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책표지.
더숲
시리아는 8년째 내전 중이다. 2017년 현재, 내전으로 최소 35만 명 이상이 죽고, 1천만 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더숲 펴냄)은 이와 같은 시리아 내전이 배경인 감동 실화다.
책의 직접적 배경인 다라야(다라. 책의 시점 기준 아래 다라야로)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에 위치한 도시로 내전 피해가 매우 심각한 곳이다. 시리아·러시아 동맹군(아래 시리아 정부군 혹은 정부군)이 한 달에 600여 차례나 폭격할 정도로 폭격이 잦았기 때문이다.
시점은 2015년 10월 15일부터 1년 정도. 다라야의 건물 90%가 사라져 사람들은 폭격 당한 건물 지하나 잔해 속에 웅크려 살고 있다. 정부군이 다라야를 이처럼 집중 폭격, 학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내전 초기에 아사드 정권의 눈엣가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0년 12월에 튀니지에서 대규모 민주화운동이 일어난다. 이는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등 아랍세계로 번진다. 이것이 비폭력시위인 '아랍의 봄', 이로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의 장기 독재자들이 하야하거나 내전에 휩싸이게 된다.
2011년. 다라야의 청소년 몇 명이 자신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 벽에 현재 집권중인 '바샤르 알 아사드(1965~)'를 겨냥한 듯한 표현의 낙서를 한다. 그로 아이들이 체포되어 심한 고문을 받는다. 부모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 거리 시위로 번진다. 이를 아사드 정권이 필요 이상으로 강경진압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내전으로 확대된다.
그 무렵 다라야는 25만 명이 살던 도시였다고 한다. 정부군의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난민으로 떠나거나 한다. 와중에 떠나지도, 죽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이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지키고자, 그리고 정부군의 무차별 집중 폭격과 아사드의 독재로 영영 사라질 위험에 처한 다라야를 지키고자 일부의 젊은이들(반군)이 남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시점(2015년 10월) 다라야에는 반군으로 알려진 약간의 젊은이들을 포함한 1만 2천여 명이 존재한다. 그런데 다라야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람들을 가둬 놓은 커다란 감옥, 그 자체였다. 유엔의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마저 거부한 시리아 정부군이 외부로부터의 식량이나 의약품 등의 지원을 차단하고자 다라야를 봉쇄해 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라야의 들판마저 모두 폭격, 황폐해지고 말았다. 이렇게 해놓고 정부군은 무차별 폭격을 되풀이한다. 폭격은 민간인과 반군을 구별하지 않았다. 인적이 보였는가 싶게 드럼 폭탄을 헬리콥터에 싣고 나타나 폭격하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3년 동안 다라야란 커다란 감옥에 갇혀 폭격과 식량고갈로 언제 굶어 죽을지 모르는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견딘다.
전쟁 한복판에서 책이라니, 그에게는 의아하게 들렸다. 사람 목숨도 구해내지 못하는 마당에 책을 찾아내는 것이 무슨 소용이람? 아흐마드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에게 책이란 거짓과 선전으로 물들기 쉬운 것이었다. 그에게 책이란 책가방 속에서 자신을 비웃는 아사드의 초상화 혹은 그의 기린처럼 긴 목 같은 것이었다. (…)아흐마드는 첫 번째 페이지를 넘겨, 서툰 외국어 실력이지만, 몇 가지 익숙한 단어들을 읽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책의 주제가 아니었다. 아흐마드의 몸이 떨려왔다. 그의 가슴속 모든 것이 요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식의 문이 열리는 전율이었다. 익숙한 대치상황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 나라의 자료를 조금이라도 지켜내는 것. 그는 미지의 세계로 도망치듯, 책 속으로 빠져 들었다. 아흐마드는 천천히 책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온몸이 떨려 왔다.
"내가 처음 시위에 나섰을 때와 같은 해방의 전율이었어요." - 23~24쪽
이처럼 절박한 상황에 다라야의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처한 어려움을 책으로 이겨내자고 입을 모은다. '책만이 사람들을 폭격의 공포와 불안, 배고픔의 고통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 책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는 절박한 이유와 확신으로였다.
폭격의 위험을 피해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책들을 발굴해나간다. 모여진 책들은 1만 5천여 권. 다라야의 비밀 도서관은 이렇게 설립된다. 낮에는 총을 들고 싸워야 하는 이들은 밤이면, 그리고 틈날 때마다 책을 읽는다. 다라야의 일반인들도 책을 읽는다. 사람들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아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2015년 10월 15일, 이와 같은 다라야의 비밀 도서관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이 시리아 젊은 사진작가들이 운영하는 한 SNS 공간에 올라온다. 이를 한 기자가 눈여겨보게 된다. 지난 20여 년간 이슬람지역을 다니며 중동 각국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취재, 기사로 알려온 프랑스의 분쟁지역 전문기자인 저자 델핀 미누이였다.
그리고 그는 시리아 가까이로 간다. 사진 속 도서관 공동설립자 중 한사람인 아흐마드(23세)와 스카이프(인터넷 통신 수단 중 하나)로 연락이 닿게 된 저자는 이후 아흐마드를 비롯한 또 다른 공동 설립자인 아부, 하삼, 샤디, 오마르 등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저자가 도서관, 즉 다라야에 있는 그들과 소식을 주고받은 것은 1년 남짓. 전쟁 지역이다보니 인터넷은 수시로 끊기고 다시 이어지고가 반복된다. 어느 날은 인터뷰 중에 정부군의 폭격 소리가 배경음처럼 들려오기도 한다. 인터뷰를 하던 사람이 폭격에 갑자기 사라지는 순간 인터넷이 끊기는 것을 시작으로 며칠 동안 연락이 두절되기도 한다.
와중에 인터뷰를 했던 젊은이가 다치거나, 죽기도 한다. 그리하여 책의 시작 1만 2천의 다라야 사람들은 1만 명으로 줄고, 8천명, 7500명 정도로 줄게 된다. 내전 초기에 다라야를 떠나지 못한 민간인들도 시리아 정부군에 의해 세계인들에게 반군으로 호도, 무차별 폭격으로 죽은 것이다.
나는 그를 괴롭힌 고통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아부는 새로운 열정의 대상이 된 책에 대해 이야기할 뿐 자신의 건강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그는 책이 주는 유익함을 믿었다. 몸의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고 해도, 마음의 상처를 달랠 권리는 있는 것이다. 책을 읽는 단순한 행위가 아부에게는 엄청난 위로였다. 그것은 도서관을 세우면서 알게 된 감정이었다. 그는 한가로이 책장을 넘기는 것이 좋았다. 끊임없이 책장을 넘기며 훑어보는 것. 마침표와 쉼표 사이에 몰입하여 길을 잃는 것. 미지의 대륙을 탐험하는 것.
"…책을 읽은 것이 제가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부정적인 생각은 몰아내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특히 필요한 거죠. 대부분 독자가 저와 같아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특별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죠. 하지만 지금 다라야의 젊은이들은 무엇이든 배워야 해요.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다름없죠. 도서관에 있으면 사람들이 만주주의에 관한 책을 자주 물어봅니다." - 36~37쪽
아흐마드처럼 공학도인 23살의 청년 아부는 정부군의 폭격으로 신경계가 손상되고 말았다. 내전으로 소중한 것을 잃은 것이다. 아흐마드나 다른 젊은이들처럼 지난날 책을 거의 읽지 않았던 그는 이제 책에 희망을 걸고 있다. 다라야의 평화와 미래를 위해서라도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그래야만 독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전쟁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책을 읽을 수 있어 보다 행복한 현재와, 책과 함께 하고 싶은 꿈들을 들려주는 다라야 비밀 도서관 사람들. 그런 그들에게선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에게서 보여 지는 설렘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책의 가치를,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를 이들처럼 절박하고 진솔하게 말할 수 있을까?
책은 이와 같은 내용들을 30개의 소제목으로 들려준다. 인터뷰 목소리를 전하는 한편 다라야의 젊은이들이 인터뷰로 끝나지 않고 틈틈이 메일과 사진으로 들려준 다라야의 여러 상황들을, 그들과 연락을 주고받은 1년 동안 일어났던 일들과, 시리아 내전에 대해 중동 지역 분쟁전문기자의 시각과 이해로 들려준다.
다라야의 요즘은 어떨까. 검색해보니 7월 7일 현재, 시리아 정부군이 다라를 장악. 남아있던 반군과 그의 가족들을 포함한 6천 명이 정부군에 항복, 다른 곳으로 이주하기로 했다는 보도들이 보인다. 정부군이 협정을 파기하고 지난날 6월 19일부터 다라에 폭격을 시작한 그 결과라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독재가 승리한 것이다. 아쉽고 안타깝다.
지난 몇 년, 시리아 내전 관련 소식을 접할 때면 생각이 복잡하게 엉키곤 했다. 책 덕분에 보다 선명하게 이해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시리아 내전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전 피해자 당사자가 처한 현실과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는, 쉽게 나올 수 없는 그런 책이라 더욱 귀하게 느껴지는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이다.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 - 시리아 내전에서 총 대신 책을 들었던 젊은 저항자들의 감동 실화
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더숲,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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