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필 전 총리(맨 오른쪽)가 민자당 최고위원이였던 1991년 서울 가락동 정치연수원에서 열린 민자당 창당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모습. 왼쪽부터 박태준 최고위원, 김영삼 대표최고위원, 노태우 대통령, 김종필 최고위원.
연합뉴스
지도자 한 명을 영입해 조직 쇄신을 해서 성공을 거두려면, 전제조건에 유의해야 한다. 외부에서 들어와 당내 기반이 없는 그 한 명한테 힘을 실어줄 강력한 권위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무명의 승려 신돈이 갑자기 나타나 구세력인 권문세족을 숙청할 수 있었던 것은 공민왕이 배후에서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과거시험에 갓 급제한 청년 관료 조광조가 구세력인 훈구파를 상당부분 약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중종 임금이 뒤에서 힘을 실어줬기 때문이다.
아무리 덕망이 있고 학식이 있고 정치 경험이 있다 해도, 외부 출신 지도자 한 사람이 정당을 개조하기란 쉽지 않다. 당내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그 지도자의 말에 순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인물이 그 지도자한테 힘을 실어주지 않는 한 그렇게 되기가 쉽다.
하지만 지금 자유한국당은...지금의 자유한국당에는 외부 출신 지도자에게 힘을 실어줄 강력한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유한국당이 택할 수 있는 대안은, 민정당처럼 외부 지도자 한 사람이 아닌 외부 세력을 통째로 영입하는 것이다. 외부세력이 통째로 들어와 당내 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민정당 사람들이 군말 없이 기득권 일부를 양보하고 당내 쇄신에 어느 정도 호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3당 합당 뒤에 치러진 1992년 제14대 대선에서 민정계는 공천권 상당 부분을 민주계·공화계에 양보했다.
"공천자를 계파별로 보면, 민정계 148명, 민주계 52명, 공화계 57명으로 분류됐으며..." - 1992년 2월 2일자 <경향신문>.
만약 강력한 외부세력이 통째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민정당 사람들이 109개(52+57)가 되는 후보 자리를 쉽게 포기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렇게 민정계가 기득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국민들이 민자당과 그 후신인 신한국당·한나라당을 매몰차게 밀어내지 않았던 것이다. 덕분에 민정계는 인위적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사라져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민정당식 외부수혈을 하기도 쉽지 않다. 민정당은 13대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을 지키고 있었기에, 그 힘을 빌려 통일민주당과 신민주공화당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지금의 자유한국당한테는 그런 힘이 없다. 그래서 외부 지도자나 외부 세력에 의한 충격을 통해서가 아니라, 기존 구성원들 스스로의 각성을 통해서 당내 개혁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게 자유한국당의 처지다.
민정당은 '성공한 쿠데타'의 결과로 정권을 잡았을 뿐 아니라 '성공한 시민혁명'으로부터도 자신들을 지켜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 정도로 생존력 강한 정치 집단은 드물다. 그들에게는 위와 같은 3대 비결이 있었다. 이들과 비교해서 자신들의 생존력은 과연 어떤지, 또 지금의 자구책으로 과연 살아남을 수 있겠는지, 자유한국당은 한번쯤 진지하게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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