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원의 탈북자 생활관경기도 안성시 탈북자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에서 탈북자들이 생활하는 생활관.
연합뉴스
[기사수정: 2019년 11월 25일 오후 5시 45분]
"북쪽에서도 이 정도는 아니에요."
지난 2010년 국가보안법 위반(고무찬양) 혐의로 법정에 선 탈북민 최아무개(40대)씨는 남한엔 표현의 자유가 없다고 단언한다. 1심에서 징역 6개월 실형을 선고받은 그는 이후 인터넷에 글을 쓰는 걸 최소화 했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올린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라고 한다. 몸은 석방됐지만 입은 아직 감옥에 갇힌 셈이다.
의심과 감시... 탈북민의 이중고
시작은 지난 2009년이었다. 우연히 탈북민들이 모여 북한생활을 이야기하는 TV프로그램을 봤다. 최씨가 기억하는 일상과 완전히 반대된 이야기였다. 북한 현실이 심각하게 왜곡·과장됐다고 느낀 그는 한 온라인 정치커뮤니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대체로 "과거 남쪽에서는 북쪽 주민들 머리에 뿔이 달렸다고 가르쳤지만, 북쪽은 남쪽 주민들을 형제자매라고 가르친다"거나 "북쪽에서는 어릴 때부터 항일혁명역사를 배우고 자란다"는 내용이었다. 김일성 전 북한 주석의 항일운동 이력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을 비교한 글도 있었다.
분명 하나원(탈북민의 정착을 돕는 통일부 소속기관)에서는 "이곳엔 언론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있다"라고 교육받았다. 그렇기에 최씨는 이런 글이 문제가 되리라 상상도 못했다. 자유게시판에 정제하지 않고 올린 '의견 표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북에서도 남쪽 옷이 좋다, 남쪽이 차를 잘 만든다는 정도의 대화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약 6개월 후 보안수사대가 들이닥쳤다.
"출근시간이었어요. 원룸 앞에 경광등을 켠 경찰차와 스타렉스 한 대가 와있더라고요. 13명 정도가 집을 수색하고 그 자리에서 날 체포해갔어요. 이 광경을 동네사람들이 다 봤어요. 최소한 나를 연쇄살인범이나 연쇄성폭행범으로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실제 그런 범죄자들도 그런 식으로 체포합니까?"
이후 과정은 "외롭고 참담"했다. 보안수사대는 최씨가 북한과 남한을 '비교'한 대목을 특히 문제 삼았다. 양쪽을 비교함으로써 반국가단체를 고무·찬양했다는 논리였다. 한번은 조사를 담당한 수사관이 아이스크림을 사와 마주앉은 최씨에게 건넸다. 그러면서 "북에는 이런 아이스크림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방식으로 황당한 기분을 표했다. "국가보안법이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구나." 최씨가 확신한 순간이었다.
석방 후엔 일상적 감시와 자기 검열에 시달렸다. 경찰 보안과 직원이 회사에 전화해 "최OO란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보는 일이 반복돼 두 번이나 직장을 옮겼다. '보안과 경찰이 찾는 탈북민'을 직원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두려워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신변보호관이 원룸 관리인을 찾아와 그가 실제로 거주하는지, 월세는 제 때 내는지 등을 캐묻는 걸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주변 탈북민들은 "누구는 생각이 없어서 말을 안 하고 사는 줄 아느냐, 조용히 밥만 벌어먹고 살라"고 다그친다. 최씨는 "대부분의 탈북민이 그렇게 산다"라고 설명했다.
'북한산 명태를 판다'라고 온라인에 글을 올렸다가 보안수사대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은 강아무개(40대)씨도 "탈북민들이 한국에 오면 다 맘대로 할 것 같지만, 글 하나 올렸다고 공안당국의 표적이 되는 걸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법이 가둔 사람들