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푸드트럭> 화면 갈무리
SBS
두 번째 메뉴에 도전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한국인의 밥상>에서 발견한 비장의 카드였다. 평소 자연주의적인 음식을 추구하는 나의 이념과도 맞아떨어지는 음식이었다. 먼저 작은 옹기에 잎 마늘을 깐다. 우리가 고기 구워 먹을 때 흔히 먹는 알 마늘이 아닌 잎 마늘이다. 그리고 삼겹살이건 목살이건 돼지고기를 성인남자의 엄지손가락 크기로 자른 후, 묵은지로 감싸준다. 묵은지 옷을 입은 돼지고기를 잎 마늘 위에 올린 후, 물이 담긴 큰 냄비에 옹기를 넣고 중탕으로 끓인다.
집에서 주말에 시식을 해봤는데, 아내가 엄지를 내밀었다. 그리고는 이내 그 엄지를 꺾어 내렸다.
"여보. 자기가 요리에 관심 많은 거 알아. 주말마다 해주는 음식도 맛있어. 그런데, 자취 요리의 연장선일 뿐이야."
"나 진짜 자신 있어! 자신 있다고! 왜 시작도 하기 전에 초를 쳐!"그렇게 주말의 평화는 또다시 날아갔다. 스스로도 식당은 무리라는 생각을 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 업무 외에 돈을 벌 방법이 지금 현재로서는 전무하다는 사실을. 어쩌면 두려웠던 건지도 모른다.
영어를 잘하게 된 이유지금이라도 새로운 걸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좋을까? 중국어? 오! 노(No)!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영어 하나 하는데도 온 열정을 다 바치고, 몇 년 동안 탈진했던 기억이 스물스물 되살아났다.
1998년 5월. 복학 후 처음 치른 토익 점수를 받아보고 충격에 빠졌다.
"이게 뭐야? 무슨 토익 점수가 신발 사이즈랑 똑같냐."200명이 모인 가운데 열악한 음향 시설로 치른 모의 토익이었지만,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졸업하기까지 2년, 중소기업 취업 후 1년 동안 영어에 매달렸다. 잠을 줄여 가며 학원에 다니고 공부를 했다. 그래도 겨우 700점이었다. 외국인 앞에 가면 입이 안 떨어지는 것 또한 변하지 않았다. 월급 130만 원으로 학원비 내고, 방세 내고, 1년에 800만 원을 모았다. 친구들과의 술자리, 연인과의 데이트 따위는 모르고 살았다.
영어와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는 마음으로 캐나다로 떠났다. 고3처럼 공부했다. 한 잔에 800원 하던 커피도 몇 번을 고심한 후에 마셨다. 그 돈을 아껴서 더 많은 수업을 듣고 싶었다. 부모님 지원으로 간 어학연수였다면 이렇게까지 공부하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