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300km에 가까운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몸도 마음도 더 지칠 거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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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우리 제주도 가자. 지난번에 북한산에서 만난 수현이 알지? 수현이가 3박4일 제주도 자전거 일주 번개한대! 도전해보는 건 어때?"'심신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는 판에 무슨 제주도 자전거 일주야? 오! 노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내는 사슴 같은 눈망울로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갈 거지? 아니면 나 혼자라도 간다."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신청하고 맞이한 첫 주말. 일산 호수공원으로 연습을 하러 갔다. 나는 자전거와 곶감의 고장 상주 출신이라 자전거는 몸의 일부분과 동일시된다며 아내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하루에 80km를 달려본 적은 없었지만.
문제는 아내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워낙 운동신경이 좋긴 하지만, 자전거가 완전히 익숙한 상태는 아니었다. 내가 그녀의 자전거 코치를 자처했고 그녀도 흔쾌히 수락했다.
운전은 가족에게서 배우는 게 아니라고 어느 현인이 말했던가. 나는 아내의 자전거 실력을 두고 잔소리를 늘어놨다. 사실 차가 다니는 도로도 다녀야 하기 때문에 아내가 걱정돼 한 말이지만, 마음과 달리 말이 아름답게(?) 나오질 않았다.
"알았다고! 잘난 척 좀 그만해! 내가 체력은 자기보다 더 좋거든! 몇 번만 더 타면 내가 자기보다 더 잘 탈 거야. 혼자 연습할 테니 내 걱정 하지 말고, 너 혼자 타세요."정말 300km에 가까운 제주도 자전거 일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몸도 마음도 더 지칠 거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이런 자전거로 3일을 버텨야 하다니비행기를 타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고 제주도는 진리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나이 마흔을 넘어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하는 일이다. 비행기 안에서도 걱정이 떠나질 않았다. 다른 일행들은 미리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해 있었고, 우리 부부는 퇴근 후 김포에서 제주로 향한 뒤 게스트하우스에서 합류했다.
이번 여행의 대장 수현이가 각 멤버들을 인사시켜 줬다. 그녀가 가장 연장자인 우리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느껴졌다.
"언니 오빠, 우리는 자전거 서울에서 다 공수 해왔는데, 내일 여기서 빌리기로 하셨죠? 여기에서 빌려주는 자전거가 어떤 건지 궁금하네요."우리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전문가용 개인 자전거를 보유하고 있었다. 서울의 자전거업체에 돈을 주고 맡기면 분해해서 비행기에 실어 보내준다. 다음 날 제주도 지점으로 가면 조립까지 마쳐져 있는 상태인 것이다. 또한 5천 원 정도의 비용이면 A포인트에서 B포인트까지 캐리어 및 각종 짐을 운반해 주는 시스템도 있어서 가벼운 몸으로 자전거 페달에만 집중할 수 있다. 관심이 있는 분들은 도전들 해 보시길!
다음 날 아내와 숙소 앞 자전거 대여점에 도착했을 때, 수현이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 이거 기아가 왜 이리 없어요? 이... 이걸로 3일 동안?"한두 시간 탈 때는 사실 큰 무리 없이 탈 수 있는 자전거였다. 그러나 우리는 하루 8시간 정도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나의 걱정은 오직 자전거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아내였다.
그렇게 출발 2시간 후, 나는 오르막길을 신나게 오르며 뒤따라 오는 아내를 독려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내 허벅지에 묵직한 통증이 오면서 내 위신과 체면이 저 아래 내리막길로 굴러가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그만 허벅지에 강력한 쥐가 찾아왔다. 첫 날, 2시간밖에 안 지났는데... 다른 동생들 보기도 창피했지만 무엇보다 ' 너 뭐니?' 하며 날 바라보는 아내의 어이없어하는 눈빛 레이저가...
캡틴 수현이와 상의 끝에 그녀는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고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와 아내를 최강약골 지윤이 그리고 제주도 자전거 일주 경험이 있는 명준이가 책임지기로 했다.
왜 고생을 사서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