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단체 “개 도살 금지하라”동물해방물결, 동물을 위한 마지막 희망, 개식용종식시민연대 등 시민들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개 식용 문제의 법적 모순을 방기해 온 정부를 규탄하며 보신문화에 희생된 개를 추모하는 장례식을 진행했다.
유성호
매년 복날 즈음이면 개 식용을 두고 찬반 논란이 팽팽하다. 이 중 개 식용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찬성론의 근거로 '개가 소·돼지·닭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옳은 주장이다.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개와 더불어 소·돼지·닭은 모두 평등하다.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까지만 해도, 아동·유색인종·여성을 비롯한 약자의 권리는 공공연하게 무시됐다. '만인이 평등하다'는 생각이 보편화되기 전까지 아동·유색인·여성에 대한 차별과 착취는 전세계에 만연했다.
그러나 평등에 대한 개념과 함께, 인류는 (느리게나마) 강자와 약자의 경계를 허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약자'의 범위는 인간을 넘어 동물에까지 확대되고 있다. 적어도 고통을 느낀다는 점에서 동물은 인간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수준은 그 나라의 동물이 어떻게 대우받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간디 선생의 말은 이에 기초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개 식용 반대 운동은 '개만' 보호하자는 운동이 아니다. 동물보호단체들이 채식 캠페인을 전개하고, 소·돼지·닭을 비롯한 농장동물 복지 개선을 위해 노력하며, 개농장 사업자들의 전업을 돕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개 식용 반대 운동은 모든 동물의 고통을 줄여나가는 운동이다. 페타(PETA)를 비롯한 동물보호단체들이 동물을 해치지 않고 얻은 고기인 '배양육'의 상용화에 투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개 식용 반대 운동은 고통을 느끼는 모든 존재에 대한 대우를 '상향 평준화'하자는 생명존중에 기초하고 있다.
개 식용 합법화,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도움 안 돼(개 식용업자가 아님에도) 개 식용 합법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대다수가 "나는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개를 먹지 않음에도 개 식용 합법화를 지지하는 이유는, 개 식용 합법화가 농장 개들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위생적인 개고기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먹는 사람들을 위해 합법화시키면 모두에게 낫지 않겠냐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결코 그들이 악의적으로 합법화를 주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합법화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님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개 식용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자신이 먹지도 않는 동물에 관한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거나 관련 정보를 찾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소·돼지·닭이 안락한 삶과 고통없는 죽음을 통해 식탁에 오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따라서 개를 그들과 마찬가지로 합법적인 가축으로 관리하면 개들의 복지가 향상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오늘날 소·돼지·닭이 어떻게 사육·도살되는지 검색해볼 것을 권한다. 유튜브에서 '공장식 축산' 또는 '농장동물의 고통'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지금까지 몰랐던 충격적인 사실들이 펼쳐질 것이다.
개 식용 합법화가 위생적인 개고기를 공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기존의 '합법적인' 농장의 현실을 직시하라고 말하고 싶다. 매년 농장을 휩쓰는 구제역·AI 등의 농장 전염병, 살처분, 살충제 계란 파동 등 기존의 농장들에도 산적한 문제들이 많다. 개 식용 합법화는 소·돼지·닭에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한 상황에 개 식용이라는 문제를 보태자는 주장과 다름없다.
게다가 어떤 동물의 식용을 합법화한다는 것은 해당 동물의 집단사육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개는 수많은 동물 중에서도 특히 집단 사육이 어려운 동물이다. 집단사육의 스트레스로 인한 카니발리즘(cannibalism)은 이미 소·돼지·닭에서도 만연하며 농장동물의 복지를 훼손하고 있다.
그런데, 개들은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공격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같은 사육장에서 키워지는 개들 중 서열이 낮은 개들은 다른 개들에게 잔혹하게 물어뜯기는 고통을 당한다. 게다가 개농장에는 개들의 짖음으로 인한 소음 문제도 있다. 개 식용이 합법화되면 개들의 고막을 뚫고 성대수술을 시키는 행위도 합법화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이것이 과연 개들의 복지를 향상시켜줄까?
지난 11일 국회에서 열린 '개 식용 종식 국회토론회'에서 동물행동 전문가 이혜원 박사는 개 식용 농장이 개의 운동량·사회적 행동 등 기본적인 행동학적 습성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개의 복지향상을 위해 농장의 환경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농장의 개들을 사람들 곁에서 살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인위적인 교배를 통해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동물이 된 개의 사회적인 행동을 충족시켜주려면, 사람 곁에서 함께 밥을 먹고, 공동 놀이도 하고, 산책도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농장의 개들 하나하나에게 그런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더불어, 한국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개 식용 농장이 존재하는 국가이다(개 식용이 잔존하는 여타 아시아 국가에서는 개고기 공급이 집단 사육이 아닌, 개들의 납치·절도 등을 통해 이뤄진다고 한다). 따라서 식용을 목적으로 한 개의 집단사육에 대한 연구는 전세계를 통틀어 이뤄진 유례가 없다. 개 식용 합법화를 통해 개의 복지를 향상시키자는 주장은 그러한 연구를 한국에서 최초로 시행하자는 주장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개 식용이라는 사양산업을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것이야말로 소모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에너지와 비용을 소·돼지·닭의 복지 향상과 채식제품 개발에 투자하는 것이 보다 지속가능한 선택이 아닐까? 결국 개 식용 합법화는 지금보다 더 많은 짐을 짊어지자는 발상이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개 식용 합법화를 시작으로 식용동물을 늘려나가기 시작하면, 우리는 (개들과 평등한 동물인) 소·돼지·닭을 먹거나 그들을 살처분하는 관행에 대해서 지금보다 더더욱 마음의 불편을 느낄 필요가 없게 된다. 일명 '반려동물'이라는 개도 먹는데, 소·돼지·닭이라고 못먹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개식용 합법화가 이뤄지면, (소위 '나비탕'이라는 명목으로 음성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고양이 식용의 합법화가 그다음 수순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결국 동물 희생이 보편화되고, 동물 보호는 퇴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개 식용 반대 운동은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운동우리는 기아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보며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들의 고통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푼돈이라도 기부해서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렇게 인간에 대해서는 '상향 평준화'를 추구하면서도, 동물의 고통에 대해서는 '모든 동물이 평등하게 고통 받아야 한다'는 '하향 평준화'를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물론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인간의 소비재로 전락해버린 동물의 고통을 줄여나가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동물을 소비해왔던 우리의 습관을 바꾸는 실천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8년 7월 6일 <경향신문>의 인터뷰 기사(
"인간의 '추억'이 동물에겐 '죽음'...동물을 함부로 다루는 사회는 인간도 함부로 다룹니다")의 한 구절이 유독 인상깊게 다가왔다. "동물권이나 비건(완전 채식주의) 이야기만 나오면 유독 격렬하게 반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기자의 말에, 김산하 박사는 "우리 삶의 모델이 반자연적이고 소모적이니, 사람들도 피로감을 겪고 있을 겁니다. 총체적으로 잘못된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상 없는 분노도 있겠죠"라고 대답했다.
너무나도 공감되는 말이었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과 갑의 횡포 등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우리는 갑의 횡포에 분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의식적으로 갑의 논리를 내면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보다 약한 존재들에 대한 갑질에 무감각해진 것이 아닐까? 복날을 맞이하여, 나 자신부터 '우리 사회의 을들'인 동물들에 대한 차별과 횡포를 당연시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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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식용 '합법화'가 개들을 고통에서 구제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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