 보이는 만큼 새롭게 알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