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날 위해 차려준 채식 밥상. 산나물과 표고버섯, 두릅으로 차린 특별식이다.
우민정
"왜 채식을 하냐?"는 질문에 늘 "애인 때문에요"라고 능글맞게 말했지만, 그건 사실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차선의 대답이었다. 그 질문은 대체로 식당에서 던져졌고, 마주 앉은 사람이 제육볶음을 먹고 있는데 "그 '고기'도 생명이었다. 동물을 타자화하고, 고통 주어 착취한 결과를 먹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더이상 나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다. 내가 채식을 공부하면서 가장 절절하게 느낀 건, 육식으로 인한 환경 파괴도, 그로 인한 지구 멸망의 공포도 아니었다. 육식 문화 속에서 잔인하게 죽어가는 동물들의 고통이었다. 어릴 적부터 반려견과 살아온 나는 그 생명들을 고기라고 부르며 타자화할 수 없었다. 내가 울 때 달려와 나를 위로해주는, 감정과 마음을 가진 동물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대로 나의 엉터리 채식이 괜한 민폐만 끼치는 일은 아닐까 두렵다. 그런데도 늘 뻔뻔하게 채식한다고 말하는 건 그로서 내가 무언가 배우기 때문이다. 불편한 질문들은 날 생각하게 한다. '페스코'(해산물, 달걀, 유제품 외 육류를 먹지 않는 채식)인 내게 누군가 "채식한다면서 왜 계란말이를 먹느냐?"고 물었을 때, 난 무엇을 위해 채식을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기로 태어나서>란 책에 나온 산란계들의 현실이 떠올랐다. 전자레인지만한 캐리어에 농구공만한 닭 5마리가 구겨져 살며 산 채로 썩어가는 그 장면이 계란말이와 겹치며 마음을 콕콕 찔렀다. 누군가 말처럼 "나 하나 안 먹는다고 세상 안 바뀐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할까? 그날 이후 습관처럼 냉장고에 채우던 계란을 더이상 사지 않았다.
'채식을 언제까지 하나 보자'는 시선은 날 외롭게 했지만, 모른 척 지지해주는 사람들을 발견한 건 큰 기쁨이었다. 고지식한 사람이라 믿었던 아빠는 한 번도 내게 "왜 채식을 하냐?"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늘 가족 모임에서 먹던 '닭백숙' 대신 순두부 탕과 두릅, 고사리, 표고버섯을 올려주었다. 아빠가 직접 재배해 만든 음식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손길이 없었다면 나의 채식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 8년 동안 한결같이 채식에 실패했다. 우유를 끊겠다며 두유를 사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사오기도 했다. 실패를 거듭한 뒤에야 나는 배운다. 내가 먹는 것이 무엇인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어릴 때부터 아무 생각 없이 즐겨마시던 우유는 암소가 평생 강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 고통의 결과로 내게 온 것이다. 그러니 매일 살피고 기억해야 한다. 내 입에 들어오는 작은 음식 하나가 얼마나 많은 희생과 착취로 이곳에 와 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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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따라 시작한 채식, 그는 떠났지만 내게 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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