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MBC 드라마 <질투>는 편의점이 대변하는 미학적 소비주의가 일반 대중에게 친숙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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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편의점은 도시인의 삶에서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인 24시간 사회 완성에 큰 공헌을 했다. 전구가 개발된 이후 자본은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의 영역을 확장시키며 끊임없이 이윤을 추구했는데 24시간 편의점은 밤 시간대 자본의 축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현재 편의점 가맹 본부가 편의점주들에게 내세우고 있는 야간운영은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편의점으로 대표되고 있는 자본이 굴러갈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인 것이다.
"성공한 자본주의는 새로운 개척지로서 야간 시간에 주목했다. 자본주의 세계 체제 앞에 밤의 세계는 말하자면 마지막 미답 지대였던 것이다. 게다가 컴퓨터를 위시한 당시의 급속한 정보 통신 혁명은 밤의 지배 내지 통치를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로써 밤 시간은 자본 축적의 새로운 원천이 되었다. 요컨대 1990년대는 '항상 깨어 있는 세계' 곧 '24시간 사회'가 도래한 결정적 시점이었다." - 94p
편의점이 만드는 소비형 인간저자는 이와 같은 편의점으로 인한 변화가 과연 옳은 것인지 묻는다. 비록 편의점을 통해 도시에서의 삶은 더욱 편해진 듯하지만 그것이 과연 우리가 원했던 삶인지, 오히려 편의점을 통해 자본이 원하는 삶의 방식을 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편의점 덕분에 편리하게 물건을 산다고 하지만, 오히려 편의점 때문에 물건을 사는 것일 수도 있다. 편의점은 첨단의 포스 시스템을 통해 눈에 띄지 않게 그 사람과 세상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 저장, 분류, 분석하는 '빅브라더'이기 때문이다. 편의점은 우리의 소비패턴을 알고 있는, 우리의 사생활을 일일이 관찰하고 기억하는 권력 장치이다.
""'마실' 가듯 추리닝 바지에 손을 찔러 넣고 슬슬 다녀올 수" 있는 곳이 편의점이다. 요컨대 편의점은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 상식과 문명이 있는 장소, 그리고 가깝고 부담 없는 이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편의점에 자주 들르고, 그곳에서 물건을 사는 일을 즐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 64p
"오늘날 우리는 편의점에 의해 '소비하는 인간'으로 만들어지고 길들여지는 측면이 있다. 필요에 의해서 편의점을 찾는 것이 아니라 편의점에 의해서 필요가 생기는 논리 구조인 것이다." -65p
편의점은 소비를 통해 사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바꾼다. 현재 편의점의 성장은 편의점의 푸드점화 현상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적 약자들이 편의점을 많이 찾기 때문에 이뤄지고 있는데, 이들은 그 뒤에 숨어 있는 경제 양극화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지 못한다. 사회 양극화로 인해 편의점이 성장한다는 인과관계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사회적 약자들이 편의점을 너무 가깝고 편리하게 여김에 따라 사회 구조적인 현실을 자각하거나 성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편의점은 일상적이고 획일화된 소비를 권장함으로써 사람들이 계급적 자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누구나 이용하는 편의점 안에서 누가 불평등을, 사회 혁명을 떠올리겠는가.
"편의점이 지향하는 소비주의 혹은 소비의 심미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상을 소비로 탕진하면서 삶의 의미를 사소한 데서 찾게 만든다. 두말할 나위 없이 일상의 소비화, 그리고 그로 인한 일상의 진부화야말로 "소비 조작의 관료 사회"의 목표이자 특징이기 때문이다." -145p
"'촛불 시위' 때마다 주변 편의점들이 엄청난 특수를 누리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촛불을 든 사람들은 정작 그러한 편의점의 배후가 거대 자본과 자본주의 세계 체제, 혹은 신자유주의라는 사실을 미처 상기하지 못한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분노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과 그런 세상을 치밀하게 지배하는 자들의 기막힌 공생 혹은 태연한 공전의 현장, 바로 그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편의점의 현주소이다." - 15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