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 입어볼 수 있는 프놈펜 카페, 이유가 있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의 집을 찾아서] 목재공장 노동자에서 카페 사장님 된 티엔피의 꿈

등록 2018.08.20 11:26수정 2018.08.2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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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올프렌즈에서는 2018년 7월 9일부터 13일까지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친구 고향집 방문' 행사를 진행했습니다.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이주노동자를 대신해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 안부를 전했고 한국에서 일을 마치고 본국으로 귀국한 전직(?) 이주노동자의 집을 찾아가 그들의 변화와 성공을 축하하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 기자말
 마을 동생들에게 선물과 빵을 나누어 주는 티엔피
마을 동생들에게 선물과 빵을 나누어 주는 티엔피김혜원

"선생님 저 말고 다른 친구를 찾아가 주세요. 저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리 친구들이 많이 모여 사는 기숙사가 있는데 거기를 찾아가 주세요. 제가 같이 갈게요. 거기에는 열 명 넘는 친구들이 있구요. 선생님이 찾아가 주시면 정말 좋아할 거예요."


2년 전 광주시 인근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집과 기숙사를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기숙사를 찾아가 생활하는 환경도 살피고 이들의 고충과 어려움을 직접 들어보자는 뜻이었다. 허나 대부분의 기숙사가 공장이나 농장 안에 있거나 지근 거리에 있어서 사장님의 눈을 피해 잠입(?)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간첩 접선하듯 마을 초입부터 살금살금 한국 사람들의 눈을 피해 들어 가야 하고 들어간 후 에도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이야기 하다 나와야 했다. 허락 없이 외부인을 기숙사에 들여놓았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사장님의 호된 질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멀리 차를 대고 치킨, 피자, 수박, 음료수 등을 나누어 들고 기숙사에 들어서니 이미 많은 친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두세 명이 어깨를 맞닿게 둘러앉을 수 있는 거실과 방 2개, 부엌과 욕실로 된 기숙사는 아파트 평수로 치면 삼십 평 쯤 되어 보였는데 보통은 열다섯 명 정도가 함께 생활한다고 한다.

좀 전에 샤워를 마친 듯 여기저기 덜 마른 수건과 빨래들이 널려 있었고 저녁을 먹었을 부엌에는 수많은 파리들이 '왱왱' 거렸다. 에어컨은 없고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두 대의 선풍기에서는 땀 냄새를 가득 품은 더운 바람만 쏟아져 나올 뿐이었다.

 기숙사 벽에 붙어있는 한글 공부
기숙사 벽에 붙어있는 한글 공부김혜원

"이 친구는 한국에 와서 계속 아파요. 그래서 요즘 일도 나가지 못하고 계속 병원을 다니는데 사장님이 나가라고 한대요. 일하지 않고 오래 쉬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럴 수는 없어요. 한국에 오기 위해 돈도 많이 빌렸는데 그냥 가면 어떻게요. 이 친구는 여기 오기 전에 전라도에서 일했는데 월급을 받지 못하고 왔어요. 고용노동부를 찾아가서 이야기 했는데 거기 사장님과 직원이 잘 아는 사이였는지 오히려 야단만 맞고 쫓겨 났다고 해요. 이 친구는 다른 직장을 알아보고 있는데 쉽지가 않아요. 노동부에서는 계속 기다리라고 하는데 언제 일자리가 날지 몰라 걱정이에요."


그곳에서 보여준 티엔피의 모습은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인권운동가와 다르지 않았다. 땀이 뚝뚝 떨어질 만큼 열심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그들과 같이 아파하고 함께 분노하며 한국인인 우리에게 그들의 억울함과 고통을 대변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평소 달달하게 노래하고 부드럽게 악기를 다루던 말없는 청년 티엔피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올프렌즈센타에서 친구들과 함께
올프렌즈센타에서 친구들과 함께김혜원

식탁 상판을 만드는 목재공장에서 일했던 티엔피도 돈을 벌고 싶은 마음에 한국행을 택한 청년이다. 프놈펜 작은 호텔에서 호텔리어로 일했지만 턱없이 작은 월급으로는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었다.

유창한 영어와 손님들로부터 익히게 된 짧은 한국어 실력을 믿고 한국행을 감행한 티엔피. 입국할 당시만 해도 영어를 잘하면 편한 일자리를 얻게 될 줄 기대했지만 이주노동자에게 영어 능력은 큰 소용이 없었다. 단순 노동을 필요로 하는 공장에서는 '와', '가', '해', '야', '이거', '저거', '스톱' 등 짧은 말 몇 가지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티엔피는 묵묵히 한국생활에 적응했고 자신과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이주노동자들을 이모저모로 돕고 위로하는 역할을 잘 해냈다. 그래서 그가 귀국할 때쯤에는 센터 안에 그를 따르는 많은 친구 그룹이 생겨나기도 했다.

"선생님 저희 몇 명이 한국에서 번 돈을 모아 프놈펜에 카페를 차리려고 해요. 거기서 한국에서 일하며 알게 된 친구와 친분도 계속 이어가고 카페 운영 수익 중 일부를 캄보디아 어린 아이들을 위한 일에 쓰고 싶어요. 캄보디아 어린이들은 물 때문에 많이 아파요. 깨끗하지 못한 물을 마시다보니 일찍 죽기도 하고 알지 못하는 병에 걸리기도 해요. 그런 아이들이 없도록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리고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우유를 먹이고 싶어요. 우유를 사먹을 수 있긴 하지만 비싸고 우유맛도 밍밍한 게 한국과는 달라요. 제가 카페로 돈을 벌면 캄보디아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과 질 좋은 우유를 먹게 할 거예요."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지만 티엔피의 꿈은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 한국에서 돈을 벌어간 친구들 몇몇이 출자를 해서 올 초 프놈펜 시내에 작은 카페를 오픈한 것이다. 한국에서 일하며 배운 목공기술과 페인트기술로 스스로 인테리어를 하고 틈틈이 바리스타 기술을 익혀 능숙하게 커피를 뽑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아직은 캄보디아에 커피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한국만큼 많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인데 그것도 한국에서 고생한 만큼 버티고 고생하다보면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우리가 가져간 한복이 한류와 사랑의 붐을 일으키길
우리가 가져간 한복이 한류와 사랑의 붐을 일으키길김혜원

"선생님 반갑습니다. 카페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은 수익이 나지 않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주변 멀지 않은 곳에 대학이 몇 군데 있어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홍보를 많이 하고 있어요. 저희가 한국에서 일하고 온 사람들이라고 했더니 한국에 대한 관심을 가진 대학생들이 많이 찾아와요. 한국 문화나 K-POP 같은 거 많이 물어보고 어떻게 하면 한국에 갈 수 있는지도 궁금해 해요. 한국말 배우고 싶다고 찾아 온 친구들도 있었는데 카페가 잘 되면 2층에 한국어 교실이나 학원을 해도 될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오셔서 학원 하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희 카페도 더 잘될 것 같아요. 하하하."

욕심 많은 티엔피는 벌써 사업 확장에 대한 꿈을 꾸고 있다. 하긴 사업이 확장되고 돈이 많이 벌려야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먹일 수 있고 좋은 우유도 먹일 수 있을테니 그의 욕심을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오후에 우린 티엔피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는 교회를 찾았다. 프놈펜 근처 깜뽕짬의 가난한 동네에 위치한 교회는 교회랄 것도 없고 그저 남의 집 마당에 지나지 않지만 많은 아이들이 와서 함께 놀고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특별히 놀 것이 마땅치 않은 가난한 동네 아이들에게는 함께 모여 춤추고 노래하고 간식이라도 먹을 수 있다면 그 보다 즐거운 일은 없을 터. 티엔피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과자 봉지라도 사들고 아이들을 찾는다고 했다. 한국 선생님들에게는 무뚝뚝한 편인 티엔피가 아이들에게는 더 없이 친절하고 상냥한 형이고 오빠가 되어 주고 있었다.

"저 아이들 중에도 더러운 물을 먹어서 아픈 아이가 있어요. 가난해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구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고 부모로부터 버려지거나 팔려가는 아이들도 많아요. 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닌데 아이들이 고통 받는 것이 가슴 아파요. 선생님! 카페가 잘 돼서 아이들을 도울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제가 저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먹이고 질 좋은 우유를 먹일 수 있는 능력이 되면 좋겠어요."

교회에서 돌아온 우리는 티엔피 카페에 한류를 불어 넣는 작전에 돌입했다. 아직은 주변에 알려지지 않은 카페지만 한류붐을 일으켜 주목을 받게 하자는 뜻으로 한복을 가져갔다. 방탄소년단 등 캄보디아에도 잘 알려진 K-POP 스타들의 브로마이드도 준비했다. 한복을 꺼내 서로 입고 모델이 되어 사진도 찍었다. 호기심 많은 캄보디아 친구들은 입어보고 싶다며 벌써 줄을 선다.

'BEACH C CAFE(비치씨카페)에 오시면 한복(한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맛있는 커피도 즐기고 한국의 전통문화도 느껴보세요.'

이제 티엔피의 카페는 한국전통문화와 K-POP, K-BEAUTY 등을 알리며 한국과 캄보디아를 이어주는 교량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한류 붐이 사랑의 바람이 되어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전해지길 간절히 바란다. 한국에서 시작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의 작은 날갯짓이 캄보디아를 바꾸는 큰 바람이 되길 기대하고 기도한다.

 프놈펜 시내에 문을 연 BEACH C CAFE
프놈펜 시내에 문을 연 BEACH C CAFE김혜원

덧붙이는 글 김혜원시민기자는 사단법인 올프렌즈의 다문화팀장입니다
#이주노동자 #사단법인 올프렌즈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BEACH C 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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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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