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주 이민사회의 어머니교회인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 (1938년)는 대한인민국회 기념관을 마주하고 있다.
이윤옥
대한인국민회는 1909년 2월 1일, 조국 광복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했다. 그 뒤 1910년 5월 10일 대동보국회가 참가하여 대한인국민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중앙총회는 북미지방 총회와 하와이 지방 총회, 원동지방 총회를 두었는데 미국, 멕시코, 쿠바, 중국, 러시아 등 모두 116개 지회에 회원이 많을 때는 850명까지 있었다.
대한인국민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도산 안창호 선생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1908년 장인환과 전명운이 친일파 미국인인 스티븐스를 저격했던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한인단체가 통합되어 설립한 대한인국민회에서 중앙총회 회장을 맡아 활약했다. 미주지역의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독립운동관련 기관과 단체를 보면, 대한인국민회 127명, 흥사단 39명, 동지회 17명, 비행사양성 11명, OSS, NAPKO 10명, 재미한족연합위원회 7명, 박용만군사학교 6명, 대한여자애국단 6명, 상해임시정부참여 5명 등으로 대한인국민회가 127명으로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한인국민회는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는데 독립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에 보내는 일을 주로 맡았으며 한글과 영문판 <신한민보> 발간, 태극기 제작 배포, 맹호군단을 남가주와 북가주에 두어 한인증명서를 발행하는 등 조국 독립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했다.

▲양인선 110년의 역사를 간직한 미주 독립운동의 1번지, 대한인국민회 기념관 내부를 돌아보는 양인선 기자
이윤옥
2009년 2월 1일 대한인국민회는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대한인국민회기념관 안의 전시물을 국가보훈처와 독립기념관의 지원으로 새롭게 바꿨다. 그리고 이곳이 미주 독립운동의 1번지인 만큼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이어가는 역사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내년은 3.1만세운동 100돌이요, 상해임시정부 탄생 100돌이 되는 해지만 이곳 로스앤젤레스에 자리한 대한인국민회는 이보다 앞선 창립 11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 덕으로 인지도가 그나마 조금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역설적으로 말하면 그만큼 이 역사적인 현장이 미국 내에서는 물론이고 고국에서도 그다지 주목 받아오지 못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대한인국민회 3 대한인국민회 간판 앞에서, 민병용 한인박물관 관장,최형호 대한인국민회 총무이사, 기자, 배국희 이사장, 양인선 신한국문화신문 기자(왼쪽부터)
이윤옥

▲ 배국희 이사장과 기자 미국 독립운동의 1번지인 대한인국민 기념관에서 배국희 이사장과 기자
이윤옥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미주지역 최고(最古)의 독립운동사 현장인 이곳이 동포들에게는 든든한 조국독립의 장이요, 자라나는 후손들에게는 생생한 교육의 현장으로 길이 기억되는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 대한인국민회 기념관 전화 : 323- 733-7350
* 주소 : 1368 W. Jefferson Blvd. Los Angeles, CA 90007, USA
* 누리집 : https://knam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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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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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독립운동의 1번지 LA '대한인국민회'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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