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췌한 모습을 대신해 줄 구원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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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췌한 자신을 대신할 아름다운 것들은 세상에 많고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태희 사진 말고 아이 사진을 쓰는 이유는 깊숙한 마음의 영역에 있다. 도대체 왜 우리는 핑크퐁 케이크를 보며 환호하는 네 살 배기의 모습을 떡하니 걸어놓는 걸까. 우리집 뿐만 아니라 영유아 부모 카톡 프로필에서 그 집 아이 최근 성장 정도를 알 수 있는 바로 그 이유는 뭘까.
EBS 다큐프라임 '마더쇼크' 팀은 모성애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여러 실험을 한다. 뇌측전전두엽 중 자기 자신을 생각할 때 활성화되는 부분을 관찰하는데, 놀랍게도 자녀를 생각할 때도 똑같은 부위가 활성화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엄마는 자녀와 자기 자신을 동일하게 여겼던 것이다. 엄마의 뇌는, '내가 아이고, 아이가 바로 나'라고 외친다.
호모 사피엔스가 자손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한 '동일시' 전략이 카톡 프로필까지 온 건 아닐까? 김태희는 아름답지만 동일시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눈도 못 뜬 갓난쟁이가 배냇짓 하는 사진은 본능에 가깝게 엄마 카톡 프로필로 낙점된다.
출산 전후 달라진 모습, 그리고 자녀 동일시.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훑다보면, 친구의 실물보다 아이 사진을 더 많이 볼 수 있는 까닭인 것이다.
아이의 독립, 부모의 짝사랑을 알리는 서막아이가 자라면서 슬슬 다른 고민이 생겼다. 아기들은 만 1세가 지나야 자아를 형성한다. 재밌는 건 태어난 지 1년이 안 되었을 무렵에는 아기도 엄마를 동일시한다. 그 전까지는 엄마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 한다. 물리적 탯줄은 출산할 때 떨어졌지만, 심리적 탯줄은 자아 형성 전까지 이어진다. 엄마가 슬프면 아기도 슬프고, 엄마가 행복하면 그게 아기의 기분이 된다.
안타깝게도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동일시하는 양방향 사랑은 길게 가지 못 했다. 큰 아이가 자라면서 자아를 뚜렷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엄마와 분리되는 신호였다. 18개월 즈음 "아니", "싫어"를 재미 삼아 말하더니, 두 돌을 넘기자 개성이 강해졌다.
촉촉한 밀가루 음식을 고집하고, 핑크퐁과 뽀로로가 아니면 그 누구도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게 됐다. 화사한 공주 원피스를 입히면 싫다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건 아이가 원할 때만 카메라를 들 수 있게 되었다.
"엄마, 사진 찍지마!"이불로 드레스를 만들어 입길래 귀여워 카메라를 들었더니, 단칼에 거부했다. 한참 재밌게 노는데 찬물을 끼얹는다 여기는 모양이었다.
엄마의 뇌는 '내 딸이 바로 나'라며 여전히 동일시하지만, 딸은 엄마와 자신을 분리할 수 있을만큼 자랐다. 영원한 짝사랑의 서막이었다.
반면 아이가 큰만큼, 엄마도 여유가 생겼다. 육아에만 전념하다가,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갖게 됐다. '24개월 아기 반찬'을 검색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대신 좋아하는 책을 들었다. 아이 여름 옷을 고민하던 시간을 줄이고, 간만에 부부의 옷을 마련했다. 딸도 자아를 찾고, 엄마도 자아를 되찾았다.
모녀가 차츰 독립하면서 카톡 프로필도 조금씩 달라졌다. 남편과 둘이 찍은 사진, 선물 받은 홍삼, 애정하는 책을 들고 바다 배경으로 찍은 독사진, 그리고 큰 딸의 뒷모습(아이의 정면 사진을 올리려니 조금 망설이게 됐다). 엄마에게서 차츰 독립해가는 아이 사진을 쓴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 딸이 곧 내가 아님을 의식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