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선고공판 출석하는 안희정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진은 지난 8월 14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유성호
한국에서 위력에 의한 성범죄는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2011년에 121건이었던 입건자 수는 5년 뒤인 2016년에 2배 반 넘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발생 건수'가 아니라 '입건자' 수 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전체 성폭력 사건의 신고비율은 10% 정도로 추정되는데, 범인이 자신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면 신고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 위력 성폭력 입건자 수가 물 위로 드러난 꼭지라면, 수면 아래 얼마나 큰 숫자가 감춰져 있을지 생각해 보라. 그 숨은 숫자를 분모로 놓고, 기소된 한 명을 분자로 놓으면, 대한민국 '사법정의'의 몰골이 수치로 드러난다.
안희정 사건은 그 빈약한 분자의 존재마저 의심하게 만들었다. 신고율도 낮은데 거기서 소숫점 이하의 비율만이 재판을 받고, 그중에서도 유죄판결을 받는 사람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안희정 재판 1심은 '신고해봐야 소용없다'는 인식을 견고하게 만들 우려가 크다.
폭등해 온 '위력에 의한 성범죄'
통계는 일자리가 불안정한 사람일 수록 성폭력에 쉽게 노출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쉽게 노출될 뿐 아니라, 발생한 성폭력을 고발하기도 어렵다. 악화일로에 있는 한국의 고용불안이 법 질서에 어떤 그림자를 드리우는지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런 현실에서 법원이 보이는 태도는 안이하기 짝이 없다. 안희정 사건에서 재판부는 피해자가 '싫다'거나 '안된다'고 거부의사를 밝혔어도, 현재의 법 체계로는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선고문을 보자.
"설령 피해자의 진술처럼 피해자가 업무 상 상급자인 피고인의 성관계 요구에 대해서 명시적으로 동의 의사를 표명한 적이 없고, 통상적으로 볼 때에는 거부나 저항의 정도에 이르지 아니하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거절하는 태도를 보인 바 있었으며, 피해자의 진정한 내심에는 반하는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현재 우리 성폭력범죄의 처벌체계 하에서 이러한 사정만으로 피고 인의 행위가 처벌의 대상이 되는 성폭력범죄라고 볼 수도 없다."
명줄을 쥔 권력자 앞에서 동의 의사를 표명하지 않은 채,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아닌데요, 아니에요'라고 말해도 "통상적으로 볼 때" 거부나 저항이 아니며, 따라서 성폭력 범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일어날 위력에 의한 성폭력 대다수는 현행법상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이 설명하듯, 유사한 사건들이 빠르게 증가해 왔음에도 법원은 제대로 된 판례하나 만들지 못했다.
사법부가 스스로 밝혀 온 역할은 '법의 확립을 통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보장'이다. 그렇다면 시민의 고통에 뒷짐진 법원의 존재 가치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안타깝지만 무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