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록-<책가도 10폭 병풍>(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2010년 4월 8일에 찍은 것이다.
김현자
이 사진을 찍은 것은 2010년 4월 8일. 책가도란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발견한 순간 나도 모르게 작은 탄성까지 나올 정도로 인상 깊게 와 닿았다. 그동안 보아왔던 병풍들은 풍경을 그린 산수화나 서화, 모란이나 매화, 사군자를 그린 것들이 대부분. 그런데 그와 달리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책장 모습을 그린 병풍이라는 사실이 매우 신선하게 와 닿았다.
"정조는 책가도를 두고 신하들에게 말합니다. '옛날 정자(송나라의 유교 철학자 정명도, 정이천 형제)가 이르기를, 비록 책을 읽을 수 없다 하더라도 책방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 하였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 그림으로 인해 알게 되었다.' 그만큼 정조는 소문난 책벌레였습니다. '새벽닭이 울 때까지 읽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입니다. 24년의 재위 기간에 150여 가지 분야에서 4000여권 이상의 책을 편찬하고 출간했습니다. 그는 그런 책을 그저 바라만 보아도 즐겁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정조가 책가도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규장각일기인 <내각일력>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한 번은 정조가 자비대형화원들의 '녹취재'라는 시험에서 자유로이 그림을 그리게 합니다. 자유 주제였으나 대부분은 왕의 취향에 따라 책가도를 그립니다. 그런데 그중 책가도를 그리지 않은 화원이 있었습니다. 정조는 '화원 신한평과 이종현 등은 각자 원하는 것을 그려 내라는 명이 있으면 마땅히 책거리를 그려내야 하는 것이거늘, 다른 그림을 그려 실로 해괴하니 먼 곳으로 귀양 보내라' 명합니다. 자신이 '자유로이' 그리라고 명해놓고 말입니다." - 79~80쪽
경복궁 등 궁궐에 가면 왕이 앉았던 의자인 어좌 뒤에 어느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같은 그림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해와, 달과, 다섯 개의 산봉우리, 그리고 출렁이는 파도를 그린 '일월오봉도'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내전에서는 물론, 야외 행사 때에도 왕이 앉는 자리 배경으로 걸렸고, 의궤처럼 공식적인 행사를 그리는 그림에선 왕 대신 그려지기도 했다. 즉, 왕을 대신하기도 하고, 왕의 권위나 힘을 상징하는 그림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400년 동안 이어져오던 일월오봉도 전통을 과감하게 깨버린 왕이 있었다. 정조였다. 정조는 당시 궁중화원이었던 김홍도 등에게 책을 꽂은 서가의 모습을 그려 일월오봉도를 대신하게 한다.
이것이 책을 주제로 그린 책가도라는, 우리나라에서 생겨나 발달한 독특한 장르의 그림이 생겨난 배경이라고 한다. '책거리'는 책가도의 다른 명칭이자, 책을 책장에 꽂은 그림이 아니어도 책을 주제로 그린 모든 그림을 통칭하는 용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