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리야와 함께 찾은 마을 회관. 120여명의 아이와 어른이 한국손님을 맞았다. 우리가 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한국사람이었다고 한다.
김혜원
현실이 이렇다보니 자칫 이주노동자들을 도와준다고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오히려 그들을 더 힘들게 할 수도 있었다. 사장님이나 한국 관리자들 눈밖에 나면 한 곳에서 일을 하기 어렵고 그래서 자주 일자리를 옮기면 강제 출국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깊이 개입해 관여하기 보다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해 주는 '친구'가 되어주고 어려울 때 찾아 올 수 있는 '비빌 언덕'이 되어 주기로 했다.
짜리야는 눈치가 빠르고 영리해서 사장님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국어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비닐하우스 노동자들을 모아 센터로 데려오고 한국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당하는 어린 동생들을 도와주었다. 또 급한 도움이 필요한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에게 전했다. 그렇게 우리 센터를 알게 되고 오게 된 친구들이 적지 않아서 짜리야는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계의 마당발로 통하는 재주꾼이다.
인정도 많고 바지런 한 짜리야는 자신이 일하는 비닐하우스 한쪽에 밭을 일구고 거기에 캄보디아 채소를 심어 강원도에도 전라도로 보내기도 했다. 짜리야는 한국으로 일하러 온 고향 동생들을 위해 손수 채소를 길러 보내는 마음 따뜻한 누이이며,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는 화상통화로 글을 가르치는 열혈 엄마였다.
요즘 같은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해가 뜨기 전부터 비닐하우스에 나가야 하고 겨울이 되면 일이 없어 남쪽 지방의 다른 농장에 일당 노동자로 팔려 다녀야 하는 고된 삶이었지만, 웃음을 잃지 않는 그녀의 단단함에 감동했다.
혼자 벌어서 가난을 이겨내긴 쉽지 않을 터, 짜리야가 오고 난 후 1, 2년 남편과 언니도 차례로 한국에 들어왔다. 온 가족이 힘을 합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던 짜리야의 귀국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이리저리 바쁘다 보니 짜리야가 돌아가고 난 몇 주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미안하고 섭섭한 마음에 짜리야 아들에게 줄 옷과 신발 가족들에게 줄 화장품 몇 가지를 챙겼다. 선물을 받고 좋아할 짜리야의 얼굴이 떠올랐다.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도 귀에 들리는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캄보디아에 도착하자마자 짜리야의 연락을 받았다. 한국에서 선생님들이 간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전부터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선생님 잘 도착 하셨지요?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제일 먼저 저희 집으로 오셔야 해요. 엄마와 제가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어요. 한국에서 매주 선생님들이 저희에게 식사를 대접해 주셨으니 저도 선생님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드릴 거예요. 캄보디아 음식이 입에 맞으셨으면 좋겠어요."짜리야는 우리를 자신이 지은 농자재 상점으로 안내했다. 시골 벌판에 100평도 넘어 보이는 상점은 창고처럼 양철과 판넬로 지었지만, 인근에서 가장 크고 현대적인 건물이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여사장이 분명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우리 짜리야랑 사위랑 짜리야 언니까지 잘 대해주시고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많이 드세요. 캄보디아 음식 많이 드시고 가세요. 여기 바나나 잎에 싼 밥하고 대나무에 넣은 밥은 싸가지고 가셔도 되요. 이건 날씨가 더워도 상하지 않아요. 들고 다니면서 배고플 때 드세요."딱 우리네 엄마 같은 짜리야 엄마가 한도 끝도 없이 음식을 권한다. 한국에서 당신의 딸들과 사위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이라니 음식으로라도 고마움을 표하고 싶은 것이다.
"한국에서 번 돈으로 이걸 지었어요. 재래식 집도 신식 집으로 바꾸고 남편이랑 언니가 돈을 벌어서 보내면 더 크고 좋게 만들려고 해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돈이 많이 벌리지는 않지만 열심히 하면 잘 살게 될 것 같아요. 한국에서 돈 벌지 않았으면 이런 가게는 꿈도 꾸지 못했을 거예요. 한국, 한국 사람 다 고마워요. 남편이랑 언니도 한국에서 돈 벌고 있으니까 이제 우리 잘 살 거예요. 저도 선생님들처럼 가난한 아이들 가난한 노인들 도와주고 싶어요."착하고 기특한 짜리야. 힘들고 어려운 이주노동자의 시간들을 억척스럽게 이겨 낸 나의 캄보디아 동생. 짜리야의 꿈이 이루어지길 그래서 더 많은 캄보디아 아이들이, 노인들이 그녀로 인해 행복해지길 그녀와 함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