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난민수용에 비추어 본 우리의 자화상

[주장] 가짜난민은 없다

등록 2018.07.08 11:15수정 2018.07.08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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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백만이 넘는 난민이 독일에오다
2015년 백만이 넘는 난민이 독일에오다홍주민

지난 6월 29일, 정부에서 예멘 난민을 위한 대책을 발표한다 하여 내심 기다렸는데, 법무부의 대책이 '엄정, 정확, 신속한 심사를 한다'는 것 외에 없었다. 더욱이 이번에 입국한 예멘인들에 대해 의혹의 시선을 던지며 난민을 돕는 시민들이 '지나치게 온정주의적으로 접근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국가나 지자체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그런 요청을 해도 문제인데, 전혀 자신들은 대책 마련은 없으면서 시민들을 훈계한다. 더욱이 난민들의 입국 자체를 차단하려는 시도는 난민법이 난민을 보호하기 위한 법임에도 감시와 통제하기 위한 법인지 의심케 한다. 도대체 국가가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희한하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다.

3년 전, 독일에선 120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인 바 있다. 당시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들은 90만여 명이다(2017년에는 18만5천 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음). 이번에 제주에 예멘 난민이 500여 명 들어온 것에 대해 나라전체가 난리법석을 떠는 데에 실소를 금할 수밖에 없다(2.4%의 난민인정율을 추산하면 3명 정도 난민으로 인정 받음).

 이주민분과 공무원이 방문하여 인터뷰하다
이주민분과 공무원이 방문하여 인터뷰하다홍주민

3년 전, 나는 이주민 관련 관계 공무원 7명과 유럽다문화도시 벤치마킹이라는 주제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체코를 방문한 바 있다. 코디를 맡은 나는 각 기관을 연결하고 통역을 맡아 주관한 바 있다. 당시 아주 생소하고 충격적인 일정은 당연히 독일 난민수용소 방문이었다. 당시 독일은 나라 전체가 갑작스러운 난민의 물결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에 대한 점검은 오늘 우리의 당면한 예멘난민 사태를 맞아 여러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우선 내가 방문한 하이델베르크 난민 수용소는 1952~2013년까지 미군기지로 사용되다가 현재 난민수용소로 사용되고 있고, 하이델베르크시의 사회국과 개신교 사회실천재단인 '디아코니아'와 가톨릭 사회실천재단인 '카리타스' 그리고 적십자가 공동 운영하고 있었다.

당일 수용소 정문에서 만난 수용소 소장 마르틴 헤쓰는 나와 하이델베르크대학 디아코니아학 연구소에서 디아코니아학(개신교사회실천학) 디플롬과정 동기생이었다(그는 현재 하이델베르크 디아코니아 대표이다). 16년 만에 만난 우리는 부둥켜안고 기쁜 해후를 했다.

 구 미군부대 건물을 난민수용소로 사용하다
구 미군부대 건물을 난민수용소로 사용하다홍주민

나는 당시 상세하게 소장인 친구를 통해 난민 관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래에 그 내용을 서술해본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난민 서류를 신청 및 접수하고, 임시 보호 등 지원을 하는 곳이란다. 아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Q. 수용소 내 시설은 어떤 것이 있고 난민수나 직원수는 얼마나 되는가?
직원 사무실, 난민거주 숙소, 경찰서 1개, 치과병원 1개 등이 있으며 난민 서류접수는 치과병원에서 병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 미군부대를 지난 겨울기간에만 난민 1,000여명의 임시숙소로 사용할 계획이었는데 불과 몇 개월 만에 갑자기 2,900명으로 증가하였다. 현재 근무하는 인력은 카리타스, 디아코니아 실무자 9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이델베르크에서 제일 먼저 난민을 수용하는 난민수용소이다. 모든 난민은 모든 권리와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특별한 상황에 있는 사람은 우선적으로 도움을 지원한다.


Q. 난민 구성은 어떻게 되는가?
정부에서 정확한 난민 리스트는 주지 않고 있으며 단지 필요한 서비스와 지원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어려우나 난민 중 50%이상이 싱글 성인남성이고, 그 밖에 임신한 여성과 16세 전후의 청소년이 많은 상황이다. 시리아에서 온 난민이 제일 많고 발칸반도 코소보와 보스니아 등에서도 많이 오고 있다. 가족들이 전부 오는 경우도 있으며 현재 모두 보호받고 있는 상태이다. 그밖에 아프간, 이란, 파키스탄,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에서 전쟁과 분쟁을 피해서 온 난민들이 심사를 기다리는 첫 관문이다.

Q. 난민이 발생한 원인은 대체로 무엇인가?
난민의 1/3은 전쟁이 원인이며, 또 1/3은 발칸반도에서 종교적 이유 등 개개인의 사정 때문이며, 나머지 1/3은 경제적 요인 때문으로 발생한다. 그중 발칸지역 저소득계층은 난민으로 받지 않는다. 그밖에 차별이나 배제를 피해서도 오는 경우도 있다.


Q. 개개인의 사정으로 난민이 되는 경우 검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시리아, 코소보, 알바니아 등 개개인의 성향과 좋은 기질, 나쁜 기질 등 다양하나 처음 3개월간 같이 있으면서 난민의 원인과 관련된 그 분야의 특수한 전문가들이 인터뷰해서 나라에서 난민을 결정하고 세분화 하고 있다.

Q. 의사소통은 보통 어떻게 하는가?
영어나 독일어가 되는 난민들도 있으며 자원봉사자가 통역을 하면서 생활을 돕고 있다. 의사소통이 예상외로 잘 되고 있어 놀랐다.

Q. 난민들의 건강상태는 어떻게 돌봐주는가?
긴급 상황의 경우나 통증이 심한 사람을 먼저 치료해 주며 만성질환은 15개월 후 난민인정 받은 후에 건강보험으로 치료처리 가능하다.

Q. 난민 신청은 어떻게 하는가?
일단 국경을 넘어 독일 땅으로 들어와서 스스로 신청해야 한다.

Q. 일은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처음 3개월은 일할 수 없고, 3~15개월 기간동안 외국인출입국사무소에 신청이 가능하다.(독일, 유렵연합 실업자에게 먼저 배정되고 난 후에 기회가 옴). 15개월 이후에는 보통사람과 같이 직업 신청 및 직업상담이 가능하다. 일자리 자체가 큰 이슈이며 서류절차가 검토되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시간당 1.5유로 일자리를 준다. 청소나 빨래 기타 난민촌의 잡일을 하는데 지원자가 너무 많은 상태라 경쟁이 심하다. 자유시간은 자원봉사자들이 활동(스케이트보드장 개설, 어린이집 운영, 운동시설 활용)을 돕고 있으며 현재 전담인력이 7명인데 턱없이 부족해서 10명을 더 뽑을 계획이고 내년에 15명 추가로 채용된다. 난민 100명당 1명을 담당하는 것으로 비율을 잡으려고 한다.

3년 전의 기억을 되살리며 오늘 우리에게 닥친 난민문제에 대하여 몇 가지 정리해본다. 우선 독일에 처음 들어온 난민은 3개월간은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어떻게 생활을 하는가? 국가가 개입하고 민관협력기관인 개신교의 디아코니아와 가톨릭의 카리타스와 적십자가 실질적 일을 감당한다. 그리고 국가가 개입하여 난민들의 건강검진을 하고 양식과 숙박문제를 해결해 준다. 일단 3개월 내지 6개월간 심사가 마치면 그룹별로 도시안에 거주지를 잡아 이동한다. 거기에서 독일 사회에 통합을 위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자리를 갖고 사회에 통합된다.

우리는 어떠한가? 예멘 난민이 몰려오니 제주도에서만 머물라는 출도금지 명령이 내려지고, 예멘 사람들은 향후 입국자체를 금지하기로 했다. 숙소도 일정한 장소가 없이 호텔, 게스트하우스, 공원 등 심지어 노숙하는 사례까지 벌어진다. 하여 시민사회가 긴급 예멘 난민도움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 쉼터를 마련해 난민들을 수용하고 있다. 그리고 생활할 수 있는 비용을 정부가 부담할 수 없으니 예멘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노동 현장으로 나간다. 이것도 정부의 배려라면 배려일 수 있다. 본래 법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할 수 있게 제한을 없앤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독일의 경험에 비춰 갑작스런 난민신세의 예멘인들을 노동시장에 편입시키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 자문해 볼 수 밖에 없다.

난민으로 온 사람들은 자국에서의 전쟁과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심한 이들이다. 하여 이들에게는 한국사회에 적응하고 안정을 취할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나 지자체가 이러한 위기상황에서 긴급예산을 투여하여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보장하여야 온당하지 않을까. 유감스럽게도 어제 제주시가 운영하는 수영장에 예멘인들을 몇 명씩 입장해서 샤워실에서 샤워만을 하려 했는데, 거부당했다. 이것은 엄밀하게 말해 예멘인을 차별한 행위라 할 수 있다.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쪽박을 깨서는 안되지 않은가.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독일의 경우, 난민이 들어왔을 때 민관협력기관들이 깊이 개입함으로 시민사회와의 연계속에 자원봉사나 명예직등 시민사회의 자발성과 헌신성을 오히려 국가에서 유도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전술한 바, 시민들의 지나친 온정주의에 의한 도움을 자제해 달란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일탈한 일부 개신교에 속한 이들은 이슬람 혐오주의에 기반한 배제와 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는 정부의 미온적 태도와 애매한 입장의 결과라 생각한다. 특히 그러한 기류에 편승하여 거짓뉴스와 정보를 통해 예멘인들에 대한 인종주의와 종교편향적인 이데올로기를 아무런 여과없이 대중들에게 노출시킴으로 연대와 공감이 아닌 혐오와 배제의 문화를 조장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신자유주의가 진행될수록 초국적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고 그에 따른 경제적 이익에 대한 탐욕과 불의로 인해 여러 분쟁이 세계도처에 범람하고 있다. 세계를 떠돌고 있는 6500만 명의 난민은 이러한 원인제공과 맞물려있다. 때로는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유로 분쟁이 일어나고 폭력과 내전으로 비화된다. 현재 제주에 입국한 예멘인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의 지원을 받는 사우디아라미아와 아랍 다국적 군사진영과 이란의 지원 아래 예멘은 자기 땅에서 대리전 성격으로 진행되다가 2015년 분쟁의 비등점을 지나면서 폭발한 것이다. 지금 예멘의 국가 기능은 완전히 상실되고 기본적인 삶의 자원은 고갈되어 아비규환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젊은 남성들은 반군이나 정부군의 징집에 의해 전장으로 나가 죽음의 사선을 넘는다. 오늘 이 땅에 난민으로 온 예멘인들은 바로 이러한 사선을 넘고 구사일생으로 아시아의 끝인 한국에 온 사람들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차제에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국인들의 난민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이다. 가짜난민은 없다! 안경은 어떤 색깔을 쓰느냐에 따라 전체가 달리 보인다. 난민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로 처음부터 규정하고 보면, 모든 난민신청자들이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세계시민의 눈으로 동등한 하나의 사람으로 극심한 고난의 현실에서 산 넘고 물 건너 사력을 다해 탈출한 그들의 심경을 자비의 마음으로 다가가면 달리 보인다. 필자는 여러 물질적 후원보다도 더 선행되어야 할 것이 이 공감의 마음과 그들과 소통할 의지 그리고 소통의 능력을 갖는 일이라 생각한다.

지난 3년 전, 120만의 난민을 맞아들인 독일 총리 메르켈은 지난 주 난민문제로 연정파기를 주장하며 난민에 대한 엄격한 잣대와 수용을 줄일 것을 요구하는 기사련의 대표 제호프에게 한 말이 있다. "기독사회당이라 당명을 가지고 있는데, 기독교 정신에 바탕을 둔 정당이 맞는가?" 그러자 기사련 대표는 연정파기로 으름장을 넣고 결국은 타협점을 찾으며 일단락이 되었다. 메르켈 총리의 입장은 극우정당의 압박으로 협상은 하였지만, 단호하다: "다시 2015년처럼 난민이 100만 명이 몰려온다 해도, 똑같이 난민을 수용할 것이고, 난민을 돌려보내지 않을 것이다."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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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대 신학대학원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개신교 신학부 박사 한신대 강사 한국연구재단 연구교수 한국디아코니아 대표이사 수원에서 난민사회적 기업으로 YD케밥하우스를 운영하며 난민쉼터와 노숙인 도움행동을 하고있다. 식탁에서 시중을 든다는 의미의 디아코니아를 실천하고 이론화하는 것을 직무로 여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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