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술집 낮섬
박초롱
부모님 보며 나는 자영업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그러나...사실 자영업이 낯설진 않았다. 우리 부모님은 교복 장사를 30년 동안 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에 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9시간 동안 꼬박 가게를 지켰다. 언니와 나의 여덟 번의 졸업식에 두 분 다 자리를 지킨 적은 없었다. 창고를 제외하면 열 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엄마 아빠는 그곳에서 미싱을 돌리고 커가는 아이들의 어깨와 다리를 쟀다. 도시락을 먹고 뚱뚱한 텔레비전을 보고 가게 한 켠에 세워두는 낚시의자에서 낮잠을 잤다.
그들을 보며 나는 중요한 것은 직업이 아니라 공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왼편에는 세 대의 미싱, 오른편에는 다림판이 있고 위에는 몇백 벌의 교복이 걸린 그곳이 그들이 30년을 보낸 공간이었으니까. 투명한 가게 유리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내 어머니에겐 문자 그대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었을 테니까.
부모님을 보며 나는 결코 자영업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신의 축복이라는 망각을 내가 지나치게 많이 받은 건지 나는 자영업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던 이유를 잊었다. 역마살이 꼈냐, 방랑벽이 있냐라는 말을 듣는 내게 어울리지 않았던 것. 바로 공간에 얽매인다는 것.
자영업자가 된다는 건 '일한 만큼 버는 것'도 '적은 돈으로 작지만 아름다운 가게를 꾸미는 것'도 아니었다. 그건 정성 들여 내가 갇힐 감옥을 짓는 것과 같았다. 설사 그것이 아름다운 감옥일지라도 말이다.
일주일에 여섯 번. 나는 책 읽는 술집 '낮섬'에 머무른다. 카운터에 앉아 의자를 옮길 것도 없이 슬쩍 고개만 돌리면 저 구석까지 한눈에 볼 수 있는 작은 술집이다. 커다란 테이블 뒤로는 벽 한 면을 다 덮은 책장이 있고, 술집 한가운데엔 매달 주제별로 큐레이션이 바뀌는 책이 진열되어있다.
책이 가득한 예쁜 바(Bar)에서 머무르기.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이 가게를 시작하면서 나의 행동반경은 극도로 좁아졌다. 하루의 절반을 이 공간에서만 쓴다. 가게를 시작한 3달 동안 나는 매일 같은 풍경을 보며 같은 공간에 머무른다.
오픈을 준비하는 오후 5시 즈음엔 근처 중고등학생들이 하교하는 길에 왁자지껄 떠들며 골목을 누빈다. 여덟 시가 되면 맞은 편 이층집에 사는 할아버지가 러닝셔츠 바람으로 나와 담배를 피운다. 한 시가 넘으면 택시 아저씨가 골목에 차를 주차한다. 그걸 보며 나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 나머지 시간도 비슷하다. 집까지 걸어서 30분. 바에서 집까지 걷는 그 길이 내가 매일 보는 풍경이 되었다.
공간에 매인다는 게 이런 걸까. 좋아하는 카페에 주야장천 가던 때도 있었다. 그야말로 참새가 방앗간 찾듯 매일 같은 시간에 카페에 가서 네다섯 시간씩 있기도 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간을 써도 내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것과 그곳에 있어야만 하는 건 달랐다. 답답했다.
갑자기 문을 닫고 어딘가로 가고 싶을 때도 많았다. 저녁 약속을 잡을 수도 없었다. 떠나고 싶은 걸 꾹 참고 가게를 지켰는데 손님이 하나도 없는 날엔 허탈하기도 했다. 머무르기. 그것이 의무가 된 순간 나는 갑자기 수인이 된 것 같았다. 내가 만든 예쁜 감옥에 갇힌 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